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마셰티〉를 보았다면 대부분 경악했을 것이다. 일부러 스크래치를 내거나 툭툭 끊어지게 편집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물이나 대사·플롯까지 조잡함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 조잡함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마셰티〉는 1970~1980년대 미국 대도시의 ‘그라인드하우스’라 불리던 극장에서 두세 편씩 동시 상영하던 야하고 폭력적인 싸구려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모방하고 재현한 작품이다. 그런 조잡한 영화를 재현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 답은 〈펄프 픽션〉으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들으면 된다.

노골적으로 저열한 욕망 과시

타란티노는 어릴 때부터 차이나타운이나 변두리 극장의 싸구려 영화들에 빠져들었다. 비디오 가게 점원을 거쳐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저수지의 개들〉로 감독 데뷔를 한 뒤에도 그는 자신의 영화적 수원이 저열하고 조잡한 영화들에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펄프 픽션〉에도 그런 영화들의 패러디가 넘쳐흘렀고, 〈재키 브라운〉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B급 영화)를 재해석한 걸작이었다. 그리고 2007년, 타란티노는 영화적 동지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함께 〈그라인드하우스〉를 만들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와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플래닛 테러〉를 ‘그라인드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동시 상영하고, 〈마셰티〉를 포함해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영화의 예고편 4개를 집어넣었다. 한국에서는 한 편씩 개봉했지만, 미국 극장에서는 두 편을 예고편과 함께 볼 수 있었다. 한국의 3류 극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비 내리는 화면과 때로 불에 타서 일부 필름이 사라져버린 효과까지 고의로 곁들인 〈그라인드하우스〉는 과거의 추억을 흥겹게 재현한 영화다. 웃자고, 즐겁자고 시작한 짓인데도 〈데스 프루프〉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진출했다. 아주 영리하게, 과거의 싸구려 영화에 애정을 바치고 그 의미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적자임을 증명한 것이다.

타란티노와는 약간 다르게, 로버트 로드리게스는 〈엘 마리아치〉 시절부터 오로지 ‘오락’ 일변도로 달려왔다. 타란티노와 더불어 〈그라인드하우스〉 스타일로 만든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굳이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짜릿하고 유쾌한 폭력 영화라는 점만은 분명했다. 〈플래닛 테러〉 역시 미녀의 잘린 다리에 기관총을 달고, 주류 영화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엽기적인 장면들을 선보였다.

〈그라인드하우스〉의 가짜 예고편을 본 관객들의 열광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실제로 만든 〈마셰티〉는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영화답게 좌충우돌하며 조잡함의 극치를 달린다. 약간은 세련됨을 추구한 〈그라인드하우스〉와 비교한다면 〈마셰티〉는 그야말로 조잡한 싸구려 영화의 끝을 보여준다. 세상에는 웰메이드 영화를 지향하는 주류가 있지만, 저열한 욕망의 파노라마를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모든 권위를 파괴하는 하위문화도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마셰티〉 같은 영화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이유다.

기자명 김봉석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