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신종 마케팅 “공포를 팔아요”
  • 허지웅 (칼럼니스트)
  • 호수 230
  • 승인 2012.02.1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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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과 게임을 대상으로 한 의 공포 마케팅은 문제를 단순화한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고찰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쓸데없는 짓이 되고 만다.
   
<조선일보>는 한때 꽤 잘나가는 ‘일진’이었다. 대상을 하나 골라잡아서, 서슬 퍼런 수사로 적화시키고 지속적인 후속 기사와 기획으로 쑥대밭을 만드는 데 기민한 능력을 보였다. 이 매체가 일진 노릇을 하는 데 문화면은 상당히 훌륭한 보루였다. 이른바 ‘조선일보 문화면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했고, 실제로 잘 기능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진보든 보수든 좀 유명하다 싶은 사람들은 <조선일보> 문화면에 글을 실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게 통했다. 이후로는 전과 같지 않았다.

‘안티조선’ 운동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문화 시장 전반에 거품이 빠지고 매체 환경 또한 인터넷으로 이동하면서 ‘문화면 권력’이라 부를 만한 게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진이었던 <조선일보>는 목소리만 큰 뒷방 늙은이가 되었고,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참을 수 없다는 중얼거림 정도가 들려올 뿐 과거와 같은 파급력을 누리지는 못했다.

일단 크게 터뜨려 어젠다로 만드는 호방함

   
올해 들어 <조선일보>에 특이할 만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전형적인 패턴이기는 하지만, 눈길이 갈 만큼 매우 의욕적인 자세로 일진 노릇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과거만큼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보아야겠으나 일단은 “야 니들 이거 하지 마, 이거 하면 큰일 나!”식의 목소리가 하도 커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희생양은 웹툰이었다. 지난 1월 초 “‘열혈 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학원 폭력의 혐의를 문화 콘텐츠에 두는 기획이다. 흡사 컬럼바인 총기 난사의 주역들이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듣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식의 이와 같은 해석은 이제 와서 새삼 입에 올리기도 군색할 정도로 거의 폐기되다시피 한 이론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부터 <조선일보>의 일진 노릇은 아무리 낯부끄러운 논리라도 일단 크게 터뜨려 어젠다로 만들어버리고야 마는 호방함으로부터 추진력을 얻는 것이었다.

웹툰에 이어 <조선일보>가 찍은 대상은 게임이다. ‘게임, 또 다른 마약’이라는 제목의, 꽤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규모 기획 기사가 등장했다. 기사들 제목만 봐도 무시무시하기 이를 데 없다. “게임중독 뇌, 마약중독처럼 변해” “게임과 현실 구분 못해 폭행·자살·살인까지” “유아에 게임기 주는 건 음식 쓰레기 주는 셈” “어릴 때 중독된 뇌, 평생 게임기만 봐도 손 움직여” “4년간 하루 14시간씩 게임, 난 현실에서 죽은 존재였다”.

공포를 판매하는 건 유사 이래 가장 확실한 세일즈다. 특히 <조선일보>가 이 방면에서 아주 뛰어나다. 공포를 팝니다! 공포를 팔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공포를 산다. 어쩐지 아이들이 말을 들어먹지 않고 청소년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된다는데 여기 바로 명쾌한 원인이 있네? 웹툰과 게임! 이 단순한 해법을 받아들이는 순간 퍼즐은 완성된다. 상황은 명료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을 고찰하거나 해결하려 하는 모든 노력은 쓸데없는 ‘닭짓’이 된다.

<조선일보>의 공포 마케팅은 당장 눈앞의 편한 대상을 원흉으로 몰아 문제를 단순화하고,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악랄하다. 그 와중에 강화되는 건 일진으로서의 매체 권위뿐이다. 실제로 공포 마케팅의 소재가 될 만한 예민한 사례와 개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게임도 웹툰도 날씨도, 하다못해 <조선일보>도 언제든 폭력의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게임이나 웹툰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총체적 상황과 환경의 맥락에 맞추어져야 마땅하다.

오히려 이런 식의 공포 마케팅과 그렇게 설정된 어젠다가, 역으로 청소년들의 일탈에 (말하는 쪽도 편리하고 듣는 쪽도 빨리 납득할 수 있는) 변명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회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 늙고 비대한 일진의 고성방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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