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짜리 소년의 연설은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고 “People Not Profit(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국제 여론이 제약회사들에 불리해졌고, 결국 제약회사들은 소송을 취하했다. 프리토리아 소송은 의약품 접근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지난 4월1일 또 하나의 역사적 판결이 나왔다. 노바티스가 인도 법정에서 패소한 것이다. 노바티스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거대 제약기업이다. 세계 1위 농약 판매 기업인데, 2001년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만든 후 더 유명해졌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노바티스 사는 글리벡 가격을 한 알에 2만4000원에 팔겠다고 했다. 만성 백혈병 환자들은 하루 4알에서 8알을 먹어야 산다. 한 달에 최소 300만원에서 600만원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노바티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글리벡 한 알에 1만7000원을 고시했지만, 노바티스는 한국에서 약 판매를 철수하겠다고 맞섰다. 결국 한국 정부가 졌다. 지금 글리벡 가격은 한 알에 2만3040원이다. 가격 인하가 되지 않은 글리벡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1년에 1000억원을 가져간다.
‘전 세계 단일 약값’을 고수하는 노바티스에 인도는 눈엣가시였다. 인도에서 낫코라는 회사가 글리벡 복제약 ‘비낫’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 약의 가격은 2달러로 글리벡의 10분의 1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노바티스는 2005년 인도 정부에 글리벡 특허를 요구했다. 인도 정부가 인도 특허법을 근거로 이 특허 인정을 거부하자 노바티스는 인도 특허법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인도 특허법은 제약회사가 약 성분을 조금만 바꾸어 특허를 계속 유지시키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을 방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인도 특허법 3(d) 조항). 에버그리닝은 의약품의 효과와 상관없이 특허를 지속하는 조치다. 한·미 FTA 협정 때문에 한국에도 도입된 제약회사들의 에버그리닝은 제약회사들에게 ‘영원한 특허’를 부여한다.
인도 특허법은 일부 성분만 살짝 바꾸는 약에 대해 새로운 특허를 주는 것을 막고 있다. 기존 약제보다 개선된 효능이 있어야만 특허를 인정한다. 이 법이 인도가 거대 제약회사에 맞서 10분의 1 가격의 복제약 생산을 가능케 한다. 120개국 이상의 가난한 나라에 공급되는 에이즈 치료제의 90%가, 그리고 전 세계 에이즈 치료제의 50%가 인도산이다. 또 항생제·항암제·혈압약·당뇨약 등 전 세계 복제약의 20%가 인도산이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인도를 ‘세계의 약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노바티스가 인도 특허법을 무력화하려고 소송에 나서자 화이자(Pfizer)를 비롯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를 지원해왔다. 인도 대법원 판결을 며칠 앞두고 미국 의회에서 ‘미국-인도 무역관계:기회와 도전들’이라는 공청회까지 열었을 정도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존 라슨 상원의원은 화이자를 옹호하며 간디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그는 “세계의 모든 바람이 내 집을 자유롭게 통과해 불기를 바라지만 나는 그 어떤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겠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약값 인상이 인도가 세계와 함께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국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에 감사”
인도 암 환자 단체들과 전 세계 의약품 접근권 운동단체들은 지난 7년간 공동 캠페인을 벌여왔고 7년간의 ‘전투’ 끝에 노바티스를 무릎 꿇게 했다. 4월1일 인도 대법원의 노바티스 특허 기각 판결은 의약품이 필요한 전 세계 민중의 승리이자 시민사회단체들의 승리다.
인도 대법원 판결 후 인도 암 환자 단체의 감사 메일이 한국으로 왔다. 처음으로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을 벌인 한국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2001년 한국에서 벌어진 글리벡 약값 인하 운동과 이와 관련해 2004년 인도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서 진행한 한국 활동가들의 캠페인이 자신들을 고무해, 지금 이 투쟁의 한복판에 서게 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매년 1400만명이 예방 가능하거나 치료 가능한 병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비싼 약값 때문이다. 인류가 가장 끔찍한 재앙으로 기억하는 ‘홀로코스트’로 600만명이 죽었다. 지금 매년 두 번의 홀로코스트가 의약품 특허 때문에 일어난다.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한 거대 제약회사 10개의 순수익은 다른 490개 회사의 순수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익의 비결은 특허권이다. 특허를 둘러싼 싸움은 생명을 둘러싼 싸움이다. 이윤인가 생명인가. 지금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인류의 답을 두고 전투를 벌여야 한다.
-
한·미 FTA 때문에 약값 오른다고?
한·미 FTA 때문에 약값 오른다고?
차형석 기자
‘한국의 보건의료 정책을 다시 세팅하는 것.’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보건의료 부문에 미칠 부작용을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보건의료 산업의...
-
의료생협 가 보니… “우리는 의사랑 수다떤다”
의료생협 가 보니… “우리는 의사랑 수다떤다”
차형석 기자
6월6일 현충일 오후 2시, 서울 마포 동교동삼거리 인근에 있는 한 회사 회의실. 동네 주민 18명이 모였다. 지역 생협 관계자, 가정의학과 수련의, 한의사, 치과의사, 환경운동가...
-
피임약 논란 뒤에서 웃는 자는 누구?
피임약 논란 뒤에서 웃는 자는 누구?
송지혜 기자
어느 토요일 밤, 장지민씨(가명·28)는 마음이 급했다. 예상치 않은 성관계로 응급 피임약을 먹어야 했다. 하지만 처방전 없이는 피임약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결국 월요일을...
-
생태, 열에 아홉은 일본산
생태, 열에 아홉은 일본산
송지혜 기자
주부 전선경씨(42)는 반찬거리 고르는 게 가장 괴롭다. 원산지를 묻고 첨가물을 따지느라 한 번 장을 보는 데 2~3시간씩 걸린다. 일본산이 조금이라도 함유된 제품이라면 미련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