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반(反)한류’ 바람은 일과성 계절풍인가, 아니면 한류 열풍을 잠재울 삭풍인가.

8월21일 낮, 도쿄 오다이바의 후지TV 본사 앞에서 많은 젊은이가 “우리는 한국 드라마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후지TV는 한류를 억지로 강요하지 말라” “후지TV는 한류 붐을 날조하지 말라” 따위 플래카드를 들고 집단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항의 시위를 주도한 ‘노 모어(No More) 한류’라는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이날 시위에 참가한 인파는 모두 6000명. 지난 8월7일 열린 1차 항의 시위 때의 인파가 2500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2주 사이에 참가자가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날 반한류 시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어 ‘힘내라 일본! 전국실행위원회’와 ‘일본문화채널 사쿠라’가 주도한 항의 시위대가 한류 드라마와 케이팝(K-pop)을 집중 방영하는 후지TV를 ‘하지(수치)TV’ ‘우지(구더기)TV’ ‘김치TV’라고 매도하면서 “바퀴벌레 소녀시대와 카라를 일본에서 몰아내자”라고 외쳤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날 시위 인파는 모두 5000명. 앞서의 시위대와 합치면 2차 반한류 시위에 1만명 넘는 인원이 참가했다는 것이다.


ⓒMBC 화면 캡쳐도쿄에 있는 후지TV 본사 앞에서 8월21일 수천 명이 2차 반한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또 1차 반한류 시위 직후 후지TV의 시청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였다. ‘재일(동포)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라는 우익 단체까지 가세해 이들은 8월8일을 ‘후지TV를 시청하지 않는 날’로 정했다. 참고로 후지TV의 채널 번호는 8이다. 그래서 8월8일을 후지TV의 날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반한류 시위의 표적이 왜 하필이면 후지TV인가. 반한류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후지TV는 평일 오후 ‘한류 알파’라는 한국 드라마 전용 방송 시간대를 만들어 매일 3시간씩 한국 드라마를 집중 방영한다. 이를 모두 합치면 주 40시간. 이에 비해 TBS는 20시간, TV도쿄는 12시간, NHK는 4시간에 불과하다. 게다가 TV아사히와 일본TV의 한국 드라마 방송 시간은 현재 전무하다. 그래서 이들은 텔레비전 방송사가 방영하는 자국 드라마 비율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는 타이완의 예를 들면서 일본에서도 한류 드라마 방영 시간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한류 단체들의 후지TV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뿌리가 깊다. 예컨대 2009년 세계 피겨스케이트 대회에서 김연아 선수가 우승했을 때 후지TV는 시상식에서 한국의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편집 없이 모두 방영했고, 김연아 선수가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도는 ‘위닝 런’까지 무려 20분을 방송했다. 그러나 2007년의 안도 미키 선수, 2008년과 2010년 아사다 마오 선수가 우승했을 때는 기미가요(일본 국가) 제창, 일장기 게양 부분을 편집하고 시상식의 단 몇 분만 방영했다고 공격한다.


한국 자본이 후지TV를 개조한다?

또 후지TV는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 축구 국가대표 경기 때 ‘일·한전’이 아니라 ‘한·일전’이라고 표기했으며, 후지TV의 인기 만화 〈사자에 상〉에서 올 3월 갑자기 동방신기의 공연 포스터가 만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고 공격한다. 또 올 7월에는 한류와 전혀 무관한 프로그램에서 “소녀시대와 같이 다리가 예뻐지도록, 카라의 라이브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대사가 튀어나왔다고 공격한다.


