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MB와 그 측근들이 사라졌다. 검찰 소환 초읽기에 들어갔던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이 뉴스에서 사라졌다. 출처 불명의 자금을 조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심재돈)는 이 의원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었다. 이상득 의원실 박배수 보좌관은 부정한 돈을 받아 구속됐다. 돈을 건넨 이국철 SLS 회장과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 모두 이상득 의원을 보고 돈을 줬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의원의 소환 일정을 총선 이후로 미뤘다”라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이상득 의원은 언론사 사회부장 등을 직접 만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 중앙 언론사 사회부장은 “이상득 의원이 ‘내 아들이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에 돈을 절대 받지 말라고 했다. 사업을 하는 사위가 생활비로 보태준 돈을 비서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라고 전했다.

 

ⓒ뉴시스검찰 소환이 총선 이후로 미뤄진 이상득 의원은 언론사 간부 등을 만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도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금품 로비를 받고 외국으로 도피한 정용욱 전 방송통신위원회 정책보좌역 이름도 사라졌다. 최시중 전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는 검찰에 입국하겠다고 통보하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건의 주범 CNK(씨앤케이인터내셔널) 오덕균 대표도 해외로 도피한 후 입국하지 않고 있다.

하나같이 정국을 뒤흔들 만한 폭발력을 지닌 초대형 게이트다. 묻혀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들이다. 비리가 꼬리를 무는데 검찰의 발은 느리기만 하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무래도 선거철이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수사는 삼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도와주는 측면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민간인 사찰과 뒤이은 청와대·검찰의 은폐 의혹은 대통령 탄핵감이라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을 수사하면서 청와대 지시로 사찰을 진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무시했다. 청와대 간부와 검찰 수뇌부가 직접 나서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수사 지휘부는 노환균·신경식·오정돈이었다. 이들은 각각 법무연수원장, 청주지검장, 서울북부지검 차장으로 영전했다.


반전의 계기, 디도스 특검 조사 개시

2008년 김종익씨는 블로그에 ‘쥐코’ 영상(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한 동영상)을 링크했다는 이유로 사찰을 당한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다. 이 부서는 수사권이 없는 정부 조직이다. 하지만 민간인을 사찰했고,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뒷조사를 벌였다.

총리실 사찰 사건은 검찰과 국정원 등이 권한을 남용한 사건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민주주의의 법과 시스템을 무너뜨린 국기 문란 사건이다. 수사권이 없는 정부 조직이 대통령을 비방했다고 한 개인을 유린했다. 그리고 청와대에 직보했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직제상 공직윤리지원관을 관리할 권한이 없다. 하지만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으로부터 정보를 받아왔다. 이영호·이인규 두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의 동향(포항·영일) 출신으로 이상득·박영준 라인의 핵심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권력 실세에 대해 항상 그랬듯이 검찰 수사는 부실했다. 2010년 7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형사1부장)은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4명을 형사 처벌했다. ‘부실 수사’ 논란이 제기됐지만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이미 다 수사했던 것을 다시 반복해봐야 똑같은 결론이다. 재수사는 불필요하다는 게 법무부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증거 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 중인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폭로에 나서면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장 전 주무관은 청와대에서 검찰 압수 수색이 언제 들어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압수 수색 이틀 전 장 전 주무관은 “청와대 최종석 행정관이 ‘검찰이 먼저 (증거 인멸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압수 수색에서 서류를 거의 가져가지 않았다. 검찰은 압수물을 담을 박스가 텅텅 비자 신문지를 구겨서 채워넣었다”라고 말했다. 최종석 행정관은 차명 전화(대포폰)를 만들어 건넨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직속 부하다. 검찰은 최 행정관을 시내 호텔에서 조사했다.

 

ⓒ뉴시스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증거 인멸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왼쪽)과 자신이 의혹의 몸통이라고 주장하는 이영호 전 비서관(오른쪽).

3월19일 장진수 전 주무관이 공개한 통화 녹음과 주장에 따르면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의 입을 막으려고 5000만원을 건넸다.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원을 건넸다. 최종석 전 행정관은 변호사 비용으로 4000만원을 주었다. 임태희 전 태통령 실장은 구속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진경락 기획총괄과장 가족에게 금일봉을 주었다. 장 전 주무관을 직접 만나 회유한 류충렬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은 이 돈에 대해 “어쨌든 청와대에서 나오는 거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류 관리관은 장 주무관이 함구하는 대가로 △벌금형 감형 △경상북도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발령 △현금 10억원 보상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장석명 비서관이 준 돈 5000만원은 국세청 간부가 마련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청와대·국무총리실·검찰·국세청이 모여서 불법 사찰 사건의 증거 인멸 작업에 개입했다는 의미다.

이제 의혹의 불길은 이명박 대통령 바로 코앞까지 왔다. 장 주무관은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 인멸 과정에 당시 권재진 민정수석이 개입했으리라 추측한다. 이 정도 사안이면 대통령까지 보고되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3월20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내가 자료 삭제를 지시하고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2000만원을 줬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몸통이라고 항변하는 회견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수사 당시 이영호 전 비서관에게서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며 ‘면죄부’를 주었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재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짐작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의혹을 풀어야 하는 핵심 관계자인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이 현 법무부 장관이다. 권 장관은 노환균 당시 서울지검장과 직접 수사 상황을 의논하던 당사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른바 메이저 언론에는 이런 뉴스가 잘 보도되지 않는다. 3월 언론은 총파업에 나섰다. MBC·KBS·YTN·연합뉴스 등이 가담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노골적인 정부 편들기 기사를 만들던 기자들이 영혼 없는 언론에 대한 자성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정권을 뒤흔들 만한 이들 초대형 스캔들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영혼 없는 언론인’에 의해 여전히 덮이고 있다. 새누리당 비서관이 선관위를 공격한 사안도 이 과정에서 거의 잊혔다.

반전의 계기는 있다. 디도스 사건 특검팀이 3월25일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다. 2007년 대선 당시 ‘BBK 의혹’을 제기한 김경준씨의 이른바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된 ‘가짜 편지’를 작성한 당사자인 치과의사 신명씨는 4월 초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경준씨는 “기획입국은 야당 쪽이 아니라 친박계 이혜훈·유영하 등이 사주했다. 검찰은 한나라당 쪽은 수사하지도 않았다”라고 폭로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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