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월2일 신년 특별연설에서 “저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저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고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겠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1월3일 이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쪽에서 뉴스가 불거졌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윤희식)는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한예진) 김학인 이사장이 EBS 이사로 선임되기 위해 최 위원장 정책보좌역 출신인 정용욱씨(50)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내용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진흥원 공금 240여 억원을 빼돌리고, 세금 50여 억원을 탈루한 혐의로 김 이사장을 이날 구속했다. 〈한국일보〉는 김씨의 측근 인터뷰를 통해 “김씨가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힘을 써줘 EBS 이사로 선임됐다고 자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최 위원장 측에 수억원을 건넸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라고 보도했다. 검찰 한 관계자는 “김씨의 내연녀가 운영하는 피부과에 최 위원장이 드나들었고, 여기에서도 로비가 진행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2008년 3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최시중 방통위원장(왼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담소를 나누고 있다.
최 위원장은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더불어 권력을 양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현 정권 실세다. 최 위원장을 둘러싼 의혹은 그의 양아들로 통하는 정용욱 방통위 정책보좌관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위원장을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최 위원장은 ‘아들 같은 사람’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여의도에 개인 사무실을 운영했다. 이 사무실을 정용욱씨와 최 위원장 비서인 신금자씨가 지키고 있었다. 2008년 정씨는 방통위 정책보좌관으로 채용되어 최 위원장 옆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당초 최 위원장은 정씨에게 2급 자리를 주려 했으나 행안부가 반대했다. 결국 4급 방송연구 담당 자리를 새로 만들면서 정씨는 방통위에 입성했다. 정씨는 방송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신금자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정씨는 지난해 신씨와 재혼했는데 두 사람이 관련 업체에서 과도한 축의금을 걷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사태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2010년 2월 정씨가 부친상을 당했는데 업체로부터 걷은 부의금이 수억원대라는 말이 돌면서 관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선 직전까지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109㎡(33평) 아파트에 전세 살던 정씨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강남으로 이사했다. 최근까지 정씨 부부는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아파트에서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를 내고 살았다. 현재 이 아파트 116㎡(35평) 시세는 14억원, 전세가는 약 7억5000만~8억원이다. 어림잡아도 월세로 300만원 이상 내야 한다. 월급을 고스란히 월세로 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방통위를 담당하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지난해 9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정 보좌관이 이혼하면서 전처에게 10억원이 넘는 위자료를 주었다는 소문도 있다”라고 말했다.


“최시중 관련 비리는 얘기할 수 없다”

정용욱 보좌관은 방송·통신업계에서 가장 막강한 위력을 가진 실세였다. 그는 방송사 간부 인사에 깊숙이 개입했다. 승진을 하려는 방송사 간부가 그를 만나기 위해 서초동 일식집 ‘부○○○’, 신문로 일식집 ‘어○○’에서 줄을 선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방송사 사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연예인이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에도 관여했다. 규모가 큰 통신업체와 관련해서는 의혹의 덩어리가 더 컸다. 민주통합당 신건 ‘MB 측근 온갖 비리와 의혹 조사위원회’ 위원장은 1월5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차세대 이동통신용 주파수 할당 문제와 관련해 특정 통신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 케이블TV 업체에서 골프 회원권을 포함해서 수억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한창 보도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정씨가 통신사 과징금을 깎아주고 돈을 받았다는 의혹, 통신사가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 등이 꼬리를 물었다.

지난해 9월 〈시사IN〉은 방통위 황철증 통신정책국장이 자녀 학비 등을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제211호 관련 기사 참조). 이 기사는 최 위원장과 정씨가 통신업체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첩보에서 시작되었다. 취재 과정에서 황 국장은 “윗선에 최 위원장과 정 보좌관이 있다. 다음 약속 때 자료를 가지고 나오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씨는 “모든 게 내 잘못이다”라고 말을 바꾸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청와대와 검찰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최 위원장과 관련된 의혹이 나온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실세의 위력에 사정기관이 꼬리를 내렸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최방통’과 관련된 정보를 올리면 바로 최 쪽으로 보고된다. 그러면 역으로 당하게 된다. 정보기관 그 누구도 이상득과 최시중에 관한 비리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최 위원장은 1500명으로부터 핵심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고 한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대통령과 정기적인 독대 시간을 갖는데 그 영향력이 국정원장보다 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뉴시스정용욱씨에게 돈을 건넨 혐의를 받는 김학인 이사장(왼쪽). 뇌물 의혹에 연루된 황철증 국장(오른쪽).

〈시사IN〉 보도 이후, ‘나는 꼼수다’에서 정씨와 최 위원장 관련 의혹을 제기하자 지난해 10월 정씨는 바로 사표를 냈다. 정씨는 측근을 통해 기자에게 “오해가 있다. 만나서 해명하고 싶다”라고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 뒤 서둘러 해외로 출국했다. 한 방통위 관계자는 “정씨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근거지로 동남아에서 통신사업을 하겠다며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해 12월 귀국해 사업과 관련해 사람들을 만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15일 검찰은 EBS 김학인 이사와 한예진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최시중 위원장과 정용욱씨의 비리에 대한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비리의 핵심 인물이 정씨라는 것이 명확해진 시점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정씨에 대한 출국금지도 신청하지 않았다. 바로 그날 정씨는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정씨는 타이를 거쳐 현재는 필리핀에 머무른다고 한다.

최시중 위원장은 1월5일 최근 불거진 각종 의혹과 관련해 “내가 알기로는 진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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