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30일째를 하루 앞둔 8월1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만난 노회찬·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은 첫눈에도 몸이 축난 것이 확연했다. 두 사람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7월13일부터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시사IN〉은 단식 종료를 하루 앞두고 두 사람을 만났다.

노회찬 고문은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는 것도 힘겨워했다. 얼굴 근육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 같았다. 심상정 고문은 8월 폭염에 길바닥 농성을 이어가면서도 팔 토시를 했다. 몸은 더운데 관절마다 뼈가 시려서 이중으로 고역이라고 했다. 악수하는 손에 힘이 없었다. 


ⓒ시사IN 윤무영심상정(왼쪽)·노회찬(오른쪽) 진보신당 고문이 서울 덕수궁앞에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두 사람은 8월11일 각계 요청에 따라 단식을 끝내고 병원에 입원했다.

배가 고프면 몸도 힘들지만 머리도 뜻대로 돌지 않는다. 한 끼 굶어도 그런데, 한 달 단식이다. 질문을 던지면 답이 돌아오기까지 10초쯤 시간이 떴다. 목소리는 너무 작아 녹음이 제대로 될까 싶었다.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었다. 손꼽히는 달변가 노회찬 고문이 얼굴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한참 만에 대답한다. “말하는 게 제일 힘들다.” 한 시간을 넘기면 안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두 가지였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그리고 진보 통합. 마음이 바빴다.


단식이 30일까지 길어지리라 예상했나?

심상정(심) :문제가 다 해결될 때까지, 조금 시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역대 정치인 단식 사례를 봐도, 일정 시점이 넘어가면 정부에서 반응이 나오기 마련인데?

노회찬(노) :정부가 사람을 보내기는 했다. 천막 철거하는 용역 직원하고 경찰을 보내서 문제지. 오히려 우리가 단식 중에 노동부 장관을 만나러 갔다. 장관의 태도가 전경련 용역 같더라.

서울 집중호우 때도 농성장에 있었나?

:그때도 계속 농성했다. 비에 천막이 무너지더라. 그래서 일단 옆에 있던 민주노총 천막으로 옮겼다. 그리고 우리 천막을 더 튼튼하게 다시 쳤더니, 그 다음엔 그걸 또 철거를 해가더라. 수재민·이재민·철거민을 한 번에 경험했다.

조남호 회장이 8월10일 기자회견을 했다.

:참 실망스럽더라. 문제의 핵심인 부당한 정리해고에 대해 책임을 자인하지 않은 것은 국민 우롱이다. 한진중공업은 내가 금속노조 하면서 교섭 책임자를 해봤기 때문에 잘 안다. 노동현장 전체에서는 삼성이 ‘악질 자본’ 1위였다면, 금속산업에서는 한진이 단연 1위였다. 임금은 동종 업계의 60~70% 수준이고, 노사 합의 안 지키기로 유명했고, 노조 위원장이 두 명이나 죽었다. 제 버릇 어디 못 주고 필리핀에 가서 그 나라 노동자를 죽이고 있지 않나.

진보 진영이 정리해고를 무작정 반대만 하는 것이 옳으냐는 반론도 나오는데?

:IMF 구제금융 당시 정리해고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후 이 제도는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담시키는 구실을 했다. 한진중공업만 봐도 정리해고와 배당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게 무슨 고통 분담인가. IMF 때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게 시대정신이고 공감대다.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 사유’가 한진중공업에 어디 있었나. 흑자 기업이 돈을 더 벌기 위한 조처로 정리해고를 인정해주는 잘못된 관행을 행정부와 사법부가 그간 방치했다. 사실 정리해고라는 게 회사의 책임을 사회에 전가하는 거다. 지금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이 94명밖에 안 되는데, 한진중공업이 그 사람들 월급이 부담돼서 이 난리를 하는 게 아니다.

:이게 정리해고의 상징처럼 되어버려서, 지금은 전경련과의 싸움처럼 됐다.

 조남호 회장 청문회에서 밝혀야 할 핵심은?

:첫째는 정리해고의 부당성 문제. 다음은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만든 자금 관련 의혹과 조세 포탈 문제. 이게 핵심이다. 한나라당이 자꾸 김진숙 지도위원이 청문회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조남호 회장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김 지도위원 때문은 아니지 않나. 3·1 운동이 일제 때문에 일어났지 유관순 때문에 일어났나.

안희정 충남지사는 “정치인은 희망버스를 타선 안 된다”라고 했는데.


:정치와 희망버스를 이분법으로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특히 한진중공업 문제를 개별 노사 문제로 보는 건 안희정 도지사가 노동 문제에 제한된 인식을 드러낸 것 같아 아쉽다. 법과 제도의 잘못에서 비롯된 부당한 정리해고 문제를 정치 문제로 만들어낸 게 시민이고, 당연히 정치가 받아 안아야 하는 문제다.


30분이 지났을까. 두 사람의 목소리에 오히려 힘이 붙기 시작했다. 발음도 정확해지고 반응도 빨라졌다. 기자의 질문 없이도 주거니받거니 계속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에너지에 도리어 기자가 빨려들어서, 어느새 인터뷰가 치열해졌다.

두 번째 화두. 헛바퀴 도는 진보 통합 논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두 사람, 여기서 밥 굶고 있어도 정말 괜찮은 걸까. 진보신당이 진보 통합을 대의원대회에서 의결할 수 있다고 보는 관찰자는 많지 않다. 당 통합은 대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는데, 어떤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경 독자파가 3분의 1은 넘는다는 분석이다. 두 사람을 포함한 통합파에게 불리한 국면이다. 진보신당은 8월 당대회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8월 당대회에서 통합안이 통과될 수 있을까?

