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2월21일 저녁 인사청문회를 마친 한승수 총리 후보자가 민주당 소속 청문위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난 2월22일 오전 9시, 서울 통의동 대통령당선자 집무실에서 국무위원 후보자 회의가 열렸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틀간의 청문회를 마치고 출석한 한승수 총리 내정자를 위로한 뒤 15명 국무위원 후보자 전원을 둘러보며 말했다. “청문회 준비를 철저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여러분이 미리 철저한 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별다른 돌발 변수가 터지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의 첫 국무회의는 2월29일 오전에 열린다. 이 당선자는 22일 회의에서, 2월27~28일 장관 인사청문회가 끝나는 즉시 밤늦게라도 국무위원을 임명하고, 다음 날 첫 국무회의를 열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들은 일주일 후에 열릴 첫 국무회의에 모두 무사히 참석할 수 있을까?

이명박 내각이 출범 전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2월20일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양보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무난해 보였다. “새 정부가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주호영 당선자 대변인)라는 논평을 나왔을 정도다. 그런데 다음 날 총리 인사청문회가 시작되면서 난기류가 형성됐다. 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한 총리 내정자의 학력 부풀리기 의혹을 제기했다. 서갑원 의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편법 증여와 아들의 병역특혜 논란까지 불거졌다. 청와대 수석과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도 하나둘씩 터져나왔다.

총리 인사청문회 마지막 날,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문학적 수사를 동원해 장문의 브리핑 원고를 썼는데, 첫 문장이 “통합민주당은 지금 고민에 빠졌다”였다. 이 표현 속에는 먹잇감을 잡았다는 희열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의 속마음까지 드러나 있다. 총리 인사청문회 위원으로 활동한 민주당 의원 다섯 명 중 서갑원 의원을 뺀 나머지는 수도권에 지역구가 있다. 청문회장에서 맘껏 입심을 발휘한 이들은 청문회 후 인준을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입을 닫았다. 한 의원은 “기준대로 하자면 부결이 맞지만 총선이 코앞인데 첫 내각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 추이를 더 지켜보자”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22일까지 총리 인준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 못했다.

인사청문회 비상등 켜진 '부자 내각'

민주당만 고민에 빠진 것은 아니다. 총리 인사청문회가 열리던 날, 국회 앞마당에서는 대통령 취임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지난 몇 차례 취임식에 비해 연단 높이가 눈에 띄게 낮았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자는 정신을 표현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정작 취임도 하기 전에 낮아져버린 이명박 당선자의 지지율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인수위의 성급한 정책 발표와 몇몇 인수위원의 부적절한 처신이 초반 지지율 하락을 불렀다면, 인사 논란은 이제 정치 쟁점으로 커지는 형국이다.

 

총리 인준은 전통적으로 갓 출범하는 정부에게 첫 시험대가 되곤 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 내정자 인준 동의를 수개월이나 끌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열흘 후에야 김영삼 정부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 총리의 제청을 받는 형식으로 첫 내각을 꾸렸다. 노무현 정부의 첫 내각도 취임식 이틀 후에야 꾸려졌다. 한나라당이 대북 송금 특검과 고건 총리 내정자의 인준을 맞바꾸자면서 버텼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 6월 인사청문회가 도입되면서 대통령의 인사가 국회에서 발목 잡힌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국무총리 내정자 두 명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 10여 명이 자격 시비 끝에 낙마했다. 인사청문 대상은 2005년부터 모든 국무위원으로 확대됐다(단,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는 인준 절차가 없다).

 

이제 이명박 정부가 그 시험대에 올랐다.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청소년보호위원장 시절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과 논문 중복 게재 논란에 휩싸였다. 〈통일은 없다〉를 쓴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통일부 수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질 시비를 겪고 있고,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제자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무엇보다 각료 후보자들의 많은 재산에 눈총이 모아지고 있다. 각료 후보자 12명이 두 채 이상 집을 가졌고, 그중 4명은 네 채 이상 가졌다.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40건을 신고했고,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절대농지 투기 의혹으로 적격성 시비에 휩싸였다. 이들의 재산은 평균 38억 원, 참여정부 각료보다 3배나 부자다.

2월22일 통합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하필이면 땅 부자로만 첫 내각을 구성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논평을 발표했다.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둔 민주당의 관심이 어디 쏠려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말이다.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은 같은 날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반박하면서도 “정당성 여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라며 여론 동향을 주시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는 첫 주부터 여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기자명 안철흥 기자 다른기사 보기 ah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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