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집권 4년차에 접어들면서 레임덕 징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일종의 ‘가치 동맹’을 추구했던 참여정부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실용 동맹’ 내지 ‘이권 동맹’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하면서 훨씬 더 강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재·보선→총선→대선으로 이어질 본격 정치의 계절을 맞아 이들 동맹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금융·법조·언론·토건 영역을 두루 장악한 이들의 동향을 추적했다.

특별기획 MB와 ‘이권 동맹’
❶다시 보자, ‘고·소·영'-경제·금융을 장악하다
❷다시 보자, 권력기관-MB 정권 최후의 보루
❸ 다시 보자, 개국공신-화려한 출세 행진


영남권의 염원이던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되었다.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국책사업 가운데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적지 않다.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이 국토해양부·한국개발연구원 자료를 인용해 밝힌 동남권 신공항의 경제성(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1을 기준으로 0.70~ 0.73. 대표적인 ‘형님 예산’으로 꼽힌 포항-삼척 간 고속도로의 경제성(0.21~0.34)은 신공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7조2000억원이 소요되는 포항-삼척 고속도로 공사는 별 논란 없이 진행되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는 약 10조원이 든다고 한다. 2011년 예산안이 날치기로 통과되자 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총사업비 기준으로 보면 형님 예산은 거의 10조원에 달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힘은 ‘정권의 2인자’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한나라당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기자에게 “SD(이상득)가 반(半)통령은 더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형님의 힘이 각 기관의 직책과 시스템을 무력화한 경우가 적지 않다. 형님과 가까운 사람이 조직 수뇌부에 자리를 잡았고, 그는 직책보다 훨씬 더 큰 힘을 행사했다.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의 손을 거쳐야 이력서가 효력이 생긴다는 말도 나왔다. 박 차관은 민간인 불법 사찰을 주도한 배후 인물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검찰은 의혹을 숨기기 바빴다. 박 차관은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 불법 사찰 수사 초기 한 검찰 관계자는 “이상득 의원과 박영준씨가 인사를 하는 진짜 실세들인데, 어떻게 조사가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최시중, 방송계·통신계 대통령으로 불려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저녁을 이상득 의원, 최시중 방통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부부와 함께했다. 최고 실세들의 만찬이었다. 대구·경북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 참여했던 한 실세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상득 지분이 5라고 보면, 최시중이 3, 천신일이 2라고 본다. 나머지 전부를 합해야 5 정도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캠프 고문이던 이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통합된 공룡 기관 방송통신위원회의 수장이 되었다. 그는 언론계·통신계의 대통령이었다. 방통위는 청와대처럼 대구·경북 출신의 실세들이 파견되는 실세 부서가 되었다. 방통위는 KBS· MBC에서 사장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이명박 후보의 특보 출신 김인규·김재철 씨로 채웠다. 조중동에 종합편성채널을 안겨주기도 했다(21쪽 딸린 기사 참조).

최 위원장은 지난 3월, 3년 임기의 방통위원장을 다시 맡았다. 정연우 교수(세명대·광고홍보학)는 “지난 3년 동안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뿌리부터 훼손해 탄핵해야 할 인물을 다시 발탁했다”라고 지적했다. 최시중 위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야당은 최 방통(위원장)을 공격하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 방통이 가장 중요하고 껄끄러운 언론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해 정권에 기여한 공이 있다. 이명박 정부보다 더 정부와 언론이 좋은 관계를 맺은 정권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공직을 맡지 않았지만 정·재계에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천상(天上)의 로비스트’라 불리기도 했다. 2008년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자 천 회장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뛰었다.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 등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 천 회장은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 사외이사로 1년에 14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기소되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의혹을 몰고 다니는 ‘트러블 메이커’였지만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이 되어서야 그는 대우조선해양 협력사로부터 금융권 대출 청탁 및 세무조사 무마 로비 등을 대가로 45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6인회’ 원로들의 승승장구

이명박 대선 캠프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였던 ‘6인회’ 멤버들도 빼놓을 수 없는 ‘개국공신’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최시중 위원장 그리고 박희태·이재오 의원,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가 멤버다. 대선 당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희태 의원은 재·보선을 통해  6선 의원이 되었고, 2010년부터 국회의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김덕룡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대통령 특보에 임명되었다. 여전히 그는 막후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정운찬 전 총리 후임으로 가장 먼저 총리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 미국으로 떠났던 이재오 의원은 2009년 9월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돌아온 이래 광폭 행보를 보여왔다. 오랜 숙원 사업과 각종 민원을 해결하며 실세의 힘을 보여주었다. 2010년 7·28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한 지 11일 만에 특임장관에 전격 발탁되며 ‘2인자’ 지위를 되찾았다. 그는 강력한 대선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대선주자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관계다. 이 장관은 기자에게 “나는 꿈이 크다. 킹메이커는 한 번 했으면 됐다”라고 말했다.

