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메뉴는 된장찌개, 콩나물, 시금치, 과일 샐러드. 일반 가정식과 다를 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다. 김치에 젓갈이 안 들어가고 된장찌개 육수에 멸치가 안 들어간다는 점. 2월19일 찾은 월간 〈비건〉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사무실 점심 메뉴다. 편집장과 기자 3명 모두 요리에 능숙하다. 고기 없는 팔보채를 차리는 날도 있다. ‘채식문화 잡지’ 〈비건〉은 지난달, 창간 2주년 기념호를 냈다.

〈비건〉 식구들은 회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대부분이어서 먹을 데가 마땅치 않다. 지금은 우유도 안 마시지만 이재향 편집장(50·사진)은 과거, 퍼(모피)와 가죽 가방을 즐겼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동물 사료에 대해 공부하다 충격을 받았고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체질상 고기와 생선을 입에 대지 못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소고기와 우유만 끊으면 됐다.

〈비건〉은 채식 레시피, 동물 보호, 환경, 바른 먹을거리와 관련된 글을 담는다. 2월호에는 채식 설 차례상, 채식 다이어트의 함정 등을 다뤘다. 정기구독자 는 500여 명. 구제역 파동이 있던 당시 구독자 수가 반짝 올랐다가 2~3개월 뒤 다시 돌아왔다. “좋게 말하면 사람들이 너그러운 건가 싶어요. 금세 잊는 걸 보면.” 창간 때부터 재능기부로 꾸준히 글을 써준 채식 한의사, 채식 레시피 블로거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아직은 윤리나 환경에 대한 관심보다 건강 때문에 채식을 하는 사람이 많다. 가끔 환자들이 낱권 구입을 원한다. 이 편집장은 기업체 간의 두부 전쟁, 우유의 진실에 대한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연사한 동물의 가죽으로만 신발과 가방을 만드는 기업체에서 협찬을 받기도 한다.

2년. 달라진 점도 많다. 채식을 한다면 배 부른 소리 한다고 핀잔을 주던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야근을 하느라 자장면을 시킬 때 조미료와 고기를 빼달라면 그렇게 해준다. 쌈집에 가서 제육볶음은 빼고 달라고 하면 그런 사람이 더러 있다며 대신 쌈을 풍성하게 준다. 무엇보다 이 편집장 본인의 삶이 많이 바뀌었다. 잡지를 만들며 채식을 하면 인류 전체가 덜 망가질 거란 확신이 생겼다. 삶도 좀 더 소박해졌다. 일단 소비가 줄었다. 예전에 쓰던 명품백을 팔아 잡지 제작비용에 보탰다. 주변에서 일회용 컵을 쓰는 것도 불편해할 정도로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은 동물 보호와 관련된 기사를 넣을 때 자극적인 사진을 배제하려고 한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거부감 없이 읽고 한 번쯤 생각해보길 바라는 의미에서다. 이효리 같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김훈 소설가같이 젊은 세대에게 ‘구루’ 같은 사람들이 채식의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고 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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