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 농민들의 기막힌 이야기
  • 김은남 기자·심진용 인턴 기자
  • 호수 105
  • 승인 2009.09.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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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한다고 칭찬받다 어느 날 갑자기 하천 오염의 주범으로 몰린 농민들이 있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4대강 사업의 이면에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이들을 찾아가보았다.
경기 양평군 양수리 일명 두물머리 인근의 한 물류창고. 오후 3시가 되어가면서 깻잎이며 호박, 부추단 따위를 묶는 농민들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한 사람은 바구니에 담긴 달걀을 달걀판에 빠르게 담는 중이다. 창고 밖을 보니 ‘○○생협’ 로고가 적힌 소형 트럭이 대기 중이다. 팔당에서 그날 오전 수확한 농작물을 실어나르는 시간. 트럭에 실린 채소와 달걀은 이 제 서울·수도권 일대 생협 매장으로 전달돼 그날 저녁 소비자들의 밥상에 오르게 된다.

서울·수도권 도시민의 밥상과 팔당 농민의 논밭을 잇던 이 같은 순환이 조만간 깨어질 위기에 있다. 10월에 착공할 예정인 ‘4대강 살리기’ 사업 때문이다. 정부는 4대강 정비에 앞서 지난 5월 개정한 하천법시행령에 따라 하천부지 내 온실(비닐하우스) 설치를 일절 금지하고, 강 주변의 사유지 또한 수용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렇게 수용한 부지에 제방을 신설하거나 보강하고, 자전거 도로·체육공원을 지을 계획이라고 국토해양부는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팔당 인근 하천 부지에서 유기농 경작을 해온 100여 가구가 하루 아침에 농지를 잃게 됐다.

   
두물머리 유기농단지.
현재 팔당호를 끼고 있는 경기 남양주시(조안면)와 양평군(양서면)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는 모두 201가구. 이들은 농지 146ha (43만여 평)에서 기른 유기농산물을 두레생협, 여성민우회생협, YMCA 등대생협,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 공급함으로써 연매출 150억원가량을 올려 왔다. 이들에게 농산물을 공급받아온 서울·수도권 생협 회원은 35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수도권 최대 친환경 유기농 단지’로 꼽혀온 이 일대 농가의 절반가량이 4대강 사업으로 농지를 잃을 상황에 처한 것이다.

‘소신형 유기농’과 ‘생계형 유기농’, 손을 잡다

정부가 이들에게 나가달라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천법개정안 시행령에 따르면 △하천 환경의 훼손 및 홍수 유발 금지 △수상 레저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이들의 경작을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다. 이들이 20여 년 전 유기농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하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거칠게 분류하자면, 초창기 팔당 인근 유기농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소신형 유기농과 생계형 유기농이 그것이다. 맨 처음 이 지역에 유기농의 씨를 뿌린 것은 소신형이었다. 한국 유기농의 모태라 불리는 ‘정농회’에서 생명농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정상묵씨(팔당친환경생산자연합회장)가 양평군 양서면 일명 두물머리 일대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한 것이 1976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은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겠다는 정씨와 그 형제들을 ‘미친 놈’ 취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팔당댐 건설(1973년) 이후 이 일대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각종 규제에 묶이게 되면서 주민들의 삶에도 변화가 일었다. 현재도 팔당 지역은 전국에서 규제가 강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수도법·환경정책기본법·수도권정비계획법 등 6~7개 관련법이 있다. “하다못해 개집 하나만 새로 지어도 항공사진으로 이를 판독한 단속반이 집에 들이닥쳐 이를 부수곤 했다”라고 서규섭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귀농자인 최요왕·임인환씨(사진 왼쪽부터)는 농지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 속에서 주민들이 자구책으로 눈을 돌린 것이 유기농이었다. 이른바 생계형 유기농가의 등장이다. 1990년부터 관행농을 그만두고 유기농으로 전환했다는 농민 정정수씨(68,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는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부추 한 단에 30원을 받던 그 시절, 유기농으로 지은 부추로 100원을 받으면서 승산이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더라고 정씨는 말했다. 그 뒤 친환경 농업을 선택하는 농민이 늘기 시작했고, 이들과 정상묵씨 등이 힘을 합쳐 ‘영농조합 팔당유기농운동본부’(현재는 ‘영농조합 팔당생명살림’)를 만든 것이 1993년이었다. 현재 정정수씨가 사는 송촌리 75가구 중 65가구는 유기농업에 종사한다.

