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지난 5월 2기 위원회가 구성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민간기구일까, 행정기관일까. 처지에 따라 답은 두 가지다. 방심위는 자신을 ‘독립된 민간기구’라고 말하고, 시민사회단체는 ‘사실상 행정기관’이라고 주장한다.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없는 상황.’ 방심위는 홍길동과 비슷하다. 왜 그럴까?

방심위는 2008년 5월 민간 독립기구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방송과 인터넷상의 콘텐츠 내용을 심의한다. 이 심의위원회가 행정기구가 아닌 민간 독립기구를 표방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내용 심의를 하게 되면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에 방심위를 별도로 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기 규정과는 달리 기구 성격에 대해 계속 논란이 일고 있다. 인적 구성부터 보자. 지난 5월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 문방위가 3명씩 추천해 2기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장으로 공안검사 출신인 박만 변호사가 선출되었다. 언론노조는 ‘박만 변호사는 2003년 송두율 교수 사건을 지휘한 대표적 공안통으로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결의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인선에 따른 구설이 하나 더 얹혔다. 방심위 사무총장은 위원장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현직 청와대 행정관인 박영찬씨가 내정되었다. ‘독립된 민간기구’와 ‘청와대 행정관’. 어색한 조합이다. 비판이 이어졌다.


ⓒ시사IN 안희태유엔 보고서는 촛불시위(위) 이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 영역이 줄어들고 있음에 주목한다고 지적했다.

심의 업무, 특히 방심위의 통신 심의 업무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대표적 사건이 ‘최병성 목사 사건’이다. 최병성 목사는 인터넷을 통해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쓰레기를 사용해 시멘트에 인체 유해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2008년도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었고, 환경부가 시정하겠다는 답변까지 했다. 그런데 2009년 4월 방심위는 심의요청 대상으로 올라온 최 목사의 게시글 15건 가운데 4건에 대해서 시정 요구를 결정했고, 포털사이트 다음은 이 글을 삭제했다. 심의 과정에서 글을 쓴 당사자가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없었다. 최 목사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2월 행정법원은 그 게시물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시정 요구가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과 무관하게 이미 방심위 결정으로 게시물은 삭제된 이후였다(이 사건은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이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의 말처럼, 인터넷상의 유해 콘텐츠를 규제하고 심의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심의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방심위의 통신 심의 내용을 검토한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방심위의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비판한다. 장씨는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한 포털 사이트에 누군가 싸움 방법을 문의했다. 싸움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방심위가 시정 요구를 했고, 그 답변은 삭제되었다. 촛불시위 당시 한 경찰관이 진압봉을 휘두르는 사진이 보도된 바 있다(일명 ‘조 경감’ 사건). 언론에 보도된 사진이었으나 인터넷에 게재된 것을 두고 삭제 판정이 내려졌다. ‘공무집행 사진을 편집하여 과장 또는 왜곡’ ‘초상권 침해’ 따위 이유가 따라붙었다. 최근에는 ‘2MB18nomA’라는 ID를 가진 트위터 사용자의 인터넷 페이지 접속을 차단했다. ID가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였다. 인터넷 ID 자체를 문제 삼아 차단한 경우는 이례적이다.

MB 욕설 연상케 한 트위터 이용자 접속 차단

방심위는 자신들의 시정 요구가 ‘권고’일 뿐이라고 말한다. 행정력이 없는 민간기구의 시정 요구로, 행정명령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방심위의 ‘실적’을 들여다보면, ‘권고’치고는 매우 실행률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심위가 심의를 통해 인터넷 게시물 삭제, 이용 해지, 접속 차단 등 시정 요구를 한 건수는 2008년 1만5004건(50.7%), 2009년 1만7636건(72.4%), 2010년 4만1103건(89.8%)으로 증가했다. 괄호 안 숫자는 전체 심의 건수 가운데 시정 요구를 한 비율이다. 2010년 같은 경우 열 건을 심의하면 아홉 건은 시정 요구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방심위가 시정 요구 ‘권고’를 하게 되면 포털 등 인터넷 사업자는 어떻게 했을까? 삭제, 접속 차단 등 방심위가 결정한 대로 98% 이상 따랐다(2009년 99.9%, 2010년 98%). 장여경씨는 “포털은 방심위를 행정기관으로 받아들인다. 99%에 가까운 수치는 방심위가 민간 자율 심의기구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강제력 있는 행정기관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앞의 퀴즈로 돌아가보자. 현재 이 퀴즈는 법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최병성 목사가 소송을 제기한 이후, 행정법원의 1심 판결에서는 ‘행정기구’라는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대통령 등이 위촉하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는 점, 국가로부터 필요한 경비를 지급받을 수 있고, 위원회의 규칙이 바뀔 때 관보에 게재된다는 점을 볼 때 행정기관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2월에는 서울고등법원이 방심위의 인터넷 게시글 삭제 요구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제청을 하기도 했다.

방심위의 존재는 해외로까지 알려질 전망이다. 5월30일부터 6월17일까지 제네바에서는 제17차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린다. 여기에서 지난해 방한했던 유엔 특별보고관 프랑크 라뤼의 보고서가 발표된다. 이 보고서는 방심위가 ‘사실상의 사후 검열기구’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내용은 이렇다. “특별보고관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부에 비판적인 정보를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불투명한 절차를 통해 삭제하는 사실상의 사후 검열기구로서 기능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현재 기능을 어떠한 정치적·상업적 그리고 다른 부당한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구로 이관할 것을 권고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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