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 오전 10시, 전남 보성 도로변의 외딴집.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부부가 국화 세 송이가 놓인 마당을 지나 교회 간판 아래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1시간여 동안 세 자녀를 사망에 이르게 했던 당시를 재연했다. 큰방과 작은방을 말없이 오가며 현장검증에 임하던 부부는 결국 주방에서 자녀를 체벌하는 대목에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식탁 다리에 양손과 양발이 묶인 채 엎드린 마네킹 등 위로 부부는 힘없이 파리채와 허리띠를 휘둘렀다. 현장검증을 마치고 남편 박 아무개씨(43)는 “죽어도 싸요, 저는. 자식을 죽인 사람이 무슨 말을 해요”라고 말했다.

박씨 부부의 숨진 세 자녀는 2월11일 오전 10시 친척에 의해 발견됐다. 세 살배기 셋째 조카가 며칠째 어린이집을 결석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된 고모가 박씨 가족을 찾아갔다. 박씨 부부는 끝까지 방문을 열어주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고모부가 문고리를 부수고 들어가 숨진 조카들을 발견했다. 반쯤 담요를 덮은 채 나란히 누워 있던 시체 세 구는 이미 부패가 진행 중이었다. 아이마다 옆에는 ‘예수님 구원해주세요’라고 쓰인 쪽지가 놓여 있었다. 방 안을 들킨 박씨는 “기도를 하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데 잡귀가 와서 방해한다”라며 크게 화를 냈다. 고모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박씨 부부를 긴급체포했다.


ⓒ시사IN 조우혜맨 왼쪽부터 첫째 아이의 잘못을 기록한 어머니 조씨의 메모, 주검 옆에서 발견된 기도문, 장씨의 지시를 받아 적은 아버지 박씨의 메모.

경찰 조사에서 박씨 부부는 큰딸(9)·큰아들(7)·작은아들(3)을 1월24일부터 굶겼다고 진술했다. ‘잡귀’를 쫓기 위해 가족 전체가 금식기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이발기로 세 자녀의 머리카락도 밀어버렸다. 아이들은 굶기면서도 정작 부부는 밥을 먹었다. 어머니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막상 금식기도를 해보니 배가 고팠다. 우리는 이틀에 한 번 밥을 먹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부는 1월25일 한 차례, 2월1일 두 차례 체벌을 가했고 2월2일 세 아이가 모두 숨졌다고 진술했다. 사망 시각은 큰아들 오전 2시, 큰딸 오전 5시, 작은아들 오전 7시라고 진술했다. ‘잡귀’가 끼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혹행위에서 제외된 넷째 갓난아기는 생존했다. 체벌의 근거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마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이었다. 


살인 교사한 장씨, 2000만원 뜯어내

집 안에서 예배를 봤던 2월5일 일요일에는 신도들에게 청국장을 끓여 대접했다. 방 안에서 새나오는 사체의 악취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이 고령이었던 신도 10여 명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채 평소처럼 종교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 부부가 믿은 종교는 ‘형제교’이다. 교회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설교를 하는 목회자나 교황청 같은 중앙 통제기구를 따로 두지 않는다. 신도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로 부르고 매주 일요일 교회 예배당에 모여 성경 구절을 공부하는 등 종교 의식을 갖는다. 기존 교회와 예배 형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 혹은 사이비 종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교인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다.

경찰은 박씨 부부의 진술과 2월12일 실시한 부검의 1차 결과를 토대로 ‘일주일이 넘게 굶다가 허약해진 아이들이 폭행으로 쇼크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성경에 심취한 광신도 부부가 세 자녀를 죽인 엽기적 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했던 사건은 2월15일 박씨 부부가 새로운 진술을 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지인 장 아무개씨(45)가 시키는 대로 했다”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같은 형제교 신자인 장씨가 박씨의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에게 귀신이 들어서 그렇다. 평소 버릇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채찍으로 때려 반쯤 죽여놔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장씨는 2월2일 아이들이 숨졌을 때에도 “외부에 알리지 마라. 기도를 하면 살아난다”라고 전화로 지시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면 하나님이 금은보화로 돌려주신다’며 1월19일부터 5차례에 걸쳐 총 2000만원을 박씨로부터 계좌로 송금받기도 했다.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2월16일 오후 전남 순천 자택에 있던 장씨를 붙잡았다.


ⓒ시사IN 조우혜2월15일 박씨 부부가 전남 보성 자택에서 세 자녀 치사 사건 현장 검증을 마치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와 장씨는 2009년 순천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2009년 순천 예배당을 찾아온 박씨를 인상 깊게 봤던 한 교인이 그를 장씨에게 소개한 것이다. 당시 박씨는 보성교회를 운영하면서 신앙 생활을 간증하기 위해 순천 예배당을 찾았다. 장씨는 한때 10년 넘게 형제교를 믿어온 독실한 신자였지만 외동딸이 원인 없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간병을 위해 교회 활동을 포기했다. 장씨가 한때 다녔던 순천 예배당 운영자는 “장씨는 2005년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신도 수가 적어 운영이 어려운 박씨 교회에 월 5만원씩을 기부했다. 대신 박씨는 장씨의 딸을 위해 기도를 해줬다. 박씨가 2008년까지 다녔던 전남 진도군 예배당의 한 교인은 “마을 이장까지 했던 똑똑한 사람이 그런 판단을 했다니 믿기 어렵다. 교회가 어렵다보니 매달 5만원을 주는 장씨에게 큰 호의를 느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체장애 2급인 박씨는 국가유공자인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매달 받는 110만원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장씨는 박씨 부부 집을 찾지 않고 모든 지시를 전화로 했다고 한다. 박씨 집에서는 ‘※손님 오셔도 자녀들 잘못하면 민망할 정도로 때려서 방에 있도록’ ‘특히:첫째와 둘째 채찍질’ 등 장씨의 지시를 부부가 받아 적은 메모가 여러 장 발견됐다.

장씨는 범행 대부분을 시인하면서도 구체적인 폭행 방법만은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가령 채찍으로 아이들을 때리라고만 했을 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맞았으며’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 39대씩 때리라고 말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박씨 부부와 장씨의 진술이 상이한 부분을 중심으로 수사를 계속해나갈 방침이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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