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가 비틀스 노래 듣는 게 이상한가요?’ 10대라고 밝힌 이의 고민이다. 50년 전 히트곡 대신 아이돌 음악을 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시류에 민감한 청소년 시기의 초조함이 묻어난다. 비틀스의 대표곡 ‘예스터데이’를 모르는 10대가 적지 않다. ‘아니 어떻게, 도대체 왜?’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몰래 이어폰으로 비틀스와 교감했던 이들이 세월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50년 전인 1963년 3월22일, 비틀스의 첫 앨범 〈플리즈 플리즈 미(Please Please Me)〉가 발매됐다. 비틀스는 그해 싱글 앨범 4장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비틀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비틀스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5곡만 알면 마니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 정규 앨범 12장의 수록곡만 200여 개다. 국내의 비틀스 트리뷰트 밴드(유명 밴드의 모습과 음악을 본떠 연주하는 밴드), 타틀즈와 멘틀즈는 그 곡을 차례차례 연습하고 있다. 비틀스(Beatles)의 Beat를 칠 타(打)로 바꿔 타틀즈다. 멘틀즈는 젠틀멘(Gentlemen)의 멘과 비틀스를 합쳐 만든 이름. 싸이의 신곡 ‘젠틀맨’을 예견하고 만든 이름이라고 농을 쳤다. 두 팀은 4월28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합동 공연 〈The Beatles Story(더 비틀스 스토리)〉를 연다. 모두 밤늦게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사IN 이명익타틀즈의 연습 장면. 왼쪽부터 임주연·조태준·정중엽·전상규씨.

타틀즈-인디 밴드 멤버들의 특별한 만남

이날은 ‘영수 흉보는 날’이었다. 어제는 ‘중엽이 흉보는 날’. 연습에 빠지는 멤버가 있으면 그날은 그 멤버를 흉보는 날로 정한다. 5명 각자가 몸담은 밴드나 개인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이다. 흉을 안 들으려면 연습에 참가하는 수밖에. 4월15일 서울 합정동의 한 지하 연습실은 늦은 시각까지 불빛이 훤했다.

밤 10시. 멤버들이 좀 늦는다는 전화에 리더 전 레논(전상규·41)이 으름장을 놓았다. “오늘은 가만 안 둬. 매일 늦고.” 타틀즈는 2008년, 밴드 와이낫의 리더인 그의 구상에서 시작됐다. 그룹 퀸이나 비틀스처럼 보컬뿐 아니라 전 멤버가 같이 노래 부르는 밴드를 해보고 싶었다. 먼저 본인이 존 레넌. 멤버 물색이 쉽지 않았다. 폴 매카트니처럼 왼손 베이시스트에 노래까지 잘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2010년 어느 날 클럽에서 그룹 ‘하찌와 TJ’로 활동하는 조태준씨(34)와 얘기하던 중에 마침 비틀스 음악이 흘러나왔다. 구상을 듣자마자 조태준씨는 그 자리에서 반겼다. 무조건 ‘폴’이 하고 싶었다. 이전에도 마음 맞는 멤버들과 구상한 적이 있다. 높은 음역대의 가창력을 갖춰, 노래하는 베이시스트에 적임자였다. 조 카트니는 그렇게 탄생했다.

창당 발기인은 2명. 곧 ‘무중력 밴드’의 드러머인 링고 영수(김영수·33)가 합류했다.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처럼 말 잘 듣는 막내도 찾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중엽씨(30)가 물망에 올랐다. 다짜고짜 연락해 비틀스를 좋아하냐고 물은 뒤 얼굴을 보자고 했다. 만나기로 한 날, 비틀스 전곡의 악보를 모은 ‘비싼 책’(〈the Beatles Complete Scores〉)을 옆구리에 끼고 그가 등장했다. 그 길로 합격이었다. 중고 사이트에서 책을 산 정중엽씨는 “형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가지고 갔는데 역시 다들 ‘오~ 이게 뭐야’ 하면서 반기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제5의 비틀스 멤버로 불리던 건반주자 빌리 프레스턴 자리에 빌리 주연(임주연·30)까지 합류했다.

