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팔당 유기농단지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다음날 있을 토지 측량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서규섭 팔당공동대책위 위원은 저녁까지 딸기밭 수막을 점검중이었다. 유영훈 위원장의 저녁메뉴는 쥐치 매운탕이었다. 4대강 사업에 맞서 싸우는 팔당 유기농민들을 지지하는 기독교 신자가 현지에서 보내준 것이다. 단골 식당에 모인 농민 등 9명은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수백명 경찰병력을 상대로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논의가 오갔다.
길어봤자 10분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인분보다 독한 동물성 유기질 비료인 혈분을 몸에 뒤집어쓰고 대항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도 냄새가 지독해 그럴 바엔 차라리 경찰에 잡혀가는 게 낫겠다는 반응이다. 소주 한잔을 비운 농민 김태원(48)씨는 기자에게 말했다. “세상을 많이 봤을테니 하나만 물읍시다. 세상에 정의가 있습니까”
지쳐가는 농민들, 신부·목사가 위로해
팔당지역에서는 지난해 10월로 예정되었던 4대강 사업의 착공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해당지역 농민들과 이를 소비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 관계자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 지역 대부분 토지보상이 이뤄지고 공사가 시작된 현재로선 유일하게 측량조차 이뤄지지 않은 곳이다. 팔당유역은 1970년대 중반부터 유기인증 농가가 정착하기 시작해 수도권 최대 유기농산물 단지로 자리 잡았다. 서울시와 지방자치단체도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0년엔 세계유기농대회 유치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인근이 4대강 사업 구역으로 편입되면서 테마공원과 자전거도로가 들어서게 됐다.
8개월을 싸우는 동안 사람들은 지쳐갔다. 유위원장은 17일간 단식을 했다. 농민 임인환씨(46)는 팔당부터 서울 여의도까지 도보순례를 했다. 밭에 가 있을 시간을 쪼개 서울을 드나드느라 수확량은 줄었지만 이 와중에도 딸기는 영글었다.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이 과정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인지 답이 자명하지 않기에 남은 사람들도 이들을 붙들기가 쉽지 않았다.
외부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지역주민이라는 택시기사는 “하천부지는 원래 국가 것인데 돌려달라면 보상받고 돌려줘야하는 것 아닌가. 보상금 더 받으려고 저러는 것이다”라고 혀를 찼다. 어느 운전자는 경찰병력이 동원돼 교통체증이 일어나 출근길이 짜증난다고 투덜댔다.
유영훈 위원장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섭섭하고 기운이 빠진다. “가치관의 싸움이다. 유기농 인가가 정말 까다로운 지역에서 생명존중이라는 가치를 믿고 힘겹게 농사를 짓다 이제 희망이 보이려는 찰나, 내쫓으려 하고 있다. 자연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파괴하려는 행위다.” 얻은 것도 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의 관심과 지지다. 하지만 큰 밑그림은 달라진 게 없다.
측량 2일째인 2월25일. 빗방울이 거셌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초록색 천막이 쳐졌다. 연행됐다 간밤에 풀려난 사람들도 다시 합류했다. 아침 메뉴는 유기농 라면이다. 아침도, 점심 삼계탕도 경찰과 나눠먹는다. 자주 대치를 해서 경찰들과도 낯이 익다. 먹을 걸 나누는 사이지만 언제 물러날 것인지는 기약이 없다. 대치는 오후까지 계속됐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 인내심 싸움이다. 농민들은 윷놀이를 하려고 윷도 챙겨왔지만 진흙이 질척여 하지는 못했다. 팔당 농민에겐 대치와 투쟁이 일상이 됐다.
천주교 신부들은 두물머리에서 매일 3시 야외 미사를 집전하는 중이다. 지난 2월17일부터다. 이날은 비가 와 서른명 신도들이 비닐하우스 안에 모였다. 10일째 단식을 이어나가고 있는 유병찬 수사는 배가 주린데다, 전날 경찰과 대치를 해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단식 일기 엔 “그 난리가 있었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그냥 구경거리가 되었을 뿐이다. 온 산하가 망가져 가는데도 먹고살아야 한다고 관심이 없고, 이웃 농민들이 ㅤㅉㅗㅈ겨나는데도 자신의 땅값이 올랐다고 박수친다”라고 씌어 있었다.
이들의 기도와 미사는 사순절 기간을 거쳐 4월4일 부활절까지 이어진다. 팔당 농민은 조만간 세계유기농대회를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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