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멈추는 곳에서 입맞춤이 시작된다”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저는 퇴근할 때 이 시로 굿바이 인사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제 일은 끝났고 한번 놀아볼까?’라는 제 나름의 의미를 담은 거지요. 저는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여행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 길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길가에 늘어선 포장마차 수도 다르고 손님들도 매일매일 다릅니다. 오늘은 퇴근하다가 가로등 아래 서서 정신없이 책을 읽는 한 회사원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등 뒤로 지나가면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도 저처럼 어디론가 여행을 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 눈에 그는 무척 생기 있고 빛나 보였습니다.

2011년 7월 〈파이낸셜 타임스〉 독일판 뉴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길고 자살률이 높은 산업국가는 없다. 한국인은 휴가를 통해 충전하기보다는 더 일하기를 원하고 이것의 대가는 추가 보너스와 칭찬이다. 그러나 노동효율성을 보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대다수 직장인은 상사가 퇴근하길 기다리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

이제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그것을 확장하고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점점 더 많은 경우 노동은 지극한 애정의 대상이 아니고 진지한 관심의 대상도 아니며 밥벌이를 위해 견뎌야 할 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노동하는 시간은 깁니다. 한 번뿐인 소중한 시간과 삶을 제대로 잘 쓰고 있는 거야? 안타깝지만 그 생각도 잠시, 실업의 위협은 항상 너무나 가깝습니다. 실업은 경제활동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더 순종적으로 만드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슬픈 경우에는 아주 사소한 일자리를 놓고 자신들끼리 싸우게도 됩니다. 


ⓒ이우일 그림

덧없는 인생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은 누구나 먹고 자는 것 말고 자기 자신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어떤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린 이 덧없는 인생을 사랑하게 만들 무엇인가를 필요로 합니다. 수십 년 전에 앙드레 고르가 고민했듯이 우리의 영원한 딜레마-즉 노동하는 시간은 고통스럽고 지겹고 (일자리가 없어) 노동하지 못하는 시간은 공포스럽다-에서 해방되어 인간적으로 존엄을 유지할 만큼 일도 하고 삶도 풍요로워질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좋은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러니까 ‘다가올 시대엔 일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라는 말을 이렇게 바꿔보는 거지요. ‘우린 점점 더 많은 여유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노동시간이 줄고 좀 더 많은 사람이 일하게 되고 자율적인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되는 데는 복잡한 전제가 몇 가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겁니다. 물론 한 가지 문제를 같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막상 약간의 여유 시간이 생겨도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릅니다. 텔레비전 브라운관 앞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어쩌면 술자리에서 즐겁지도 않은데 미소를 짓고 앉아 있곤 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여유 시간을 자유롭고 의미 있게 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행하듯 보내는 시간을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여행은 누구의 명령에 따르는 시간도 순종하는 시간도 안내인을 따라다녀야 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임금이나 어떤 물질적 보상과 관련된 시간도 아닙니다. 나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찾아 자기 몸을 움직여보는 시간입니다. 이렇듯 여행하듯이 보낸 시간들이야말로 인간적인 형태를 갖게 만듭니다. 마치 초가을 가로등 불빛 아래 한 권의 책이 중년 회사원에게 했듯이 말입니다.

기자명 정혜윤 CBS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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