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와 연합뉴스 등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장기 파업 언론사’가 있다. 4월6일 현재 파업 106일째를 맞고 있는 〈국민일보〉다. 현재 분란을 겪고 있는 언론사 가운데 제일 오래 파업을 해왔다. 150여 조합원 중 103명이 지난해 12월23일부터 파업 중이다. 비교적 공적 소유구조를 지닌 방송사 노조들이 ‘정권의 언론 장악’을 비판하며 파업을 벌이는 게 2012년 한국 언론의 한 풍경이라면, ‘가족의 사유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민일보〉 파업은 한국 언론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현재 파업에 참가한 김지방 〈국민일보〉 기자는 이번이 두 번째 파업이다. 1999년에 입사한 그는 ‘막내 기자 시절’이던 2001년 초에 45일 동안 파업을 한 바 있다. 노조는 회삿돈을 횡령한 조희준 당시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조희준 회장이 물러난 이후 취임한 이가 조용기 목사의 차남인 조민제 사장(현 회장)이다. 사실 이번 파업 이전만 해도 조민제 회장과 노조는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한 기자에 따르면, 조희준 전 회장이 나가고 나서 취임한 조민제 회장은 ‘명예군주’ 같은 이미지였다. 노조 공정보도위원회가 보도 누락이나 보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 이를 대체로 수용하고 이에 대한 재발 방지책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노조와 협의해 편집국장 평가투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노사 사이가 벌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2009년 1월 조민제 사장이 (주)경윤하이드로에너지를 개인적으로 인수하는데, 조민제 사장이 ‘경윤에 45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배임 혐의를 받으면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지난해 10월 말 조민제 사장은 배임 혐의로 기소되었다). 노조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노조는 경영진 선임권을 가진 국민문화재단에 사장 해임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고, 회사 측은 이를 문제 삼아 지난해 10월 조상운 노조위원장을 해고했다. 김지방 기자는 “회사 인트라넷에서 ‘조상운 해고’라는 글을 보고 분노하고 섬뜩했다. 그동안 노조를 통해 회사의 여러 문제를 바로잡았는데, 이제는 회사가 더 이상 노조와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혔다”라고 말했다.


ⓒ김흥구4월5일 〈국민일보〉 노조가 편집권 독립 보장을 기원하는 ‘목요 기도회’를 열었다.

노조위원장이 해고되고 나서 실시된 편집국장 평가투표도 파업의 한 도화선이었다. 〈국민일보〉는 단체협약을 통해 편집국장 평가투표를 하고 75% 이상이 불신임하면 회사가 인사 조처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김 아무개 편집국장에 대한 평가투표에서 75% 이상 불신임 결과가 나왔는데도 회사 측은 인사 조처를 거부했다. 파업에 참여 중인 한 기자는 “편집국장이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나 대기업을 비판하는 기사 등에 민감해했다. 이에 대한 기자들의 불만이 불신임으로 이어졌다”라고 말했다.

12월23일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이후 〈국민일보〉는 간부진과 일부 파업에 불참한 조합원을 중심으로 신문을 제작 중이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회사 측은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조상운 노조위원장이 인사위원회에서 했던 발언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 소송(3억원)을 했고, 파업에 동참한 조판팀 조합원 세 명에게 손해배상 소송(3000만원)을 내기도 냈다. 노조 집행부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혐의로, 조민제 사장 집 앞에서 유인물을 돌린 조합원 15명에게는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소송을 걸었다. 노조 측도 설교 시간에 노조를 비난한 조용기 목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위원장 해고와 소송으로 대응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중순, 상황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 노조가 ‘신문법상으로 언론사 대표는 한국인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자인 조민제씨가 사장을 맡는 것은 현행법 위반’이라고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일보〉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문화재단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상황이 크게 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2006년 조용기 목사가 사회와 교계에 〈국민일보〉를 환원한다고 하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측에서 〈국민일보〉 이사 2분의 1을 추천하고 다른 기독교계 교단에서 2분의 1을 추천하도록 했다. 현재 이사장은 진보적 기독교계 인사로 알려진 박종화 목사가 맡고 있다). 그런데 3월 중순 국민문화재단 이사회는 조민제 사장을 회장으로 발령하고, 신임 대표이사로 김성기 사장을 임명했다. 신임 대표는 조상운 노조위원장을 해고할 때 인사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김지방 기자는 “당시에 차기 사장으로 몇몇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사회 결과를 보고 허탈하고 무력감을 느꼈다. 이사장을 비롯해 이사들이 눈치를 보는 듯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사장이 취임한 이후에 노사는 서너 차례 물밑 접촉을 했다. 하지만 서로 견해 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노조는 편집권 독립 보장을 요구하면서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 조처와 조상운 노조위원장의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일보〉의 한 기자는 “100일 전이나 지금이나 회사 측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는 점만 확인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회사 측은 ‘대체인력을 준비하겠다’는 강경한 뜻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양측이 대치 중인 가운데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조민제 회장 재판이다. 노조 측에서는 6~7월에 1심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김지방 기자는 “회사 측이 노조위원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교섭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답은 박종화 이사장, 이영훈 순복음교회 목사, 조용기 목사와 그 가족이 쥐고 있다. 이번에 파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이렇게 취약한 것이었나 새삼 절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족의 사유화’ ‘교회 권력’ 등과 대치하고 있는 〈국민일보〉 노조는 파업 100일이 넘어가면서 한우 직거래 판매 등 수익사업을 벌이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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