:회의적 시각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이 중요한 시기에 국민참여당 문제로 두 달을 허비해서 더 그렇다. 지금이라도 민주노동당에서 책임 있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충분히 통합이 가능하다.

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진보 통합 연석회의의 5·31 합의문을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하는데?

:5·31 합의는 계속 같이 하다가 잠시 떨어진 사람들이 다시 함께하는 데 필요한 걸 정리한 합의다. 한 번도 함께해보지 않고, 때로 대립하던 사람이 같이 하자고 끼는 건 다른 얘기다. 예를 들어 강정마을 해군기지 투쟁을 두고 우리는 민노당과 할 얘기가 없다. 그냥 같이 싸우면 되지. 그러나 참여당은 자신들이 집권할 때 만든 문제니까, 먼저 서로 얘기를 해봐야 한다.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참여당과 함께하는 문제는 진보 정당의 외연 확장 차원에서 다룰 수는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역사를 공유하는 통합 진보 정당을 만들고 난 후에, 그 통합 정당 안에서 논의할 일이다. 처음부터 대통합하자고 두 단계를 섞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원래 진보대통합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을 토대로 해서 최대한 진보 정치력을 모아내자는 기획이었다. 그러므로 다른 세력의 참여 역시 양자의 논의를 바탕으로 판단할 문제다. 그런데 갑자기 이정희 대표가 혼자 나서서 참여당 문제를 전면화하는 게 옳은가. 이는 패권적 태도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참여당이 통합 대상인지 연대 대상인지는 통합 진보 정당 내에서 따질 일이지, 이정희 대표의 판단이 그렇다고 해서 강요하는 건 진보 대통합으로 가는 길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유시민 대표는 진보 정당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가 진보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은, 진보라는 이름을 독점하려는 태도는 아닌가?

:정치라는 게 말이 아니라 실천과 결과로 책임지는 것 아닌가. 말은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졌을 때 실망을 준 것을 말로 상쇄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정치에 대해서 진지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존중한다. 그러니까 공동 실천도 해 보고 과거를 상쇄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나가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은 정동영 의원이 오히려 진보 정치인이다. 늘 최전선에 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정동영 의원이 진보 정당에 함께하겠다고 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 의원은 부담을 감수해가면서 몇 년째 몸으로 실천해 보이잖는가. 그런 차이다. 검증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고, 진보 정치인을 지지하는 대중의 판단이 중요한 거 아닌가. 그런 분들이 유시민 대표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정동영을 봐라”라는 이야기 많이 한다.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통합 논의에 임하는 태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진보 통합은 한 개인의 성향·취향·선호도 때문에 바뀔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주어진 과제다. 이정희 대표가 개인의 판단보다 이 논의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줬으면 한다.

:이 대표가 진보 대통합에 대해서 좀 더 정성껏 임해야 한다. 유시민 대표와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사적 행보라고 해명하는데, 당 대표의 출판기념회는 가장 고도의 정치행위다. 진보 대통합이 역사성을 통합하는 과정이라는 깊이 있는 성찰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역사성이 공유가 안 되는 것 같아 아쉽다.

안희정, 정동영, 유시민, 이정희…. 인물평이 거침없다. 30일 단식을 정리하는 인터뷰여서 작심을 했던 걸까. 두 사람은 2012년 대선을 두고도, ‘반드시 독자 완주를 하겠다’는 태도 대신 ‘1대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심 고문은 장기적으로 양당제로 가야 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하나같이 진보 진영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다.

민노당 얘기를 들어보면, 진보신당이 8월 당대회에서 통합을 의결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참여당과 통합 논의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8월 의결이 그만큼 중요하니까, 지금처럼 일을 어렵게 만드는 행보를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참여당 문제를 진보신당과 병렬적으로 하면 통합은 더 어려워진다.

8월에 통합안이 부결되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

:우리는 통과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경우의 수를 따져 거취를 미리 정하지 않는다.

야 4당이 통합 논의와 연대 논의를 병행하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 개혁·진보 진영이 몇 개 정당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나?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야권 연대를 지지하지만 정당을 뒤섞는 건 반대한다. 당장 한나라당을 꺾어야 하지만, 또한 한국 정치가 장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를 동시에 표한 것이다. 정치 혁신의 중심이 될 진보 정치를 함몰시키는 것은 국민의 요구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대통령 중심제 소선거구제인데, 이건 양당제가 나오기 쉬운 구조다. 하지만 20년째 다당제를 하고 있다. 정책이 아닌 지역 중심으로 형성된 두 당의 한계 때문에 빈자리가 생긴 거고, 그래서 다당제가 국민이 선택한 한국의 정치 현실이라고 본다. 다만 이명박 정부를 겪으면서, 한나라당을 꺾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1대1 구도를 만들어 와라, 방법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 이게 국민의 뜻이라고 본다.

:나는 한국 정치가 궁극적으로 삼정립(보수·자유주의·진보 3당 체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 대 보수 대결구도로 전환해가는 교두보로서, 과도적으로 삼정립을 얘기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1대1 구도’라는 국민의 요구는 대선도 마찬가지라고 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충분히 국민의 뜻을 이해하고 있다.

진보 통합에 대한 질문을 할 때는 도저히 한 달을 굶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의 건강을 고려해 인터뷰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은 둘의 에너지에 떠밀려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녹음기를 끄자, 두 사람은 그제야 힘든 티를 냈다. 노 고문은 심 고문에 대해 “생각보다 너무 건강하다”라고 앓는 소리를 했고, 심 고문은 노 고문을 “너무 부지런해서 같이 싸우기 피곤하다”라고 구박했다. 이튿날인 8월11일, 두 사람은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갔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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