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라는 이름의 폭력
  • 허지웅 (칼럼니스트)
  • 호수 234
  • 승인 2012.03.1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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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 폭행녀’ ‘국물녀’ ‘슈퍼 폭행녀’가 사실과 무관하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문제는 선정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사법당국의 기능을 행사하려 드는 정의감이다.
   
정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악당 노릇에 충실한 사람을 보면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정의감을 사명처럼 짊어진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이디 아민이든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내추럴 본 사탄’이라기보다 역사라는 무협지 서사 안에서 악역이 되더라도 주어진 자기 역할이 있다고 굳게 믿는 분열적 망상가였다. 그런 태도가 제도 권력의 중심부에서 독재를 낳는다고 했을 때, 주변부에서는 자경단을 양산한다. 사실 이건 진영 논리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요즘 들어선 흔한 풍경이다.

최근 발생한 몇 가지 사건을 들여다보자. 우선 ‘임신부 폭행녀’다. 임신부가 종업원으로부터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여론이 들끓고 성토가 쏟아졌다. 가맹점주는 사업을 포기하고 점포를 내놓았다. 이후 종업원이 임신부의 배를 가격하지 않았다는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이번에는 임신부에게 질타가 집중되었다. 신상이 공개되고 손가락질이 이어졌다. 임신부는 현재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얼마 후 ‘국물녀’ 사건이 터졌다. ‘대형 서점 공공식당에서 아이 화상 테러. 그리고 사라진 가해자를 찾게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로부터 발화되었다. 아이가 뜨거운 된장국물을 뒤집어써 화상을 입었고 가해자는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공개수배 무한 리트윗을 재촉하며 흥분했다. 가해자가 경찰에 자진 출석해 일방적으로 테러리스트가 된 상황을 호소하고 CCTV가 공개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아이가 식당 안을 뛰어다니다가 상대와 부딪치면서 쌍방이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며칠 뒤 ‘슈퍼 폭행녀’가 등장했다. 중년 여성이 슈퍼마켓에 들어와 다짜고짜 여학생을 구타하는 CCTV 동영상이 유포되었다. 폭행을 당한 여학생의 가족이 가해자를 찾아달라며 인터넷에 올린 것이었다. 그러나 운전 중이던 가해자가 학생의 무단횡단에 흥분한 것이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등장했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뉴스에 보도된 가해자 얼굴의 모자이크를 지워 범인 색출에 나서고 있다. 경찰은 가해 여성을 찾아 사법처리할 예정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을 묶어 이른바 SNS 시대, 정보가 과잉된 만큼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신중해야 한다는 정도의 결론을 도출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실제 타인의 신상을 털며 심판을 촉구한 이들의 맥락은 증발시키거나 상징적인 수준의 책임만을 요구하고, 엉뚱하게도 SNS라는 단순 도구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비겁하다.

임신부의 배를? 과격한 서사의 힘

문제는 사안의 사실관계 여부와는 무관하게, 일단 제한되거나 일방적인 정보의 선정성만을 가지고 사법당국의 기능을 행사하려 드는 정의감 자체다. 세 사건 모두 솔깃할 만한 서사를 갖고 있다. 종업원이 임신 24주인 여성의 배를 걷어찼다는 건 문장 자체로 강렬한 서사다. 강렬한 서사라는 건 팔기 쉬운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몇 해 전 배우 최민수가 실제 그런 일이 없었음에도 “노인을 차에 매달아 질주했다” “칼로 찌르려고 했다”라는 주장에 괴물이 되어야 했던 맥락과 같다. 그런 과격한 서사의 힘이 실제 사실관계와는 무관하게 자경단의 정의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이런 종류의 사건들이 주로 ‘XX녀’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건 결국 참을 수 없이 크고 시끄럽고 선정적인 가십일 뿐이다. 적어도 과거 <선데이 서울>을 볼 때는 거기 정의라는 수사를 가져오지 않았다. 기이한 퇴행이다. 국가와 제도가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으리라는 학습치는 모두의 비극이다. 그러나 송사를 법원이 아닌 인터넷에서 해결하려 드는 한 이와 같은 퇴행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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