2010년 봄 결성 이후 맞은 첫 공연부터 큰 무대였다. 지산록페스티벌. 전 레논의 표현대로라면 ‘멋도 모르고’ 했다. 가사도, 코드도 틀렸다. 복장도 덜 맞춰진 데다 레퍼토리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다. 한국을 찾은 펫 샵 보이스의 메인 무대가 끝나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젊은이 수천 명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던 그 길목에 타틀즈의 무대가 마련됐다. 무대 위로 서른 명 가까이 올라와서 춤을 췄다. 한여름 밤의 꿈같이 인상적인 첫 공연이었다. 지난해 단독 공연도 열었다. 무대에서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무리수’ 덕에 팬들은 즐겁다. 그 사이 조 카트니와 빌리 주연은 결혼을 했다.

인터뷰 자리에 모인 멤버들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각자 하는 밴드 활동에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타틀즈 활동을 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밴드가 창작 중심이라면 트리뷰트 밴드는 원곡을 충실히 재현한다. 조 카트니는 “각자 밴드는 멋대로 할 수 있어서 좋고 여기는 좋은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한다. 새 곡을 만들거나 편곡할 때 도움이 된다. 부작용은 곡을 쉽게 못 쓴다는 점. 비틀스 노래로 연습을 하다 보니 자기가 쓴 곡을 보고선 ‘뭐 이딴 노래를 만들어가지고 부르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단다.

이들에게 비틀스는 과거형이자 현재형이다. 초등학교 때쯤 ‘보이즈 투 멘’ 테이프를 통해 아카펠라 버전으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처음 접한 조지 중엽은 밴드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비틀스 노래를 듣는다. 조 카트니는 “대중음악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거의 최초의 밴드가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전 레논은 “지금 전 세계에 울려퍼지는 모든 노래는 어떤 형태든 간에 직간접으로 비틀스의 영향을 받았다. ‘난 비틀스가 좋아, 싫어’ 모두 틀린 말 같다. 어차피 모차르트 같은 인류의 보고이기 때문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이 아니라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가만 남는다. 비틀스의 장르는 ‘비틀스 over all(모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비틀스가 살아 있는 1960년대로 간다면 어떨까. 비틀스의 신보가 곧 나온다니, 상상만으로 멤버 모두 입을 벌렸다. 멤버들의 학창 시절 역시, 비틀스가 ‘올드 팝송’이었지만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 모두 비틀스를 거쳤다. 브로마이드를 구하려고 줄 서서 음반을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빌리 주연은 “비틀스는 되게 친했고 내가 좋아하는, 나보다 먼저 죽은 친구 같다. 다시 볼 수 없어서 그립다”라고 말했다.

비틀스 키드, 타틀즈가 연습을 시작했다. ‘오블라디 오블라다(Ob La Di, Ob La Da)’를 열창하는 사이, 가만 안 두겠다던 맏형 전 레논의 으름장에 진땀을 뺐던 나머지 멤버는 물론 본인도 지각에 대한 경고를 잊고 말았다.

ⓒ시사IN 조남진멘틀즈 멤버들. 왼쪽부터 김준홍·장석원·손보성·박승혁씨.

멘틀즈-헌정 음반 낸 마니아들

수도권 지하철 4호선 평촌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 연습실도 아닌데 인터뷰 장소를 여기로 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거실에 들어서니 감이 왔다. 비틀스 마니아 김태훈씨의 집이었다. 멘틀즈의 매니저이기도 하다. 알아주는 비틀스 팬으로, 소장품을 가지고 전시를 하기도 했다. 과연, 1964년 2월에 발매된 한국 최초의 비틀스 판부터 시작해 〈비틀스의 힛트쏭〉 등 희귀한 LP가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비틀스를 계기로 멘틀즈와 연을 맺게 됐다.

