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다. 3·1운동 100주년이고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어찌 보면 멀지만 역사적으로 가까운 과거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생생한 기억으로 당시를 회상할 듯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100년을 살아온 주체는 한국인이지만 그 100년을 살게 한 타자는 일본인이다. 아무래도 둘 사이의 기억은 사실보다 감정이 앞선다. 한·일 관계는 과거보다 요즘이 더 험악하다. 최근에는 ‘친일파’가 가장 치욕스러운 욕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어떤 사이였나를 찾아본다.
한 장의 사진을 우연히 봤다. 35㎜ 포맷의 소형 카메라를 세로로 찍은 흑백사진이다. 광복 후 서울 거리인데 일본인 여성 두 명이 태연히 길을 간다. 뒤를 따르는 젊은 여성은 손에 무까지 들고 있다. 이 사진을 수집하고 전시했던 서울시립대박물관 학예사는 “개인 수집가에게서 구매했다. 미군이 찍은 것이고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일단 사진 정보로 유추하면 미군 두 명의 뒷모습을 보건대, 시점은 이들이 경성에 들어온 1945년 9월9일 이후일 것이다. 사진 속 사람들 옷차림도 9월과 10월 사이로 보인다. 또 건물과 거리의 포장 상태로 보아 명동이나 충무로의 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한가로운 풍경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상식이라면 사진 속 일본 여성들은 해방된 조선인들의 폭력과 혐오로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말이다.
다양한 아카이브 사진의 공통점은 다른 종류의 이미지를 한데 모아 모종의 균질함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예술 평론가 제인 콘날티는 “20세기 대부분과 21세기까지 역사와 기억은 문화 생산 및 담론의 중심 주제였다. 사진과 영화 아카이브는 기억의 대리인 혹은 가상적 장소나 과거의 회상에 대한 은유로 기능하며 기억이라는 개념과 연관된다”라고 말했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일본인 여성 사진은 우리가 잊어버린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가 앨런 세큘라도 이런 아카이브 사진에 대해 “분류는 우연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문제는 사진이 갖는 복합성·풍부함이 손실되며 추상성으로 그 맥락이 상실된다. 대신 이 아카이브는 지식을 창출한다. 아카이브는 성장하고 완전함을 열망한다. 이 대량 수집이라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생겨난다”라고 지적했다.
광복 후 일본인에 대한 폭력 드물어
이 막연한 사진 한 장을 놓고 광복 후 경성의 일본인 동태에 대한 연구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1945년 8월16일 이후에도 경성에서는 일본인에 대한 폭력 사건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또 미군 진주 후 일본인들은 아예 ‘잔류’를 생각하고 “조선인 친구들과 동아시아 발전에 협력하자”며 조선어 공부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요즘의 직관적 판단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아마도 저 여성들은 1946년 3월까지 본토로 철수한 일본인에 속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일본에 돌아가서 “본토의 고생도 모르고 조선인들 착취해 편히 산 인간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에서도 타인이고 일본에 돌아가서도 타인이었다. 일본과 조선의 경계에서 살아간 이들. 만일 그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재일 조선인들처럼 서울에 잔류했다면 어떠했을까. 역시나 삶이 만만치 않았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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