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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동생들 만나면 뭐 해줘야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유춘희씨(86)는 67년 전 자신이 살았던 함경남도 장진군의 약도를 생생히 그린다. 북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유씨의 말과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절반 이상이 사망했고, 남은 이들의 60% 이상이 80세가 넘었다.

신선영 기자 ssy@sisain.co.kr 2018년 09월 01일 토요일 제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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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유춘희씨가 8월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 생중계를 보고 있다.

중학교는 고향인 함경남도 장진군 인근에서 다녔어. 부모님이 가게를 했어. 가난하지는 않았어. 아버지가 나를 선생 시킨다고 고향에서 100리나 떨어진 북청사범학교에 보낸 거예요. 기숙사에서 지내며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2학년 때 6·25가 터졌지. 우리 식구는 부모님, 오빠, 여동생 두 명, 남동생 한 명이야. 그때 오빠는 함흥에서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지. (1950년) 7월12일 오빠 졸업식 날이었나 봐. 오빠가 기숙사에 있는 나한테 엽서를 보냈어. 7월13일 전쟁에 끌려간다고. 그 편지를 본 순간, 엄마 생각이 난 거야. 나까지 전쟁에 끌려가면, 엄마가 병들어 돌아가시겠다 싶었어. 북청에서 고향까지 도망을 간 거지. 고향에 갔는데 내가 전쟁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집으로 온 게 마음에 걸렸어. 중학교 친구의 사촌 오빠 도움으로 남쪽으로 피하기로 했지. 잠깐 다녀올 것으로 보고 나 혼자만 넘어왔어. 그때 엄마가 울면서 나 시집보낼 때 쓰려고 마련한 예단을 주더라고. 그때 난 철이 없었지. “금방 올 건데, 짐 되게 어디를 가져가”라고 짜증을 낸 거야.

ⓒ시사IN 신선영
유씨가 8월20일 이산가족 상봉 첫 만남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유씨가 남한으로 넘어와 고아원으로 불리던 곳에서 생활하던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어머니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을 거 같고, 오빠도 돌아가셨겠지. 동생 세 명은 살아 있을 거 같아. 막내 여동생이 살아 있으면 일흔 살이 넘었을 텐데. 북청에서 공부하느라고 동생들을 자주 못 봤어. 지금도 후회되는 게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걸 왜 타지로 가서… 언니 누나가 돼서 그 애들 한번 안아주지도 못하고. 계속 떨어져 지내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나. 헤어질 때, 여섯 살짜리 남동생하고, 네 살짜리 여동생은 살아 있겠거니 하지. 내가 올 때도 요만하더라고.

ⓒ시사IN 신선영
유씨는 67년이 지났지만 자신이 살았던 함경남도 장진군의 집 위치 등 약도를 생생하게 그린다.
ⓒ시사IN 신선영
유씨의 딸이 어머니의 병원 방문 날짜를 표시해놓았다. 유씨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1992년에 친구 권유로 처음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어. 내 친구도 북한에서 나왔지. 걔는 친척들하고 남으로 넘어왔어. 5년 전인가 통일부에서 영상편지도 찍었지. 그 영상편지 찍을 때 남편은 아파서 누워 있었고. 남편도 북에서 왔어. 그래도 남편은 가족들하고 다 같이 넘어왔지. 남편은 병을 앓다, 몇 년 전에 먼저 갔어. 50년간 옷 수선을 했어. 영상편지 찍을 땐 다 기억했는데, 지금은 잊어버렸네. (본인의 영상편지 앞부분을 보여주자) 이 영상편지를 북한으로 보낼 수 있을까? 이걸 보내면 동생들 생사 확인은 되는데….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8월20일 유춘희 할머니(86)를 만났다. 할머니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를 보았다. “8월20일 월요일 첫 소식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오후 3시부터 시작됐습니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만난 가족들은 눈물로 상봉했는데요, 취재기자 연결해서 현장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유 할머니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사IN 신선영
유씨는 2013년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의 권유로 영상편지를 찍었다.
영상편지는 이산가족의 생전 모습을 영상에 담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측 가족에게 전달하기 위해 제작하고 있지만
영상편지 교환 사례는 극히 드물다.
교환 기회가 없는 영상편지는
상봉을 하지 못한 이들의 유언처럼 남겨지고 있다.
저렇게 휠체어 타고 젊은 사람들 고생시켜가면서도 몸 안 좋아도 가는 게, 그 사람 심리를 생각해보면, 마지막인데 가야지 저 사람도 마지막 길인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유 할머니의 둘째 딸이었다. 유 할머니가 기자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엄마가 걱정돼서 전화했어요. 엄마는 알츠하이머병 판정을 받았어요. 북한에 살았던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시죠. 너무 디테일하게(자세히) 말씀하세요. 저는 수백 번도 더 들었어요. 아마 엄마는 그때 기억만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거 같아요. 혹시 바로 이산가족 상봉 현장인 금강산을 갈 수도 있으니까 엄마 통장에 남아 있는 돈도 찾아놓고 있으라고 하셨어요.” 통일부 이산가족 현황 자료에 따르면 신청자 총 13만2603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망하고 5만7059명만 남았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80세 이상이다. 통일부에서는 2013년부터 이산가족의 영상편지를 제작해오고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영상편지는 유언처럼 남을지도 모른다. 고향을 떠나온 지 67년이 되었지만 자신이 살았던 마을 약도를 생생하게 그리는 유 할머니.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는 다시 고향에 남은 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언니 노릇을 못했어. 못할 수밖에 없잖아. 그 나이에. 내가 혼자 살려고 나왔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나. 딸들이 이제 재봉틀은 버리라고 하는데, 죽어도 못 버리겠다고 그랬지. 그건 나중에 동생들 만나면 뭐 만드는 데 쓸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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