멘틀즈는 2008년 결성됐지만 리더 김준홍씨(52)의 트리뷰트 밴드 활동은 2002년 ‘애플스’라는 밴드에서 시작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FM 라디오를 통해 처음 비틀스를 알게 됐다. 당시 서울 광화문에 판을 파는 곳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가면 비틀스 판이 한두 개씩 있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대학, 군대, 사회생활이 이어지며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비틀스를 함께 좋아하던 동창이 일본의 클럽에 다녀왔는데 비틀스 트리뷰트 밴드를 봤다며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냉큼 따라 나섰는데 공연이 신선했다. 일본에는 비틀스 트리뷰트 밴드가 여럿이다. 그 김에 밴드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17년 만에 기타를 잡았다. 익숙한 ‘올 마이 러빙(All My Loving)’ 같은 곡부터 시작했다. 멤버는 모두 직장인. 지금 생각하면 엉망진창이었다. 재미 삼아 시작했지만 점점 진지해졌다. 이후 멤버가 바뀌고 팀은 ‘애플스’에서 ‘더 원’으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8년, 김씨는 트리뷰트 앨범(헌정 음반)을 내기로 했다. 그때 섭외한 세션 뮤지션 위주로 멘틀즈가 결성됐다. 장석원씨(링고 스타·42)와 손보성씨(조지 해리슨·39)가 이때 연을 맺었다. 막내 박승혁씨(폴 매카트니·31)는 2009년 합류했다.

2002년, 애플스 공연을 보기도 했던 박승혁씨는 2003년 프리버즈를 시작으로, 레볼루션 등 비틀스 트리뷰트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아카펠라 그룹 ‘킹즈 싱어즈’ 음반을 통해 비틀스 음악을 처음 접한 후부터 다른 음악은 귀에 안 들어왔다. 멘틀즈의 멤버는 대부분 비틀스 마니아다. 현재 두 사람은 직장인, 두 사람은 전업 음악인이다. 비틀스에 관한 틀린 정보를 말하면 바로 지적이 들어온다. 음악을 계속했지만 비틀스 음악을 깊게는 안 들었던 장석원씨가 소외감을 느낄 정도다.

멘틀즈는 두 장의 헌정 음반을 냈다. 1집은 〈For No One〉(2008년), 2집은 〈Nowhere Mentles〉(2011년)다. 음반 제작은 까다로웠다.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음반사에서 웬만해선 허가를 안 내준다. 노래를 랩으로 변형하는 건 불가능하고 재즈풍이면 저작권료를 더 내야 한다. 비틀스를 너무 따라해도 안 된다. 담당자를 만나 얘기한 뒤 허락을 받았다. 김준홍씨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기록하고 싶었다. 애플스까지 하면 7~8년 활동을 했다. 가족들은 포기 상태다. 노력이 효과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비틀스(위)는 마니아들에게 현재형이다. 좋아하는 친구 같은 존재다.

지난해 멘틀즈는 비틀스의 고향인 영국 리버풀의 클럽에서 공연을 했다. 한국 최초의 비틀스 헌정 밴드 ‘김치스’의 베이시스트 심형섭씨와 함께 ‘리버풀 비엔날레’에 초대받았다.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본토에서 한다는 부담과 설렘이 함께 있었지만 관객 반응이 좋았다. 리버풀 사투리까지 재현하는 걸 두고 현지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들은 대로 따라했을 뿐이다. 비틀스 멤버들은 ‘time(타임)’을 ‘탐’으로 발음했다.

노래를 카피만 하다 보면, 창작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200여 곡 중 카피한 건 아직 100곡에 불과하고. 창작 쪽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트리뷰트 밴드의 정체성이 먼저다. 마니아들 입맛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공연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팬도 있지만, 링고 스타는 드럼을 그렇게 안 친다고 지적하는 팬도 있다. 이번 공연에선 비틀스의 초기·중기·후기 곡들을 4개 파트로 나누어 타틀즈와 멘틀즈가 절반씩 연주한다. 모두 50여 곡을 선보일 예정. 중·후기 곡의 웅장한 사운드를 재현하기 위해 관현악 세션을 배치했다. 멘틀즈와 타틀즈. 인생의 한 시기를 비틀스에게 내어준 두 밴드의 헌정 공연이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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