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사고’를 쳤다. 상당한 시간 ‘연애 기간’을 가지더니, “이제 결혼해도 되겠다”라며 가족 친지에게 의사를 타진하러 나섰다.

형식과 예의는 다 갖췄다. 분가했던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먼저 통합의 원칙을 세운 뒤 거기에 맞으면 참여당도 동참시켜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이미 입을 다 맞춘 모양새다. 심지어 두 사람이 ‘성장 과정’은 다르지만, 결혼하면 얼마나 잘살 수 있는지를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 책(이정희·유시민 대담 〈미래의 진보〉)까지 냈다. 한·미 FTA, 미국과 북한 문제, 삼성과 재벌 문제 등 그동안 양측이 엇갈린 의견을 보였던, 그래서 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주제들을 다 다루었는데, 책 내용은 ‘다르다’보다는 ‘함께 갈 수 있다’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22~25쪽 딸린 기사 참조).

야권의 연대와 통합론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이후 소통합, 대통합, 빅텐트론 등 다양한 방식의 통합론이 봇물을 이뤘다. 원래 한 당이었던 민노당과 진보신당, 민주당과 참여당이 각각 합쳐야 한다는 의견, 민노·진보·참여당이 뭉쳐서 민주당과 병립해야 한다는 의견, 민주당까지 포함해 모든 정당이 합치자는 의견 등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과 진보 정당이 합쳐야 한다는 ‘빅텐트론’은 최소한 진보 진영 안에서는 별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당 운영방식이나 정당 문화가 너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원래 하나의 당이었지 않냐는 것이다. 

 

ⓒ경향신문 제공지난 3월23일 열린 ‘미래 진보와 체인지 2012’ 공개 대담에 참석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조국 서울대 교수(왼쪽부터).

 


그래서 남은 쟁점은 참여당이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인가이다. 참여당에는 집권을 목표로 독자 생존을 모색하는 길이 있다. 아니면 많은 사람이 ‘뿌리가 같다’고 여기는 민주당과 합당하는 길이 있고, 진보 정당과의 합당이라는 미지의 길도 있다. 이 가운데 참여당이 세 번째 길,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민노당과 통합하는 길을 가겠다고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정희·유시민 두 대표 사이의 통합 논의 과정을 지켜본 핵심 인사들에 따르면 먼저 문을 두드린 쪽은 참여당이다. 양쪽의 연결고리 구실을 했던 한 소식통은 “2010년 9~10월께 참여당 임찬규 대외협력위원장(현 전략기획위원장)이 이정희 대표 쪽과 통로를 만들 수 있는지 타진해왔다”라고 말했다. 참여당이 앞서 민노당 권영길 전 대표 측에 통합의 운을 뗐다가 싸늘한 반응을 얻은 후였다고 한다.

유시민은 왜 진보 정당과의 통합 택했나

참여당이 왜 진보 정당과 통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지는 유시민 대표가 6월7일 참여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유 대표는 독자 생존의 어려움을 솔직히 인정한다. “참여당은 ‘현실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최대한의 진보’를 추구하며 되도록 많은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대중적 진보 정당’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런 꿈은 아름답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처음부터 의문이었다. 선거제도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그는 연대·연합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6·2 지방선거 때의 경기도지사 선거와 4·27 김해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 연대를 이루었지만, 그 연대의 성격이 ‘협력적’이기보다 ‘대립적’이었고, 결국 효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왜 민주당과의 통합이 아닌 진보 정당과의 통합일까? 유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민주당에 들어가는 건 매력적이지 않다.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는 권력을 찾아올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사고, 새로운 시도, 경계를 넘어서는 몸, 이런 것들이다. 나는 진보 정당들과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진보 정당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는데,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에 있는 분들은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승리하는 것을 기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 승리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저기 있는데, 그 길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넘어서자는 거다.”(이정희·유시민 대담 〈미래의 진보〉)

참여당의 러브콜에 대한 민노당 당권파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얼마 후 장원섭(민노당 사무총장)-임찬규(참여당 대외협력위원장) 라인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즈음 참여당 내부의 통합 논의도 공식·비공식으로 활발해진다. 참여당의 한 고위 인사는 “지난해 말 유시민 당시 참여정책연구원장 측으로부터 진보 정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겠다며 추인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당시에는 원샷 방식(민노·진보·참여당의 동시 통합)이라는 설명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유시민 원장이 올해 1월 대표 출마를 선언한 것도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바지 사장’을 내세워서는 통합 추진에 한계가 있으리라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이정희·유시민 연결고리 구실을 한 진보 진영 인사는 “유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할 즈음 당의 핵심 인사 몇몇과 MT를 가서 당의 미래와 관련해 조율을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유 대표가 대표로 선출된 뒤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인 김영대 전 의원을 대표 비서실장에 기용한 것도 상징적이다. 민주노총은 민노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다.

