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흔들렸다. 친노 후보를 총동원한 부산의 ‘낙동강 벨트’에서 홀로 살아남았다. 적어도 친노 후보 두 명 정도의 동반 당선을 기대했던 문 당선자 측은 입맛이 쓰다. 부산의 또 다른 당선자인 조경태 의원은 개인 역량에 의존한 선거운동을 펼친 터라 ‘문재인 효과’로 분류하기도 힘들다.

울산과 경남도 무너졌다. 선거 초반 한창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까지만 해도 두 지역에서 각각 세 석 이상씩을 기대했지만, 경남 김해갑에서 한 석을 얻는 데 그쳤다. 울산은 전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김해을에서 또다시 패배한 것은 상징적인 타격이 크다.

야권이 보는 문재인 카드의 최대 매력은 부산·경남(PK)에서의 득표력이다. 박근혜 지지층의 본진 격인 영남의 한 축을 문재인이 허물 수 있다는 것이 ‘문재인 대안론’의 핵심 근거였다. 그런데 야권의 이번 총선 성적표는 부산·울산·경남 40석 중 단 세 석. 최악의 정치 지형에서 치렀던 4년 전 18대 총선보다 문재인 한 석이 늘어났을 뿐이다.

문재인 캠프의 좌장 격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2월에 중앙당이 공천 갈등을 겪으면서 PK의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수도권과 달리 여기는 한번 꺾이면 바닥까지 추락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김흥구4월11일 부산 사상구 선거운동 사무실에서 문재인 후보가 양팔을 번쩍 들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의 ‘문재인 대세론’에 일단 제동이 걸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캠프는 총선 결과가 대선 레이스의 적신호라는 분석에까지는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문재인 캠프에 핵심적인 조언을 해준 석종득 동의대 교수(광고홍보학과)는 “대선 전망을 위해서는 의석수보다는 표 숫자(득표수)를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부산 야권 표, 10년 전 노무현보다 많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후보들은 부산에서 모두 합해 61만6000표를 얻었다.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김정길 후보가 얻은 61만9000표가 그대로 유지된 셈이다. 이는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58만7000표를 약간 넘는다(10년 동안 부산의 유권자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반면 새누리당이 부산에서 가져가는 표는 크게 떨어졌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131만 표를 가져갔지만,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77만 표로 줄어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의 득표 합계는 78만3000표였다. 10년 전 이회창 후보는 부산에서 52만 표를 더 얻었지만, 2012년 박근혜 위원장은 그만큼의 ‘표 마진’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구도다.

석종득 교수는 “이번 총선은 ‘박근혜 선거’였다는 점에서 2010년 부산시장 선거와는 또 달랐다. 박근혜 위원장이 부산을 다섯 번이나 내려왔는데도 표 차이가 늘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카드가 부산에서 박근혜의 공세를 버텨냈다고 평가하는 셈이다. 문재인 캠프는 PK에서 ‘6대4’ 정도로 버텨낼 수만 있다면 호남·수도권 우위를 바탕으로 본선 승리가 가능하리라 보는 분위기다.

문재인 캠프는 이번 총선을 사실상 ‘대(對)박근혜 대선 전초전’처럼 준비했다. 이호철 전 수석은 “총선 기획을 처음 짤 때부터, 어차피 박근혜는 부산에 내려온다, 박근혜를 극복 못하면 총선 승리도 없다는 전제로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지역구인 사상구를 넘어 부산 시민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를 진행해 박근혜의 약점을 찾았다. 다분히 ‘총선 이후’까지도 시야에 두는 준비를 했다.

FGI를 진행했던 카피라이터 정철씨는 “유권자에게 부산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답이 안 나온다. 김영삼·노무현 정도가 가끔 등장하거나 자기 지역구 의원을 대는 경우도 있지만 ‘박근혜’가 나오는 경우는 없다. 부산은 ‘대표선수’ 자리가 비어 있다”라고 분석 결과를 설명했다. 문재인 캠프는 이 빈자리를 문재인 당선자가 파고 들어갈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목표는 물론 대선까지도 유효하다.

문재인 캠프가 빠르게 대선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데에도 별 이견이 없다. 한 민주당 전략통은 “이명박 대통령은 본격 대선 준비만 2년을 했다. 지금 시작해도 늦다”라고 말했다.총선을 진두지휘했던 ‘부산팀’이 대선 체제에서도 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나름 문재인 대선 전략을 기획·판매하려는 ‘벤처형 캠프’도 여러 개가 벌써부터 활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문재인 카드의 잠재적 ‘대체재’로 주목받았다. 문재인 대세론에 제동이 걸리면서 ‘김두관 대안론’이 뜨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에서는 “부산보다 경남의 성적이 훨씬 나쁘다. 2010년 지방선거 수준으로 버텨낸 부산과 달리 경남이 완전히 무너졌다. 김두관 지사가 오히려 더 명분이 없다”라는 평가가 만만치 않다.

친노 진영의 한 핵심 관계자는 “김두관 지사는 원래 경남 도지사에 재선되리라 보지 않기 때문에 올해 대선에서 내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번 총선 결과가 본인에게도 부담은 되겠지만, 재선 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고 보고 대선에 확 도박을 걸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경남 총선 패배가 역설적으로 김두관의 대선 도전 가능성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장외 대형주’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의 행보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안 원장은 총선 이틀 전인 4월9일 격전지인 부산 방문을 검토했다가 취소했다. 부산의 총선 성적표와 문재인의 대선 가도 등이 모두 얽힌, 미묘한 시점의 미묘한 행보였다.

야권의 총선 패배 이후 안 원장에 대한 기대치가 더욱 상승하는 가운데, 야권에서는 안 원장이 대선 직전까지 신비주의 전략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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