ⓒMBC 화면 캡쳐시위대가 ‘한국은 반일 국가’ 따위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반한류 단체들은 또 후지TV의 히에다 히사시 회장이 지난해 2월 고려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을 문제 삼는다. 이와 함께 후지TV의 외국인 주식 보유 비율이 방송법에서 정한 20%를 넘어 28.63%에 달한다고 공격한다. 즉 히에다 회장은 고려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한류 전도사’로 변신했으며, 한국과 중국 자본이 주식을 매점하여 후지TV를 한국과 중국에 호의적인 미디어로 개조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반한류 단체들의 주장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생트집일까. 일본의 한 방송 전문가에 따르면 후지TV가 평일 오후 한류 드라마를 집중 방영하는 것은 첫째로 시청자들이 시시콜콜한 일본 드라마의 재방송을 보기보다는 주인공의 역할이 분명한 한류 드라마를 시청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또 시청률이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요즘, 구입 비용이 낮고 일정한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한류 드라마가 큰 매력이라고 지적한다.

더불어 후지TV가 한국 드라마 방영과 케이팝의 보급에 주력하는 까닭은 산하에 일본 최대 음악 관련 출판회사인 ‘후지 퍼시픽 음악출판’을 거느리고 있어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회사는 현재 일본 음반 5만 개 정도의 저작권을 보유했으며, 한국 노래와 드라마 저작권도 여럿 갖고 있다. 그래서 후지TV가 자회사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케이팝의 보급과 한국 드라마 방영에 힘을 들인다는 얘기이다. 후지TV는 그 일환으로 올봄 10억 엔(약 140억원)을 들여 도쿄 에비스에 케이팝 상설 공연장인 ‘K 시어터’를 개관하기도 했다.

반한류 단체들이 후지TV를 집중 공격하는 저변에는 ‘후지 산케이 그룹’의 중핵 회사인 후지TV에 대한 배신감도 깔려 있다. 현재 ‘후지 산케이 그룹’은 후지TV의 주식 100%를 소유한 ‘후지 미디어 홀딩스’가 지주회사이다. 이 지주회사가 후지TV는 물론 극우 성향의 〈산케이 신문〉 주식 39.99%, 역사 왜곡 교과서를 출판해 큰 물의를 일으킨 출판사 후소샤(扶桑社)의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반한류 단체들이 극우 신문과 극우 출판사를 산하에 둔 후지TV가 왜 하필이면 한류의 전도사로 나섰느냐고 불만을 터트리는 것이다.

실제로 반한류 시위를 주도한 세력 중에는 일본의 극우 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다(일본 반한류 단체는 ‘그 나물에 그 밥’  기사 참조). 이들의 후지TV 공격이 곧 한국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후지TV 본사 전경.


반한류 시위, 독도 문제로 옮아갈까

하지만 정작 대다수 일본인은 언제 그런 시위가 있었느냐고 되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KBS를 비롯한 한국 언론이 무슨 큰 변이나 일어난 것처럼 시위 현장을 열심히 취재한 반면 일본의 일간지나 TV 방송은 오다이바 소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스포츠 신문들도 오다이바에서 일어난 반한류 시위보다는 니가타에서 그 전날 열린 MBC 주최 케이팝 특별 공연을 더 크고 자세하게 보도했다. 스포츠 신문들의 보도에 따르면 니가타 특별 공연에 몰린 인파는 약 4만5000명. 이튿날 오다이바에 모인 항의 시위대의 약 5배 규모였다.

반한류 시위를 일도양단하듯 비판하는 연예인도 적지 않다. 예컨대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코미디언인 비토 다케시와 인기 코미디언 오카모토 다카시는 “한류 드라마가 싫으면 안 보면 될 것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비토 다케시 감독은 할머니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한 인물이다. 그러나 반한류 데모를 주도하는 집단이 일본의 극우 세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다. 그들은 참가 인파가 늘어나는 데 재미를 붙이면서 3차, 4차 반한류 데모도 준비 중이다.

반한류 시위가 언제 독도 문제로 옮아붙을지 모른다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한류(韓流)가 한류(寒流)로 변질될 가능성을 한국의 한류 관계자들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뉴시스반한류 단체는 후지TV의 히에다 히사시 회장(사진 가운데)이 고려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문제 삼는다.
기자명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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