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경협(경제교류협력)업체들이 겪는 참상은 일일이 형언하기 어렵다. 북한 내륙에 진출했던 기업들은 5·24 조치로 모든 왕래가 단절되면서 중국 기업 좋은 일만 시켜줬다며 자조와 한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개성공단 진출 업체의 경우 후발 업체의 고통이 특히 심하다. 이들은 짓다만 공장을 개성에 남겨둔 채 빚더미에 올라 있다. 그동안 아무 말도 못한 채 숨죽이며 울분을 삭여온 이들 기업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실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다. 지난 12월9일 민주당 송민순 의원실에서 이들 대북 경협 업체들의 절절한 육성을 듣고 북한 전문가 및 법률 전문가가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폭정의 하나로 기록될 이들 업체의 피해 실태 및 해법을 그들의 육성을 통해 점검해본다.

 

ⓒ뉴시스북한 개성공단 관리위원회가 군사분계선 통행 제한을 앞두고 입주 기업 면담을 요청한 2008년 11월24일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차량들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양근 (남북경협사업자협의회 회장)
“통일부가 피해대책위 결성을 방해하고 있다”

 

 

 

 

 

 

 

 

 

대북 경협 기업들의 피해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시작됐다. 김하중 장관이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남북 경협과 개성공단 활성화는 어렵다고 한 발언이 시작이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사건 등으로 경협 사업자들은 점점 강하게 대북 접촉에서 제한을 받기 시작했고 사업적 안정성도 훼손당했다. 당연히 매출액도 급감했다.

5·24 조치는 빈사 지경에 이른 남북 경협의 숨통을 끊은 조치이다. 수많은 사업자가 자신이 투자한 공장과 설비, 시설들을 둘러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 설비를 중국이나 해외 기업이 차지한 채 생산하고 있어 결국 경쟁 업체를 도와준 꼴이 됐다.

최근 정부의 생색내기식 접촉 허용을 통해 확인한 북한 측의 자세는 대북 사업자들을 더욱 실망시키고 있다. 북한 측은 우리 기업들의 어려운 현실은 모른 척하고 오히려 생산시설 및 설비에 대한 압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간의 영업매출 손실에 대해서도 남쪽 기업이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때 남북 통일의 전령사로 칭찬받았던 경협 기업들은 이제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피해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은 규모나 수혜자 면에서 너무 형편없다. 처음으로 지원책이 시행된 지난해의 경우 지원액 규모도 절대적으로 작았지만, 집행률은 더욱 미미했다. 수혜 기업도 신용이나 담보가 있는 일부 기업에 한정되었다는 점에서 결정적 문제가 있다. 정말 어려움에 처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문을 닫은 기업의 경우에는 아예 지원을 받지도 못했다. 남북협력기금에 의한 지원도 정부와 관계 있는 기업은 거의 무이자에 가깝게 지원받았지만 민간 경협 사업자는 훨씬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았다. 올해도 일부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통일부 관계자들은 말하지만 그 규모나 조건에 대해 기업들과 전혀 공유하지 않고 있다. 기업에 따라 손해를 입은 상황·조건·규모 등이 다 다르다. 지원이 효과적이려면 기업별로 맞춤형으로 해줘야 하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어떤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시혜적 차원에서만 접근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피해 기업들에 대해 사업은 하지 못하게 하면서 대출로 연명하라고 하는 발상이다. 대출이 아닌 피해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류우익 장관 취임 이후 제한적인 차원에서 대북 접촉이 허용되고 있으나, 존망의 기로에 선 경협 기업들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종교계나 NGO 기구에게만 접촉을 허용 중이다. 인도적 지원은 당연히 확대해서 전면적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이고, 경협 기업들에 대한 대북 접촉 및 투자 제한은 해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는 경협 기업이 경영 내적인 이유가 아니라 경영 외적인 사유(정부나 북한 측의 조치)로 인해 손해를 본 경우 그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법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30~ 31쪽 딸린 기사 참조). 현재의 남북 경협과 관련된 어떤 법규에도 이를 규정하는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피해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대부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여야 양당이 법률안 제정에 적극 나서야 하며, 특히 야당은 이를 내년 총선에 공약으로 걸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 법률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재 5·24 조치 등 정부에 의한 일련의 남북 경협 단절 조치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이 ‘남북경협기업피해대책위원회’를 결성해 (가칭)‘경협기업피해보상특별법’ 제정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법률이 없어 보상을 못한다는 법원 판결에 맞서 ‘입법 부작위’를 사유로 해당 입법을 국회에 명령하도록 요구하는 헌법소원도 준비하고 있다.