 

 

 

 

 

 

ⓒ시사IN 양한모 그림

 

 

얼추 서로에 대한 탐색이 끝나자 두 사람은 함께 민심 탐색에 나선다. 지난 3월 조국 교수(서울대)의 사회로 ‘미래 진보와 체인지 2012’라는 두 사람만의 공개 토크쇼를 진행한 게 그 일환이다. 행사를 기획한 인터넷 신문 〈민중의 소리〉 관계자는 “내용은 둘째치고 두 사람이 같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양당 지지층과 일반 시민의 반응이 뜨거웠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둘의 조합이 ‘그림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즈음 참여당은 ‘진보통합정당 건설을 위한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가하기로 결정하는 등 공식 절차도 밟았다.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하던 두 사람의 데이트는 참여당이 4·27 김해(경남) 재·보선에 실패하면서 고비를 맞는다. 어떻게든 의석을 확보해 협상력을 높여보려던 유 대표 측 전략에 막대한 차질이 생긴 탓이다. 유시민 대표의 칩거로 한동안 중단됐던 양측의 만남은 두 대표가 각자 자기 비서실장을 대동하고 비공식 4자 회동을 하면서 재개됐다. 그 사이 서로 간에 ‘통합론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그리고 마침내 6월9일 두 사람이 함께 책을 출간한다고 발표함으로써 그간의 ‘연애 사실’을 공식화하고 나선 셈이다.

이정희 대표가 참여당과의 통합에 적극적인 것을 두고 민노당 일각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이정희 대표-장원섭 사무총장-경기 동부 세력이 주축이 된 당권파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진보신당과의 합당 대신 참여당과의 통합에 더 적극적이다”라는 해석이 그것이다(20~21쪽 딸린 기사 참조).

하지만 이정희 대표의 생각은 단호하다. 그는 “민노당이 더 이상 소금(꼭 필요하지만 주 메뉴는 아닌)에 머무를 게 아니라 주류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실제로 표를 얻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 대표는 예의 ‘유연한 진보론’을 편다. “우리 당이 확장되기 위해서, 현실에서 힘을 갖기 위해서는 여러 세력과 폭넓게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매우 약했으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반이 일정하게 갖추어졌으니 이제 유연할 수 있다”라는 논리다. 참여당과의 통합이 가능한 이유도 딱 잘라 말한다.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묻지 않겠다. 우리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한 열망과 가치를 공유한다면 폭넓고 과감하게 손잡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6월7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 “참여당은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제안했고, 문서로도 통보해왔다. 따라서 지금은 참여당이 진보 정당이냐, 아니냐를 규정할 상황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나 있는지를 판단해가야 할 때다”(〈미래의 진보〉). 이 대표의 이런 발언은 참여당과의 통합이 ‘계산’에서가 아니라 ‘시대적 사명’에서라는 점을 웅변한다.

그러나 이정희 대표의 ‘소신’이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참여당과는 안 된다”라는 진보 진영 내 반대파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 대표의 처지도 녹록지 않다. ‘당의 진로’를 놓고 토론이 진행 중인 참여당 게시판에는 “더디더라도 혼자 가자” “지금까지는 유 대표 하자는 대로 따라왔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다”라는 등 불만이 적지 않다. 참여당의 한 고위 인사는 “진보 정당과 통합하면 ‘친노 간판’은 내려야 한다. 따라가지 않고 그냥 남을 생각이다”라며 이탈을 못 박았다.

두 대표는 6월16일로 잡았던 출판기념회를 민노당 당대회(6월18~19일)와 진보신당 당대회(6월26일) 이후로 늦추는 등 호흡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들의 ‘도발’이 어떤 결론을 낳을지 6월 안에 윤곽이 잡힌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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