 

 

 

 

ⓒ뉴시스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을 소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로 뽑았다”라고 자평했다.

 

‘올드 보이’로 불리는 원로 개국공신들도 양지바른 자리에 있다. 최근 류우익 주중 대사가 옷을 벗었다. 하지만 언론에는 그가 옷을 벗은 것이 아니라, 국정원장 혹은 통일부 장관으로 중용될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 국제정책연구원을 이끌던 류우익 교수(서울대 지리학과)는 이명박 정부 초대 대통령실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촛불시위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2009년 11월 주중 대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사공일 전 재무장관은 5·6공화국 시절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모아 문제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 선대위 산하 경제살리기특위에 고문으로 영입되었다가, 정권 초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에는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거쳐 한국무역협회장 자리에 있다. 강만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을 거쳐 지난 3월 산은지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표적인 ‘이명박 사람’으로 꼽히는 원세훈 전 서울시 부시장은 행정안전부 장관을 거쳐 국가정보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대통령실장 기용설은 인사철마다 흘러나오는 고정 레퍼토리다. 바른정책연구원을 이끌던 백용호 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을 지낸 뒤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고 있다. 4·27 재·보선 이후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개각에서 백 실장의 기획재정부 장관 차출설이 나온다.  

청문회 낙마한 인사들에게도 ‘꽃보직’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으나, 공천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2009년 5월부터 한국장학재단 초대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박범훈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은 지난 2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장관급 대우를 받는 첫 청와대 수석으로 기록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장관급에 준하는 예우로 모시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박 수석은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의 후원회장으로도 활동한다.

박 수석은 88서울올림픽·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에서 음악 총감독을 맡았던 국악계의 대표 인물. 그는 지금 교육과 문화의 복잡한 현안들을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야 하는 자리에 있다. 중앙대 총장 시절인 2010년 박 수석은 교직원을 시켜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다 제적된 학생을 감시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박 수석은 언론에 이메일을 보내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치색을 띠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 그는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 문화예술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현직 총장 신분으로 위원장을 맡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일자 사퇴했다. 그는 취임 초기 국무총리·교육과학기술부 장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박 수석은 당시 기자에게 “초대 내각에 들어갈 것 같으니 나에 대한 비판 기사를 잠시 미루어달라” 하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철학은 자기 사람을 확실히 챙긴다는 것이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한 번 자기 사람이라고 믿으면 꼭 곁에 두고 쓰는 경향이 있다. 문제가 있어서 낙마한 사람도 잘 챙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힘이고, 지지율을 끌고 가는 힘이다”라고 덧붙였다.

인사 청문회에서 낙마한 인사들은 대부분 좋은 보직을 받았다. 경찰청장 후보자였던 김석기씨는 자유총연맹 부총재로 갔다가 지난해 오사카 총영사로 부임했다. 외교가에서 대표적인 보은 인사로 꼽힌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였던 남주홍씨는 2009년 외교통상부 대외직명대사인 국제안보대사로 지명되었다. 지난해 인천공항에서 남 대사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기자 눈에 비친 그는 대사급 이상의 VIP 의전을 받고 있었다. 환경부 장관 후보자였던 박은경씨도 지난해 12월 외교통상부 대외직명대사에 임명되었다. 여성부 장관 후보자였던 이춘호씨는 EBS 이사장에 올랐다. 남주홍·박은경·이춘호 씨는 자녀 이중 국적,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문제 등이 논란이 되며 낙마한 바 있다.

원로 개국공신들을 중용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은 “개국공신에 대한 이 대통령의 보은 인사가 돌려막기 인사, 회전문 인사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이 문제가 있는 사람을 계속 골라 쓰는 모습을 보이면서, MB 정부 인사에 대한 신뢰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대구 출신의 전직 청와대 인사 또한 “대통령은 자기 사람을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운동’ 하듯 쓰고 있다. 핵심 이외에서는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노무현 정부처럼 남의 사람을 계속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인사수석을 지낸 정찬용 무등인재육성아카데미 이사장은 “이 대통령은 인사 철학 없이, 인사에 대한 원칙과 기준이 없는 끼리끼리 인사를 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우리 편인지, 우리한테 잘할 사람인지’가 가장 중요한 인사 원칙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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