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한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에 낯선 이름이 오르내렸다. 한동안 1위를 차지한 검색어는 ‘문경란 사퇴’였다. 문경란 전 상임위원(사진)은 국가인권위원회 차관급 상임위원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이날 문 전 상임위원과 유남영 상임위원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상임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현병철 위원장의 독단적 조직 운영으로 인해 인권위가 ‘고사(枯死) 상태’에 이르렀음을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문 전 상임위원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녀가 한나라당 추천 몫으로 임명되어서였다. 11월4일 연결된 통화에서 문 전 상임위원은 “인권은 진보의 것이기도 하고, 보수의 것이기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임기가 내년 2월이면 끝난다. 그런데도 굳이 사퇴한 이유는? 언젠가는 끝날 임기였다. 그러나 현 인권위가 왜곡과 파행의 길을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임기를 채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간담회·상임위·전원위 안건 상정 등 공식·비공식으로 문제 제기를 많이 해왔다. 그러나 위원장의 지시를 받는 사무처가 꼼짝달싹을 안 한다. 대표적 사안이 총리실 민간인 사찰 건이었다. 그뿐 아니다. MBC 〈PD수첩〉 건, 박원순 변호사 건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사안이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이다. 이런 사안에 대해 침묵한다면 인권위가 존재할 근거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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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중 스포츠 인권, 미혼모 학습권 등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왔다. 사퇴하기 아쉽지 않나?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일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고 보람된 일이다. 정말 신나게 일했다. 인권위 동료들도 밥벌이 이상으로 일을 정성스럽게 했다.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조직도 드물다. 요즘 인권위 상황은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인권위는 모범적으로 일 잘하는 모델의 하나였다. 그런데 위원장 한 사람 바뀌었다고 이렇게까지 역행을 하니, 나로서는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추천으로 임명된 상임위원이 사퇴해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선진국에서 인권이 빠진 나라는 없다. 인권은 보수의 것이기도 하고 진보의 것이기도 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건 보수라고 할 수 없다. 인권을 이야기하면 진보나 좌파의 것인 양 여기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인권은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 위원장은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그런 인권의 잣대로 판단하기보다, 권력기관의 심기를 살펴가며 판단을 하니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천 기관으로부터도 그렇고, 정파적으로도 그렇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위의 독립성만큼이나 인권위원들의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다. ‘문경란 사퇴’가 검색어 1위가 될 게 아니고 ‘인권위의 위기’가 국민의 관심사 1위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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