 

 

 

 

 

 

 

ⓒ(주)씨에스글로벌 제공개성공단 밖 사천강에서 모래를 채취하는 모습(위). 박왕자씨 사망 사건 이후 사업이 중단됐다.

 

 

그런가 하면 통일부가 ‘피해대책위’ 결성을 방해하고 있어 경협 업체들을 분노케 한다. 대책위 핵심 주체가 어느 기업 누구인지 회의 참여 회사들을 상대로 집요하게 탐문하고, 추후 있을 정부 지원에서 ‘대책위’ 참여 기업들에는 불이익을 줄 것처럼 암시함으로써 기업의 참여와 결속을 가로막고 있다. 국회는 통일부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감시에 나서야 할 것이다.


3자가 함께 피해 신고처 운영해야

기업들의 피해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정부·국회·경협 기업 3자가 공동으로 ‘피해 신고처’를 운영하고 이를 토대로 지원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이미 정부도 지난 10월 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대한 통일부 장관 답변에서 피해 신고처 수용 의사를 밝힌 바 있으나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경협 기업들의 의견은 통일부·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남북경협기업피해대책위원회 3자가 ‘신고처’를 공동 운영하되 외통위원장이 책임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신고 기업도 많아지고 내용도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에서 향후 남북 관계가 정상화될 경우 경협 사업을 수행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을 때 대부분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은 정부의 남북 경협 단절 조치가 가져다준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과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남북 양측이 경협 기업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관점의 전환과 진정성을 갖춘 태도가 필요하다.

피해 업체 A(대북교역 업체)
“직원 월급도 못 줘 형사 입건된 상태”

 

 

 

 

 

 

 

 

 

남북 경협 업체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레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 회사는 2007년 건립되어 남북 간 물류 교역사업을 했다. 그 이전에는 중국 사람들을 통해 교역했다. 2007년부터 개성과 금강산을 통해 육로 교역이 되면서 직접 교역을 하니 교통비용도 줄어들고 북한에 가서 품질 확인도 할 수 있었다. 5·24 조치 직전 1월부터 4월까지 육로를 통한 교역 규모가 2000만 달러가 넘을 정도로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동해안에서는 모래사업을 하는 남쪽 기업 10여 곳이 북쪽과 교역 중이었다. 200만 달러를 투자해 북쪽의 석장을 개발해 골재와 일부 석재를 들여오기 직전에 5·24 조치가 취해졌다. 그 이후 매출이 급감했다. 나와 한두 명만 남고 직원들 모두 회사를 그만뒀다. 직원들에게 월급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해 형사소송에 걸려 지금 형사 입건된 상태다. 다른 협력업체도 사정은 모두 마찬가지다. 관련된 업체가 100여 개이고 근로자가 1000여 명 속해 있는데, 이제나저제나 남북 관계가 개선될까 기다리며 다른 직장도 못 구하고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 얼마 전에 금강산을 다녀왔는데 금강산의 우리 시설을 중국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다 중국 기업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안함 사건 때 경협 기업 희생양 삼았다”

우리는 세금을 못 내 체납 업체로 분류되었다. 빌린 자금도 못 갚고 있다. 소송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북한에 투자한 돈, 수많은 계약 주체 그 모든 것이 5·24 조치 하나로 물거품이 되었다. 암담하다. 5·24 조치 이후 이런 자리가 수십 번은 있었던 듯하다. 한나라당 주최, 민주당 주최, 통일부 주최 등등. 수없이 많은 자리에서 우리 이야기를 줄곧 해왔지만 어느 것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일부가 우리 이야기를 진정성을 갖고 들어줄까. 내가 절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의미나 있을까.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또 이야기한다.

