7월6일 ‘인드라망 쉼터’를 마련해놓은 귀정사에 들어왔다. 근래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었다. 만성화된 소화불량이 양약 치료로는 낫지 않았고, 몸은 바싹 말랐다. 수년째 몸이 고생하자 마음도 점점 나약해졌다. 얼마 전부터는 이대로는 일도 생활도 제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신이 축 가라앉았다. 안식과 치유가 절실히 필요했다.
예민한데도 태연한 척 내색 않는 나의 못난 성격도 그간의 아픔을 키웠을 것이다. 홀로앓이를 끝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호소하는 순간, 나에게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일터와 삶터 이웃들의 걱정과 지지가 약해져버린 내 생의 감각을 다시 일깨웠다.
잠시 서울을 벗어나 맑은 환경에서 심신을 가다듬고자 했다. 휴직계를 냈지만 딱히 어디를 가야 할지 정해놓은 바는 없었다. 자연치유원 같은 곳은 너무 비싸서 엄두가 안 났다. 그러나 병에 발이 달리자 이런저런 대안이 떠올랐다. “병은 알려야 낫는다”라는 옛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나 보다.
“각 지역에 이런 공간 더 많이 생기길”
귀정사와도 그렇게 인연이 닿았다. 성북구 삶터에서 인연을 맺은 선배들이 울컥하는 마음으로 썼다는 추천서가 그분들의 가슴에도 전해졌나 보다. “편히 심신을 추스르도록 하세요.” 귀정사는 흔쾌히 쉼의 거처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나는 일면식도 없고 가본 곳도 아니지만, 소중한 이웃들과의 관계를 믿으며 망설임 없이 귀정사행을 결정했다.
귀정사에 내려오자마자, 막 운영을 시작한 ‘인드라망 쉼터’의 운영위원들과 만났다. 귀정사의 배려 속에 잉태된 이 공간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평등, 평화, 그리고 자연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지치거나 아픈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지켜나가는 사회연대 쉼터”를 소망하며 만들어지고 있었다. 영광스럽게도 내가 ‘1호 나그네’가 됐다. 한 운영위원은 “각 지역에 이런 공간이 더 많이 생기길 고대한다”라고 했다.
인드라망 쉼터 운영위원이자 실제 4개월을 이 절에서 머물며 ‘힐링’했다는 송 시인이 내게 말을 건넸다. “비록 오늘 처음 봤지만, 송주민씨는 나의 삶이 된 것입니다.” 서울의 삶터 이웃들과의 인연으로 내가 이곳에 왔듯이, 나는 또 귀정사가 잉태하는 인연 속에서 안식과 치유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또 다른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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