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은 막간 없이 105분 내내 다섯 남자가 서로 ‘내가 미키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인증하는 것으로만 채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한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 연극 부문 예매율 1위를 차지했다. ‘뽀통령’이 나오는 〈슈퍼 영웅 뽀로로〉마저 눌러버린 이변이 대학로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본 원작으로 ‘아이돌 오타쿠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연극이 한국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게 먹힌 것이다. “과거와 달리 확대되고 성숙된 팬덤 문화에 착안했다”라는 연출진의 의도가 들어맞았다. 그만큼 팬덤은 이제 익숙한 것이 되었다. 이 연극의 돌풍은 ‘아이돌 팬’이라는 소재로도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완성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적극적 소비자’로 진화한 팬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연극이 보여주는 이야기도 옛날이야기다. 지난 10여 년간 아이돌이 진화했듯, 팬덤도 진화를 거듭했다. ‘빠순이(혹은 빠돌이)’로 비하되고 무시받던 ‘팬질’이, 누나 팬·이모 팬·삼촌 팬 등 전 세대로 분화되며 팬질 역시 하나의 여가 생활로 인정받게 됐다. ‘우리 오빠’가 여자 연예인과 사귄다는 소문이 돌면 그 여자 연예인에게 테러를 가하던 팬덤은, “아이돌도 사람이다”라며 성숙하게 그들의 연애를 축하해주는 분위기를 스스로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뒷바라지’의 스케일도 커졌다.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팬들은 물질로 응원을 표현하던 것을 넘어서, ‘부모 마음’으로까지 무장했다. 아이돌과 함께 일하는 현장 스태프의 도시락을 챙기는 건 애교다. 소속사와 계약 관련 분쟁이 있을 때는 직접 행동을 불사한다.
진화한 팬덤은 자신들을 단순한 팬이 아니라 ‘적극적 소비자’로 위치시킨다. 이들은 석연찮은 이유로 2PM을 탈퇴한 재범을 다시 무대에 세웠고, 소속사와 불공정 계약 문제로 소송 중인 동방신기의 세 멤버 JYJ의 사례를 계기로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 계약서를 만들게끔 했다. JYJ의 방송 활동 권리 보장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단 열흘 만에 자체적으로 1억5900만원을 모아 ‘JYJ, 당신의 청춘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로 5개 도시 버스 120대와 지하철 역사 21곳에 광고를 실은 일도 있다.
이처럼 ‘행동하는 팬덤’은 아이돌의 문제를 적극 공론화함으로써 문화의 영역에만 머물던 아이돌을 사회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키사라기 미키짱〉처럼 일본 원작이 아닌 ‘한국 아이돌’ 팬덤을 다룬 연극이 상연된다면, 이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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