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정세가 미국과 한국의 대선, 중국의 지도부 교체 등 정권교체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의 예상과 달리 지난해 말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에서 권력 교체가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 최근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사태의 전개도 바로 북한의 급작스러운 리더십 교체로부터 비롯되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의 출범과 김일성 10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4월13일 ‘광명성 3호’로 명명된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정해진 투명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발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일체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한 2009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었다. 4월16일 유엔 안보리는 중국의 동의 아래 만장일치로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문제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실패한 데서 비롯되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 반발해 다음 날 외무성 성명을 통해 ‘안보리 조치 전면 배격’ ‘자주적인 우주이용권리 계속 행사’ 그리고 ‘미국이 깨버린 2·29 조·미 합의에 더 이상 구속되지 않겠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러한 북한 태도는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와 맞물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북한이 이번 장거리 로켓 발사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추가 핵실험을 서두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북한은 2009년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가 의장 성명을 채택하자 이에 반발해 “자위적 조치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할 것”이라는 초강경 입장을 밝히고 실제로 이를 행동에 옮긴 바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북한은 지금까지 ‘핵실험’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전략대화를 마치면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김정은의 연내 중국 방문설 등이 나오면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객들의 논란’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는 지난 5월9일 한반도에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가능케 하는 ‘2013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빌미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아울러 미국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이 그동안 북핵 문제에 너무 무기력하게 대응했다는 점을 부각해 앞으로 이를 대선 쟁점으로 삼으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이었다. 물론 미국 국무부는 “한국 방위를 위해 핵무기는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핵무기를 배치할 어떤 의도나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라고 재배치 가능성을 일축했다. 우리 정부도 당국자 언급의 형식으로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과연 이것으로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이 법안에는 미국 국방장관이 국무장관과 협의해 의회에 전술핵 재배치와 관련된 보고서를 90일 이내에 제출토록 명시돼 있다. 미국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온 원칙적 태도를 고수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국제사회에 대한 안보 위협을 증대시킬 경우 언제든지 이 문제는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하원, 한국을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로?

문제의 핵심은 미국 하원이 한국을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아울러 전술핵 재배치 논란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반도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고 반대할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의 ‘핵부재 선언’ 이후 한국이 솔선수범해온 비핵화 원칙이 무너지면 동북아에서의 핵 개발 도미노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여기에 뒤이어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가세하고 있다. 한·일 국방장관이 이르면 이달 말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할 계획이었으나 정치권의 반대와 국민 여론을 의식해 시기를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미·일 3국은 다음 달 초 사상 처음으로 연합 군사훈련 실시를 협의한다고 한다.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은 모두 한·일 공동작전 수행체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본격적인 한·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는 순서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전술핵 배치나 한·일 군사협정 체결 논란 과정에 우리 국민과 국익은 안중에 없어 보인다. 정권교체기에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챙기려는 강대국의 이해관계만 난무하고 있다. 정부는 정권 말이라고 결코 얼렁뚱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 한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극동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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