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 서로 정다운 계절. ‘훨훨 나는 저 꾀꼬리’만 짝이 필요한 게 아니다. 서울대공원의 ‘고리나’도 외롭다. 수컷 고릴라 ‘고리롱’을 떠나보낸 지 석 달. 사람으로 치면 80세를 살았다는 장수 할아버지 ‘미스터 고’는 죽기 직전까지 동물원의 재간둥이로 인기를 끌었다. 짝짓기 동영상과 비아그라까지 써봤지만 종자 번식에는 실패한 채 생을 마감한 그. 최근에야 부검 결과 무정자증임이 밝혀졌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조련사들의 온갖 시도에도 꿈쩍하지 않던 이유다.

그 인기로는 고리롱 못지않은 동갑내기 인간도 있다. 팔순을 맞은 전두환 전 대통령. 연배 말고도 겹치는 게 적지 않다. 애초부터 가지지 못했다는 점. 그분도 가진 재산이 없기로 유명하다. 통장 잔고 29만원. 초특가 패키지 베이징 여행을 연상시키는 액수지만, 관광지 바가지 물가 생각하면 저어되는 수준, 딱 그만큼이다. 차이가 있다면 손을 남기지 못한 고리롱에 비해, 29만원 재산은 날로 자가 증식 중인 것 같은 착각을 준다는 점.  


10억원이라는 나랏돈이 드는 것도 비슷하다. 최근 법원은 국가와 전두환을 향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해자에게 10억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냈다. 1968년 물 건너온 고리롱의 몸값도 10억원이었다. 베이징 2박3일 패키지 요금을 전 재산이라고 내미는 그분이 물어낼 리 만무하다. 결국에는 다 나랏돈. 고리롱은 43년간 재롱 떨어온 역사라도 있다지만, 침묵하는 그분을 위해 왜 우리 혈세를 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주변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미동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배우 김여진씨는 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 그를 향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당신은 학살자입니다’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한나라당 정책자문위원이라는 자는 ‘XX년’이라며 똥·오줌 못 가리다가 결국 사퇴했다. 배우가 학살자로 지목하든, 만화가가 암살 대상으로 점찍든 꿈쩍하지 않는 어떤 수행의 경지, 연희동 그 집 앞의 철통 보안을 연상시킨다. 멸종위기 종인 고리롱을 어떻게든 보존시키려던 사육사들의 정성과 닮아 있다.

그래도 몸값만 따지면 미스터 전이 한참 우위다. 경호비만 매년 8억5193만원. 1672억원으로 늘어난 추징금에, 시가 50억원짜리 저택도 가졌다. 고리롱은 가도 전두환은 남았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