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로 올 하반기 전 세계를 강타한 한국의 싸이(본명 박재상)는 이제 미국에서도 친숙한 대중 연예인으로 통한다. 지난 7월 선보인 그의 뮤직비디오가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기 전까지만 해도 싸이는 미국 연예계에서 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비디오가 유튜브 사상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싸이는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0대의 우상인 저스틴 비버를 비롯해 팝의 전설 마돈나, 최고의 래퍼인 MC 해머와 함께 무대에 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뿐인가. 싸이는 아침 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NBC 〈투데이 쇼〉와 심야의 인기프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 제이 레노의 〈투나잇 쇼〉에 출연해 말춤으로 청중을 흥분시켰고, 인기 여성 진행자 엘렌 드제너러스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깜짝 출연해서는 팝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말춤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출신 연예인으로 겨우 몇 개월 만에 기적 같은 성과를 일궈내며 올 하반기 미국에 ‘싸이 열풍’을 몰고 온 그가 과거 자신의 반미 공연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뜻밖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싸이와 관련한 불길한 조짐은 최근 인터넷에 그가 2004년 이라크 주둔 미군과 미군 가족을 저주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과 2002년 주한미군 병사가 몰던 장갑차에 깔려 두 여학생이 사망한 뒤 한국에서 일던 반미 정서를 노래한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항의하는 댓글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싸이도 나오는 연말 자선공연에 참석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악관 웹사이트에는 대통령의 불참을 요구하는 탄원서가 실리기도 했다.

오바마, 격려사에서 싸이 언급 안 해

이 같은 논란은 12월9일 수도 워싱턴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자선공연을 계기로 절정에 달했다. ‘크리스마스 인 워싱턴’이란 이름의 이 공연은 올해로 31번째를 맞이한 유서 깊은 자선공연으로, 올해는 국립아동의료센터를 위한 모금 행사였다. 이 행사는 자선행사라서 특별한 뉴스거리가 되지는 않지만, 유명 연예인과 대통령이 참석하고 공연 실황이 미국 전역으로 방송되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 공연에는 싸이 외에도 ‘아메리칸 아이돌’ 우승자인 스코티 매크리어리 등이 나와 크리스마스 캐럴로 한껏 흥을 돋웠다.

그런데 예년 같으면 전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공연이 올해는 싸이와 오바마의 동시 참석 때문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공연이 끝난 뒤 오바마 대통령은 논란을 의식한 듯, 사회자 코넌 오브리언과 가수 다이애너 로스는 거명하면서도 당일 공연의 ‘마스코트’라 할 싸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공연이 끝난 뒤 오바마가 싸이와 스스럼없이 악수해 세간에서 우려하던 어색한 분위기는 없었다.

사실 오바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좋아했다. 그가 대선 유세차 뉴햄프셔 주에 들렀을 때 일이다. 그는 현지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싸이 비디오를 처음으로 봤는데, 나도 ‘그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그것’은 물론 싸이의 말춤이다. 재선되면 말춤을 추겠냐는 질문에 오바마는 “취임식 축하 무도회 때 그런 춤을 추는 게 적절한지 잘 모르겠지만, 아내하고는 몰래 출지도 모르겠다”라며 익살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싸이의 순서에서 오바마는 말춤을 추지 않았다.

아무튼 아내 미셸 여사와 열렬한 팝 애호가인 두 딸과 함께 공연을 즐긴 오바마 대통령은 모금과 관련한 간단한 격려사를 한 뒤 바로 자리를 떴고, 그걸로 논란은 수그러드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 연예계를 강타한 ‘뉴스메이커’ 싸이를 둘러싼 논란거리를 언론이 그냥 놔둘 리 없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주요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CBS·ABC·NBC·폭스 뉴스 등 공중파와 대표적인 케이블 방송 CNN까지 대다수 주요 언론이 싸이의 공연 참가와 오바마 대통령의 동석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집중 보도했다.

‘반미 발언’ 조니 뎁의 전철 밟나

대다수 방송사는 싸이 논란을 소개하면서 비교적 균형을 맞추려 했다. 우선 싸이가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한 양키를 죽이라’는 따위 반미 랩 가사를 부르며 망치로 뭔가를 내려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는 등, 현재 싸이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이 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이들은 싸이가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깊은 사과를 한다는 성명 내용도 자세히 소개했다. 싸이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별도 인터뷰에서도 “이번 일이 내 경력을 해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그런 말을 사용한 데 대해 정말로 뉘우친다는 점이다”라며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보수 성향인 폭스 뉴스의 톤은 좀 달랐다. 폭스 뉴스는 〈폭스 앤드 프렌즈〉 〈온 더 레코드〉 〈더 파이브〉와 같은 여러 인기 프로그램에서 싸이 논란을 소개하면서 싸이의 사과보다는 과거 반미 랩 활동에 더 초점을 맞추는 인상을 줬다. 이를테면 〈폭스 앤드 프렌즈〉에선 이라크 전쟁에서 사망한 해군 병사의 어머니가 출연해 문제의 싸이 동영상을 집중 공격했다. 이 여성은 미군과 그 가족을 죽이라는 노래를 부른 싸이의 공연에 어떻게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느냐며 분개했다. 사회자가 해당 노래가 8년 전 불린 데다 싸이가 작사한 것이 아니며, 싸이가 진솔한 사과 성명까지 냈다고 설명해도 이 여성은 “그럼 당시 그랬어야지, 왜 공연 며칠 전에 그러느냐?”라면서 그런 사과는 자신의 경력을 망치지 않기 위한 ‘상술 전략’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또 〈온 더 레코드〉란 프로그램에 출연한 공화당 제이슨 차페츠 하원의원은 “싸이의 진솔한 사과로 충분하지 않느냐?”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책임을 져야 한다. 싸이를 (미국) 입국 금지자 명단에 올려야 한다”라고 열을 올렸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논란이 문제의 반미 랩 가사를 부실하게 번역한 데서 초래된 것일 수 있다고 전해 관심을 끈다. 해당 기사를 쓴 맥스 피셔 기자는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이 2004년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미군과 그들의 딸, 모친과 부친, 며느리를 죽여라. 그것도 천천히 고통스럽게’라고 한 첫 네 구절이었다며, 문제의 랩 가사가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CNN에 처음 소개됐다고 밝혔다. 피셔 기자는 문제의 대목을 전문 번역가와 본토 한국인, 한국어에 능통한 미국인, 언어학자 등에 재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당초 번역처럼 ‘죽이라’는 단어로 시작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가사 여기저기에 모호한 구석이 많아 이를 그대로 해석하다 보면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문화적 차이에 따른 번역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동정적 기사에도 불구하고,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싸이의 반미 랩 동영상이 몰고 올 부정적인 파장이다. 싸이가 진심으로 사과했는데도 문제의 랩 가사와 동영상이 현재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싸이의 미국 내 입지도 흔들릴 수 있다. 12월11일 〈ABC 뉴스〉에 출연한 음악잡지 〈롤링 스톤스〉의 브라이언 하이앳 기자는 “싸이가 이런 끔찍한 일을 겪고 난 뒤 회복하려면 힘이 들 것이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연예 전문 온라인 뉴스인 ‘엔터테인먼트 온라인 쇼비즈 뉴스’는 ‘강남스타일은 왜 공식적으로 끝이 났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과거 반미 언행으로 어려움을 겪은 귀네스 펠트로, 조니 뎁 같은 일부 연예인을 거명하며, 싸이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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