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돌아오는 최대 축제가 있다. 강원도 화천군의 ‘산천어 축제’다. 올해로 17회를 맞이하니 국내 축제로서는 꽤 역사도 있고, 연간 동원 인원이 170만명에 달하니 가히 세계적인 축제라 할 만하다. 그런데 올해는 소설가 김탁환씨를 비롯해 국내 동물권 단체들의 반대 움직임이 만만찮다. 물 맑은 화천에서 산천어라는 민물고기를 체험한다는 애초 취지와 완전히 달라진 ‘동물 학대 축제’라는 것이다.
산천어는 바다를 오가던 송어가 그냥 한자리에 머물면서 진화해 아종으로 분류된 물고기다. 물이 맑고 차가워야 살 수 있으니 그만큼 화천군이 환경적으로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축제에 나오는 산천어는 전국의 송어 양식장에서 키운 것들이다. 산천어 80만 마리가 굶은 채 수조차를 타고 와서 화천천 빙판에 낸 2만 개의 얼음구멍 아래 풀린다. 자, 이제 산천어의 운명은 인터넷에 올라온 온갖 증명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쟁과 사냥을 통해 얻은 전리품을 자랑하는 것을 트로피즘이라 한다. 이제 한국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찬물에 뛰어들고 빙판에서 사투를 벌이며 얻은 트로피인 산천어를 전시하고 사진으로 증명한다. 사실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또는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사투를 벌인 대가로 전리품을 챙겨 자랑하는 풍습은 무척 오래되었다. 그것이 그림을 통해 지인들에게 자랑되어오다 사진이 발명된 후로는 아예 대중적 자랑거리가 되었다.
소설가 헤밍웨이도 이런 사진을 찍은 장본인이다. 유난히 ‘마초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W. & C. Scott & Son 사의 사냥총을 들고 세렝게티 첫 방문에 동물을 30마리나 잡아 죽였다(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총으로 그는 자살했다). 그중에는 사자도 있다. 그리고 그 전리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 역시 빼놓지 않았다.
헤밍웨이도 ‘트로피즘’에 빠졌던 인물
그는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사냥을 즐겼는데 이는 생계하고도 관계가 없었다. 특히 거대한 돛새치를 즐겨 잡았고 이를 잘 활용한 작품이 〈노인과 바다〉일 것이다. 헤밍웨이를 비롯해 수많은 인류는 반세기 전까지 정복하고 갈취하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즐기며 당연시했다. 그리고 사진으로 자랑하고 따라 하게 했다.
화천의 산천어 축제장에서 찍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사진 수만 장은 이 축제가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고려 없이 동물 사냥의 유희와 그것을 먹어버리는 식욕이 거의 전부라는 것을 증명한다. 언론 역시 문화면 한구석에는 ‘인간이 무한정 자연을 착취하는 존재일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경제면에서는 ‘세계적인 대박 축제’ ‘지자체 엄청난 수익’ 등 축제 성공 사례로 치켜세운다.
겨울방학에 들어가는 막내가 마침 산천어 축제 뉴스를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그래! 올해는 저기야!”라고 한다. 하지만…, 미안하다 아들아!
낚시가 하고 싶다면 함께 피라미 잡던 집 앞 동막천도 있고, 생선이 먹고 싶다면 그 사촌 송어를 마트에서 사줄게. 그래도 정 궁금하다면 산천어가 자연에서 헤엄치는 멋진 사진 한 장 찍어서 걸어놓자.
-
일단 사용하고 돈 물어주면 끝?
일단 사용하고 돈 물어주면 끝?
이상엽 (사진가)
얼마 전 tvN의 〈알쓸신잡3(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사진 무단 도용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파리 페르라셰즈 공동묘역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진 몇 ...
-
건조한 사진이 더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건조한 사진이 더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이상엽 (사진가)
지난주 영국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 5월 가자 지구에서 찍힌 사진이다. 한 청년이 윗옷을 벗은 채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돌팔매를 든 사진인데, 런던의 ...
-
버섯구름 그림자는 무엇을 증언하는가
버섯구름 그림자는 무엇을 증언하는가
이상엽 (사진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클라이맥스인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백미는 〈해머 투 폴(Hammer to Fall)〉이다. 냉전을 비판한 이 노래의 가사 중에 이런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
아우라 없는 사진 놀이, 신박하거나 심박하거나
아우라 없는 사진 놀이, 신박하거나 심박하거나
이상엽 (사진가)
‘폴링 스타 챌린지’라는 사진 놀이가 있다. 고급 승용차나 전용기에서 일부러 넘어지는 상황을 연출한 뒤 가방 속에서 쏟아진 자신의 명품을 자랑하는 사진이다. 이런 셀프 포트레이트를...
-
초현실을 현실화한 현대적인 흑백 영상
초현실을 현실화한 현대적인 흑백 영상
이상엽 (사진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에 대한 입소문이 심상찮다. 2018년 최고의 영화라는 극찬 때문이다. 정작 이 영화는 개봉관이 많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제작되면서 ...
-
1858년 파리의 뒷골목을 기록한 사진가
1858년 파리의 뒷골목을 기록한 사진가
이상엽 (사진가)
어렸을 때 읽은 〈쿠오바디스〉에는 로마 황제 네로에 관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로마가 불타오르는 광경을 내려다보며 시종에게 하프를 치게 하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이건 후세에 ...
-
지만원씨 탓에 ‘거짓말쟁이’가 된 사진
지만원씨 탓에 ‘거짓말쟁이’가 된 사진
이상엽 (사진가)
‘광수’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1990년대 말을 풍미한 만화 〈광수 생각〉의 그 광수가 아니다. 극우 인사 지만원씨가 말한 ‘광주 북한군 특수부대’를 줄여서 ‘광수’라고 한다.자유...
-
저 일본인 여성들은 어찌 되었을까
저 일본인 여성들은 어찌 되었을까
이상엽 (사진가)
100년이다. 3·1운동 100주년이고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어찌 보면 멀지만 역사적으로 가까운 과거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생생한 기억으로 당시를 회상할 듯하다. 그런데 ...
-
사진은 복제인가 창작인가
사진은 복제인가 창작인가
이상엽 (사진가)
유명세일까? 방탄소년단(BTS)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노래가 아니다. 뮤직비디오와 사진집이 프랑스 사진가 베르나르 포콩의 작품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문제를 제기한 이는 ...
-
왼손잡이용 카메라 본 적 있나요
왼손잡이용 카메라 본 적 있나요
이상엽 (사진가)
올해로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죽은 지 50년이 됐다. 그의 기념비적인 히트곡들은 수없이 많지만 특히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미국 국가가 백미다. 히피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