지방자치단체도 힘을 보탰다. “유기농 하는 다른 지역에 비해 팔당 쪽은 상대적으로 상황이 순조롭게 풀린 편이었다”라고 정씨는 말했다. 유기농의 최대 난관이 판로 확보인데, 팔당 지역 유기농가의 경우 서울시 덕을 크게 보았다. 서울시는 구청·생협 등에 팔당 유기농산물 직판장을 설치하는 비용을 대는가 하면, 가구당 4000만원씩 1000억원을 시설자금으로 저리에 빌려주며 팔당 유기농가들을 지원했다. 이유는 하나.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을 지원함으로써 서울시민의 상수원인 팔당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2000년대 들어 팔당 일대는 수도권 친환경 농업의 메카로 발돋움했다. 기존 농가가 속속 유기농가로 변신하는가 하면 뜻있는 젊은이들의 귀농도 이어졌다. “영농조합이라는 큰 우산이 있어서 안심이 됐다”라고 5년 전인 2004년 두물머리로 귀농한 임인환씨(44)는 말했다. 영농조합을 통해 생협에 농산물을 팔 수 있기에 초보 농사꾼이라도 판로 걱정이 없을뿐더러, 일찍이 유기농에 종사해온 ‘동네 형’들이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주어 귀농 초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박이인 정정수씨(사진)와 귀농자인 최요왕·임인환씨는 농지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이 확산될수록 팔당의 몸값은 오히려 올라갔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팔당은 서울시민에게 싱싱하고 안전한 채소와 과일을 공급할 수 있는 최적지였다. “정서적으로도 팔당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라고 김연순 여성민우회생협 이사장은 말했다. 생협 회원들은 철마다 팔당에서 산지 체험을 해왔다. 딸기를 따고, 잼을 만들고, 두부를 함께 만들면서 팔당의 생산자(농민)들과 가족처럼 얼굴을 익혀왔다. “생산자들이 유기농 수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정기 방문 및 점검은 물론 불시 점검도 수시로 해왔다. 이런 세월을 거치며 신뢰를 쌓아왔다”라고 김 이사장은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생협 회원 아닌 일반 도시민도 유기농 체험을 즐기러 팔당을 방문했다. 두물머리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노태환씨(46) 농가 벽에는 이곳을 다녀간 어린아이들이 남기고 간 포스트잇이 빼곡이 붙어 있었다. “딸기가 참 맛있어요” “세상에서 이런 맛은 처음인 것 같아요” “또 오고 싶다” 같은 내용이었다. 딸기를 직접 따고 풀 매는 수고를 거친 터라 딸기 맛이 더 달게 느껴졌을 것이라며 노씨는 웃었다. 그에 따르면 올 한 해 두물머리로 유기농 딸기 체험을 다녀간 이는 2만명이 넘는다. 딸기철이 아니더라도 주말이면 2000명 정도가 유기농 및 농촌 체험을 다녀간다.

   
서울·수도권 생협으로 배송되기를 기다리는 팔당 농산물.
“한때 우리보고 수질개선 공신이라더니”

이런 추세에 고무된 인근 지자체 또한 친환경 농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04~ 2008년 친환경 생산단지 조성, 친환경 농산물 유통사업, 친환경 인증농가 지원비 등으로 양평군은 241억원, 남양주시는 146억원을 썼다. 경기도는 2011년까지 150억원을 들여 팔당클린농업벨트를 조성함으로써 상수원 수질을 개선하고 수도권에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문수 지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IFOAM)를 한국에 유치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 개최지가 바로 팔당 지역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유기농가 상당수가 농지를 박탈당하게 되면서 세계유기농대회도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해당 농가뿐 아니라 기초단체까지 문제 제기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이 발표된 직후 남양주시와 양평군은 “4대강 사업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시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제방을 설치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하천을 보존할 수 있게 해달라”는 공문을 관계 부처에 발송했다. 지난 7월 국토해양부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김선교 양평군수는 “그대로 놔두고 유기농 잘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니냐”라며 4대강 사업팀을 향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남양주시는 지난 7월13일 시의원 14명 전원 명의로 건의서를 채택했다. “4대강 사업지구 내 하천 부지를 강제 수용할 것이 아니라 친환경 유기농업을 적극 보호·장려할 수 있도록 건의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이광호 남양주시 의원은  “현재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4대강 사업 자체가 지역 특성이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기에 한나라당 시의원 9명도 모두 건의서 채택에 동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요청에 돌아온 것은 “중앙정부 사업이니 주민들을 잘 설득해 협조해달라”는 답변뿐이었다. 지역 특성화 약속은 결국 허구임이 드러난 셈이었다. 팔당 농민들은 특히 자신들에게 하천법의 굴레를 씌운 것에 분노했다. “지난 10여 년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히 정책적으로 유기농을 지원했다. 생산성이 높고 수질 개선에 기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 우리가 하천 오염의 주범이란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라는 서규섭씨는 앞뒤가 안 맞는 정부 논리를 성토했다. 1년에 몇 차례씩 토양·작물·수질검사를 받았는데도 강물이 오염됐다면 자신들을 검사한 공무원부터 문책해야 한다는 것이다. ‘팔당댐이 세워지기 전 강변에 있던 백사장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팔당 토박이 노태환씨는 지난 40년의 경험을 통해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유기농을 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수질개선 사업보다 효과적이라는 굳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천법 개정의 또 한 가지 이유로 제시된 ‘수상 레저산업의 활성화’에 대해서도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 지역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다. 외래 어종을 잡으라고 어업 허가를 받은 농민들도 무동력선밖에 타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곳에 수상 보트를 띄우겠다니 제정신인가?”라고 정정수씨는 반문했다.

   
팔당 지역은 딸기밭 등 유기농 체험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두레생협은 최근 홈페이지에 “올가을부터 팔당에서 생산하는 채소류 53개 품목 중 41개의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라는 공지문을 띄웠다.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나 시민사회의 헌법 소원 제기 움직임에도 아랑곳없이 질주하는 4대강 사업을 보면 이들의 우려는 조만간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삽질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농심은 타들어가고 있다. 7월 초 주민 설명회에서 4대강 사업팀과 만난 한 농삿꾼은 이렇게 울부짖었다. “우리 제발 이대로 농사짓게만 해달라. 백성을 악독하게 만들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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