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의 열정이 학교에 어느 정도 필요할까. 내가 교사나 행정 책임자라면 너무 ‘핫한’ 학부모는 그리 달갑지 않을 것 같다. 뭉근히 한발 떨어져서 믿고 지켜봐주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
학교별로 필요한 손은 천차만별이다. 지역마다 동네마다 다르다. 내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등하굣길 특정구역 교통지도는 필요하나 그 밖의 봉사는 솔직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반별 할당 수를 채워서 일률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가령, 사람이 없는 건널목에서 저쪽은 지자체 파견 지킴이가, 이쪽은 학부모가 깃발 들고 마주보는 멀뚱한 상황도 벌어진다.
기왕 봉사를 한다면 내실 있게 하면 좋겠다. ‘어머니 폴리스’는 형식적으로 학교 안팎을 돌 게 아니라 하굣길 아이들 동선을 고려하는 게 좋다. ‘급식 검수’는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 도서관 책 정리는 규모에 따라 별도의 전담 인력이 필요해 보인다. 주기적으로 꼭 필요한 일손은 학부모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인력을 고용하는 게 책임성 면에서나 안정성 면에서 옳다. 하던 방식을 바꾸면 오히려 교사들 잡무가 늘까 조심스럽지만, 누구에게도 별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던 일이니까 혹은 바꾸는 게 더 번잡스러워 계속 하는 것은 어리석다.
현실에서는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이걸 왜 하지?’ 싶으면서도 봉사 인원이 덜 차면 담임선생님이 난처할까 봐 그냥 한다. 물론 잘했다 싶은 일도 있다. 나도 보람교사 활동이 좋았다. 중학생들은 짐작 이상으로 시끄러웠고 기대 이상으로 활기찼다. 크게 싸우거나 담을 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급식이나 수업 준비 등 기본 일과에서 어른 손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보였다.
손이 가려면 끝이 없었다. 교사의 노고가 짐작되었다. 들쭉날쭉 자라는 아이들 개개인을 살피고 보듬는 일만도 쉽지 않은데, 학부모들의 개입과 관여까지 있다면 교사의 ‘번아웃’은 시간문제일 터이다. 공교육에 아이를 맡긴 처지에서 교사의 재량권을 존중하여 앞으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더 격렬히’ 거리감을 둬야겠다고 다짐했다. 모른 척도 때론 약이다.
교사와 학부모는 ‘거리감’ 필요한 조력자 사이
나서야 할 때도 있다. 학부모 활동으로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 하는 ‘넘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 자리를 완장처럼 여기거나 솔선수범을 빙자하여 ‘이너서클’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대체로는 소통과 봉사를 내세워 행사를 기획하고 알림장을 뿌리며 참석을 독려하는 정도이나 이조차 옥상옥 같은 가욋일이니, 학교 처지에서는 부담이다.
드물지만 일부 학교는 목소리 큰 학부모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이런 불필요한 ‘과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넘치지 않는’ 학부모들의 적절한 참여와 발언은 필요하다.
교사(학교)와 학부모는 동업 관계도 협업 관계도 아니다. 굳이 관계 규정을 하자면 조력자가 아닐까. 소신껏 분별 있게 적정 거리감을 유지해야 서로 잘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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