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12세 남아, 가명)는 전날 엄마와 크게 다퉜다. 스마트폰 사용을 저녁 7시까지 하기로 해놓고선 8시까지도 돌려주지 않자 화가 난 엄마가 스마트폰을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경주 엄마는 아이가 이렇게 심하게 대든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시작됐을까, 엄마를 진짜 미워하는 건 아닐까, 내 아이가 스마트폰 중독인가,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경주와 ‘인터뷰 놀이’를 하면서 경주 엄마는 두 가지 커다란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봇이 엄마로 나오는 책 〈엄마 사용법〉을 아이와 함께 읽으며 경주 엄마가 “나도 엄마 장난감처럼 감정이 없었다면 경주에게 야단도 안 치고 좋은 것만 해줄 텐데”라고 말하자, 경주는 곧바로 “감정이 없는 엄마는 싫어. 나도 감정이 없는 아이가 되니까”라고 반박했다. 경주 엄마는 ‘이때다!’ 하고 어제 일을 슬그머니 꺼냈다. “어제 스마트폰 뺏고 혼냈는데도? 엄마가 안 미웠어?” “안 미웠어. 그냥 화가 났을 뿐이야. 엄마들은 다 그러잖아.” 이 말을 듣고서야 경주 엄마는 안도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에게 아무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자유 인터뷰 놀이’에서 경주가 맨 먼저 물어본 말은 “엄마는 무슨 일을 해?”였다. 교육시민단체 간사 일을 하던 경주 엄마는 평소 아이가 자신의 일을 궁금해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해봤고, (시민단체 간사라는) 자신의 일을 설명해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경주에게 최대한 친절히 엄마가 하는 일을 설명하자 경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필자가 ‘인터뷰의 힘’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난생처음으로 어머니를 인터뷰해보면서다. 2007년부터 한 인터넷 신문의 시민기자를 하면서 많은 작가와 교수 등 전문가들을 인터뷰해봤지만, 어머니를 인터뷰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받아 적어야겠다고 생각해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어머니의 말을 받아 적었는데, 그 순간 어머니의 눈빛이 달라졌다. 필자는 그때 처음으로 ‘미디어’가 가진 힘을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그 느낌은 필자만의 경험이 아니었다. 인터뷰 놀이를 경험한 한 엄마는 “아이와 대화할 때 종이에 그 내용을 적어 내려갔는데 그걸 본 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지더군요. 자신이 하는 말을 엄마가 적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아요. 태어나서 처음이니까요”라고 말했다. 다른 엄마는 “글로 옮겨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평소에는 지나쳤을 아이의 말을 하나하나 귀담아듣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요컨대 ‘인터뷰 놀이’는 부모와 아이를 모두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인터뷰 놀이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평소 궁금했던 것을 자유롭게 질문하는 ‘자유 인터뷰’가 있고, 책을 함께 읽으면서 책 내용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는 ‘책 속 인터뷰’가 있다. 놀이를 하듯 아이의 속마음을 끄집어내려면 ‘책 속 인터뷰’가 제격이다. 하지만 책 내용과 평소 아이에 대해 궁금하던 점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간단치 않다. 아이의 속마음을 열 수 있는 ‘결정적 질문’을 뽑아내려면 무엇보다 평소에 그냥 흘리곤 하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자명 오승주(〈책 놀이 책〉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