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태어나 성장한 아누 파르타넨은 유력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녀는 하필 미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핀란드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자기는 영어를 할 줄 알지만 그 남자는 핀란드 말을 못하니까.
이건 해볼 만한 거래처럼 보였다. 복지는 잘되어 있지만 춥고 따분하고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핀란드에서, 역동적이고 기회와 혁신이 널린 미국으로. 하지만 그녀는 이 거래가 꽤 이상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이를 낳은 엄마에게 휴가를 제대로 주지 않고, 경쟁원리가 교육을 더 좋게 만들어준다는 괴상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아프면 중산층도 거의 파산을 한다.
파르타넨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 미국식 자유주의를 그저 비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익숙한 구도 자체를 뒤집어버린다. 북유럽이 복지 시스템을 쌓아올린 것은 사람들이 국가에 의존해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와 독립과 기회라는 가치를 누구보다 높이 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인이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가족이든 회사든 마을공동체든 시민사회든 간에, 의존은 의존이다.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은 지독한 개인주의자들이 만들었다!
반대로 미국은 자유와 독립과 기회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내팽개치는 시스템이다. 교육을 할 때도, 의료보험을 구할 때도, 미국인들은 가족과 회사에 의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 시스템은 위험을 분산해주지 않고 개인이 감당하게 만들기 때문에, 개인은 의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미국식 자유주의는 사람들을 의존의 덫에 걸리게 만들고, 북유럽식 사민주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만든다. 두 사회를 모두 경험한 저널리스트가 도달한 기묘한 역설. 이 책을 특히 매력적으로 만들어준 힘이 여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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