 

 

 

 

 

ⓒ사진공동취재단2007년 3월 북한 개성공단 내 한국 의류업체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5·24 조치 이후 우리 업체들은 많이 참아왔다. 그동안 내부 갈등으로 비춰질까봐 조용히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사실 천안함 사건 해결 과정에서 정부는 우리 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러면 희생이 된 우리 기업들에게 보상이 있어야 한다. 남북협력기금을 막는다고 북한이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에 돌아온다. 이미 시행된 사업들과 최소한 우리가 투자한 시설, 이것들은 회수되어야 한다. 방치되어 노후화하는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물자는 보장되어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통일부 장관이 대출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연내에 꼭 이뤄지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더 미루면 회복할 수 없는 신용불량 상태로 빠지게 된다. 

피해 업체 B (북한 내륙 진출 업체)
“기계가 썩어서 쓰지도 못해”

 

 

 

 

 

 

 

 

나는 북한 내륙지역에서 기업을 해왔다. 5·24 조치 후 내륙 진출 기업들이 통일부에 여러 번 건의한 적이 있다. 초창기에는 5·24 조치를 해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는 기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대출 문제 등 생존 조건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전에는 대출에 아무런 문제가 없던 기업들이 신용불량 상태에 처한 만큼 이를 구제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토하겠다고 말만 하고 지난 7개월 동안 결과적으로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5·24 조치를 해제해도 그 기업들이 다시 북한에 들어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설비 투자한 기계들은 그동안 관리를 못해왔다. 오늘내일 들어간다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 기계들을 고치려면 6개월 내지 7개월은 걸린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내륙 진출 기업이 도산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이다. 왜 신용 있는 업체들만 보조해주나. 5·24 조치로 인해 신용이 없어진 기업들은 업체가 아닌가. 5·24 조치로 인한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것이 첫 번째 부탁이다.

 

 

 

 

 

ⓒ연합뉴스중국 하얼빈에서 온 국제관광단이 11월8일 금강산을 유람하고 있다.

 

그 다음에 개성공단과 금강산은 출입 건의를 고려해보겠다고 했는데 왜 내륙 기업들에 대해서는 이런 조치마저 없나. 우리가 북한에 가서 대포를 만드나? 우리가 만드는 것은 금속기기일 뿐이다. 출입을 허가해줘야 기기를 보수할 수 있지 않나. 관광 교류만 한다고 통일이 이뤄지나? 생산에 기반한 협력과 교류 없이 통일이 가능한가? 이런 이야기를 통일부에 가서 수십 번 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지금 기계가 썩어서 쓰지를 못한다. 국가 예산으로 보상해줄 건가? 신용불량 기업에 대한 구제 방안이라도 확실하게 제시해달라.

피해 업체 C (금강산 진출 업체)
“통일부와 현대아산 서로 책임 떠넘겨”

 

 

 

 

 

 

 

 

현대아산과 3년6개월 동안 금강산 사업을 했는데 통일부가 금강산 문을 닫아서 현대아산도 문을 닫았다. 현대아산에 피해보상을 요구했더니 통일부로 가라고 했다. 통일부는 현대아산과 각 기업들이 계약을 했는데 왜 이 문제를  통일부로 가지고 오냐고 반문해서 여러 번 왔다갔다 했다. 사실 이런 상태로 3년6개월을 지나왔는데, 이제 명확한 선을 그어줬으면 한다. 이번 문제가 현대아산의 잘못인가, 통일부의 잘못인가, 북한의 잘못인가. 정확한 답변을 해주어야 우리가 현대아산에 가서 따지든지 국가적으로 따지든지 할 것 아닌가.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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