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돌아오는 최대 축제가 있다. 강원도 화천군의 ‘산천어 축제’다. 올해로 17회를 맞이하니 국내 축제로서는 꽤 역사도 있고, 연간 동원 인원이 170만명에 달하니 가히 세계적인 축제라 할 만하다. 그런데 올해는 소설가 김탁환씨를 비롯해 국내 동물권 단체들의 반대 움직임이 만만찮다. 물 맑은 화천에서 산천어라는 민물고기를 체험한다는 애초 취지와 완전히 달라진 ‘동물 학대 축제’라는 것이다.

산천어는 바다를 오가던 송어가 그냥 한자리에 머물면서 진화해 아종으로 분류된 물고기다. 물이 맑고 차가워야 살 수 있으니 그만큼 화천군이 환경적으로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축제에 나오는 산천어는 전국의 송어 양식장에서 키운 것들이다. 산천어 80만 마리가 굶은 채 수조차를 타고 와서 화천천 빙판에 낸 2만 개의 얼음구멍 아래 풀린다. 자, 이제 산천어의 운명은 인터넷에 올라온 온갖 증명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음산책 제공1935년 바하마 제도의 한 섬 부둣가에서 헤밍웨이와 그의 세 아들이 사진을 찍었다.

전쟁과 사냥을 통해 얻은 전리품을 자랑하는 것을 트로피즘이라 한다. 이제 한국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찬물에 뛰어들고 빙판에서 사투를 벌이며 얻은 트로피인 산천어를 전시하고 사진으로 증명한다. 사실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또는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사투를 벌인 대가로 전리품을 챙겨 자랑하는 풍습은 무척 오래되었다. 그것이 그림을 통해 지인들에게 자랑되어오다 사진이 발명된 후로는 아예 대중적 자랑거리가 되었다.

 

소설가 헤밍웨이도 이런 사진을 찍은 장본인이다. 유난히 ‘마초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W. & C. Scott & Son 사의 사냥총을 들고 세렝게티 첫 방문에 동물을 30마리나 잡아 죽였다(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총으로 그는 자살했다). 그중에는 사자도 있다. 그리고 그 전리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 역시 빼놓지 않았다.

헤밍웨이도 ‘트로피즘’에 빠졌던 인물


그는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사냥을 즐겼는데 이는 생계하고도 관계가 없었다. 특히 거대한 돛새치를 즐겨 잡았고 이를 잘 활용한 작품이 〈노인과 바다〉일 것이다. 헤밍웨이를 비롯해 수많은 인류는 반세기 전까지 정복하고 갈취하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즐기며 당연시했다. 그리고 사진으로 자랑하고 따라 하게 했다.  
화천의 산천어 축제장에서 찍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사진 수만 장은 이 축제가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고려 없이 동물 사냥의 유희와 그것을 먹어버리는 식욕이 거의 전부라는 것을 증명한다. 언론 역시 문화면 한구석에는 ‘인간이 무한정 자연을 착취하는 존재일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경제면에서는 ‘세계적인 대박 축제’ ‘지자체 엄청난 수익’ 등 축제 성공 사례로 치켜세운다.
겨울방학에 들어가는 막내가 마침 산천어 축제 뉴스를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그래! 올해는 저기야!”라고 한다. 하지만…, 미안하다 아들아!
낚시가 하고 싶다면 함께 피라미 잡던 집 앞 동막천도 있고, 생선이 먹고 싶다면 그 사촌 송어를 마트에서 사줄게. 그래도 정 궁금하다면 산천어가 자연에서 헤엄치는 멋진 사진 한 장 찍어서 걸어놓자.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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