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흔히 ‘신사의 나라’로 알려진 영국.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던,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나라. 비록 지금은 미국에 그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아직도 영국 사회 곳곳에는 대영제국의 자부심이 듬뿍 묻어 있다. 그 자부심 강한 영국이 8월 초 일어난 폭동으로 인해 큰 충격에 빠져 있다.

사건의 발단은 8월4일, 런던 북쪽의 토트넘 지역에서 한 흑인이 체포되던 중 경찰이 쏜 총에 맞으면서 시작되었다. 네 아이의 아버지였던 이 흑인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를 추모하고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린 것은 8월6일이었다. 처음에는 평화 시위였다. 그런데 그날 밤 젊은이가 시위대에 대거 합류하면서 시위 양상이 갑자기 폭력과 방화, 약탈이 동반된 폭동으로 변한 것이다.


ⓒAP Photo폭동이 일어났던 런던 남부 클래펌에서 8월 9일 이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거리를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있다.

늦은 저녁과 이른 아침 시간에 집중 전개된 이 폭동은 뉴스와 루머, 그리고 블랙베리 메신저(BBM)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소식이 전해지면서 8월7일 런던 전역, 8일 버밍엄과 노팅엄, 9일 맨체스터와 브리스톨 등 잉글랜드 중·남부 주요 도시로 엄청나게 빨리 확산되었다. 폭동은 8월10일이 되어서야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5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했으며, 3000명에 가까운 폭동 참가자가 경찰에 체포되고, 1000명 이상이 기소됐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약탈과 방화로 인한 피해액이 최소한 1억 파운드(약 179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났음에도 영국 사회는 여전히 폭동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폭동의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책에 대한 논의가 텔레비전·라디오·신문 등 토론장을 아직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건 초기만 해도 영국 정부는 폭동 참가자 대부분이 아프리카나 서인도제도 출신 흑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자 가운데 백인은 물론 다른 인종이 상당수 섞여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처음에 알려졌던 인종 문제는 이번 폭동의 주원인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참가자 중에는 약탈이 전혀 필요없을 것 같은 백만장자의 딸, 떠오르는 음악가 등 중산층 이상 계층에 속하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폭동에 참가했다가 기소당한 사람이 훔친 물건도 각양각색이었다. 그중에는 5000파운드(약 900만원)가 넘는 전자제품이 있는가 하면 편의점에서 훔친 3.5파운드(약 6000원)짜리 물과 1파운드(약 1800원)짜리 소품도 있었다. 이 때문에 영국 정부는 참가자들의 출신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폭동 참가자 대다수는 빈곤층 출신

이들의 인종·사회계층 등 세부 정보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디언〉이 분석한 빈곤(deprivation:이 개념은 소득수준뿐 아니라 직업·건강·교육·주거·범죄·환경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데이터이다)과 폭동이 일어난 지점 사이의 상관관계는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를 준다(아래 그림 참조). 이를 보면 런던의 경우 폭동이 일어난 장소와 빈곤층이 사는 곳은 분명히 밀접한 관계를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반대로 맨체스터의 경우에는 양자 간에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이 차이에 관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분명한 것은 비록 중산층 이상의 참가자가 소수 끼어 있긴 하지만 폭동 참가자의 대다수는 주로 빈곤층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노동당 등 진보 진영은 이번 폭동 참가자들을 빈곤 문제와 밀접히 연관시킨다.

이와 달리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비롯한 영국 보수층은, 그들이 약탈을 자행한 곳이 배고픔을 해결해줄 수 있는 식료품 가게나 부자들이 이용하는 보석상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보다 이들은 평소 자신이 가지고 싶어하던 이웃 가게를 약탈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보수 진영은 폭동 참가자를 도덕성이 결여되고 자기통제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분석한다.

그런가 하면 퇴임 이후 국내 정치에 대한 발언을 거의 하지 않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또한 이번 폭동 사태를 놓고 입을 열었다. 1997~ 2007년 ‘제3의 길’을 제창하며 중도 좌파 노선의 신노동당을 이끌던 블레어는 8월21일 〈옵서버〉 기고 글에서 폭동에 대한 진보·보수 양측의 분석이 모두 틀렸다며 ‘제3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폭동에 주로 가담한 자들은 진보 쪽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빈곤층’도, 보수 쪽에서 말하는 ‘도덕성이 결여되고 자기통제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아니다. 그보다 세계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사회 주류에서 소외된 자’(Outside the social mainstream), 즉 문제가 있는 가정 출신으로 외곽에서 겉도는 소외되고 불만을 품은 젊은 그룹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상점에서 물건을 훔친 죄로 기소돼 유치장에 갇힌 딸에게 한 어머니는 이렇게 절규했다. “도대체 왜(Why)?” 실제로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고작 몇 파운드 하는 물건을 훔치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것을 보며, 영국 사회는 이번 폭동의 정확한 원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규모와 전파 속도 면에서 영국에서 일어났던 지난 어떤 폭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번 사건은 도대체 왜 일어나게 된 것일까?


