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출은 줄여야 하고, 통화정책은 안 먹히고…. 이처럼 출구 없는 미국 경제에서 ‘부(富)의 재분배’가 ‘마지막 비상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공화당은 지난 8월 초 ‘부채상한 협상’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손발을 꽁꽁 묶는 데 성공했다. 재정지출을 삭감토록 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경기 부양, 일자리 창출, 복지 확충 등에 사용할 핵심적 수단을 상실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는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바로 부자 증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9월19일, 앞으로 10년 동안 재정적자를 3조 달러 감축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중 1조5000억 달러를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의 부유층으로부터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 때부터 시행된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 납세자에 대한 감세 조처도 중단해서 세수를 8000억 달러 정도 늘릴 전망이다. 이는 재정지출 삭감으로 불가피한 ‘저소득층 및 노령층에 대한 의료지원 감축’ 규모를 최소화하고, ‘일자리 창출 법안’(5000만 달러 규모의 정부지출 예상)을 시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Xinhua오바마 대통령(왼쪽)은 증세로 일자리를 늘릴 계획이다.

공화당 베이너 하원의장은 즉각 ‘오바마가 계급 전쟁(class warfare)을 도발했다’며 색깔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계급 전쟁이 아니라 수학이다”라고 반박했다. 공화당이 그토록 강조해온 ‘재정적자 감축’은 결국 누군가로부터 세금을 더 받아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중산층이나 빈곤층이 아니라 부유층으로부터의 세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주요 논객 중에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가 있다. 그는 지난해 펴낸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After Shock)에서 경제위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빈부격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부가 상위 1~2%에 집중된 반면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가 겪는 경제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지속 가능한 회복세를 누릴 수 있다.”

최근에는 엘리자베스 워렌 하버드 대학 교수가 주목된다.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할 예정인 워렌 교수는 지난 8월 다음과 같이 급진적인 재분배론을 역설했다. “기업가 당신이 공장에서 도시로 제품을 실어 나르는 도로는 누구의 돈으로 건설되었나. 바로 우리 모두가 낸 돈이다. 당신 공장의 노동자가 성장하기까지 교육비를 지출한 것 역시 우리 모두다.…당신은 기업에서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가져도 좋다. 그러나 그중 일부는 후대를 위해 내놓아야 하는 사회적 계약이 존재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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