영국 신문 〈가디언〉이 빈곤 지역과 폭동 지역을 비교한 지도. 런던(위 오른쪽)은 폭동의 장소와 빈곤 지역이 일치하는 반면, 맨체스터(위 왼쪽)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노동당과 진보 계열은 사회보장 지출이 축소된 것이나 경찰 예산 감축으로 생겨난 사회불안 및 경찰력 부족을 이번 사태의 주원인으로 지목한다. 반면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은 일차 원인을 경찰력 부족이 아닌 경찰의 초기 대응 실패로 꼽고 있다. 따라서 이런 불법·폭력 행위, 나아가 영국 사회 그늘진 곳에 독버섯처럼 숨어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범죄를 계속 재생산하는 갱 문화(gang culture)에 대해 더 강력하고 엄중히 대처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번 폭동의 가장 근본 문제로 도덕성 붕괴를 꼽는다. 도덕이 무너진 현 영국 사회를 ‘망가진 사회’(Broken society)로 규정한 이들은 도덕성을 회복하고 망가진 사회를 재건하는 것을 국정 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총리와 보수당이 강조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성이다. 영국 사회의 ‘12만 문제 가정’을 건강하게 회복시켜 건강한 가정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학교에서는 예의범절과 규율·의무에 관한 교육을 하도록 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이들은 밝혔다. 나아가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을 기르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청소년 여름 집단훈련 캠프(일명 ‘국가 시민 서비스’)를 확대 실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들은 나아가 이번 폭동 가담자의 재발 방지를 위해 ‘참을성이 없는 것에는 관용 없이 따끔하게’(zero tolerance with zero toler- ance)라며 따끔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원 또한 실제로 이들에 대해 평소 양형 기준보다 25% 정도 높은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폭동 참가자와 그의 가족에 대해서는 복지 혜택 축소, 임대주택 퇴거 명령 등 강력한 처벌을 할 계획이다.

반면 진보 계열 노동당은 다른 주장을 편다. 영국 사회에 만연한 ‘가치의 위기’(value crisis)가 폭동의 원인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폭동 참가자에게만 모든 원인을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인 분석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폭동의 더 근본적 원인을 멀리는 대처 정부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인한 양극화와 사회빈곤 확산에서 찾는다. 가까이는 2010년 보수당 정부 집권 이후 ‘깎고 깎고 또 깎고’(cut cut and more cut)로 대표되는 사회보장 정부지출 축소와 그에 따른 사회불안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보수가 말하는 ‘가치의 위기’ 역시 허구라고 역설한다. 도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폭동 참가자들이나 비리 정치인이나 부도덕한 금융권 모두 마찬가지인 만큼 부도덕성을 폭동 참가자나 ‘12만 문제 가정’(그리고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 빈곤층)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AP Photo폭동으로 숨진 이슬람교도 3명의 장례식(위)이 8월18일 버밍엄 서머필드 파크에서 열렸다.

그런가 하면 블레어 전 총리는 이 같은 보수·진보 진영의 관점 모두를 ‘잘못된 분석에 의한 잘못된 진단, 그래서 잘못된 처방전’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근본 원인이 개개인과 그들의 도덕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심부에 사는, 갱과 조직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문제 있는 가족(dysfunc- tional families)’에 있다고 진단하며, 이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내서 해결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 인격 형성에 중요한 유치원·초등학교 시기를 국가가 집중적으로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당 방침은 ‘관용 없이 따끔하게’

전직 총리까지 가세할 만큼 이번 폭동 사태를 둘러싼 영국 정치권 내부의 시각 차이는 크다. 그러나 정책을 실행할 권한을 지닌 현 총리와 집권당인 보수당의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영국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런 반(反)사회 행태에 대한 대응은 훨씬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의 진압은 물론 법 적용 또한 더 단호해질 것이다. 사회적인 폭력 행위뿐 아니라 지금껏 영국 학교에서 많은 문제가 되어왔던 아이들의 법적 과잉보호 문제에 대해서도 또 다른 논쟁이 예상된다(이로 인해 교사들이 학생을 통제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권위를 잃게 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번 폭동의 단초를 제공한 인종 간 갈등 문제와 다문화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이 요구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으로 영국 사회의 밝은 겉모습 아래 가려져 있던 치부가 드러났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도청 스캔들에 이어 경제위기 와중에 밝혀진 정치권·대기업 비리에 이르기까지,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한 맨얼굴이 속속들이 드러나던 차에 벌어진 이번 폭동으로 영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크다. 그렇다고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성이 폭동 참가자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변명이나 핑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폭동은 ‘도덕성’에 대해 영국 사회 전반에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기자명 셰필드·이태희 (영국 셰필드 대학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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