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3일 미국의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현 국무장관 지명자)을 초청해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폼페이오는 “그동안 정보 당국이 북한에 대한 행정부의 요구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다”라며 자신의 업적을 이렇게 자랑했다. “취임한 뒤 ‘코리아 미션센터(KMC)’를 발족시키면서, 은퇴한 고위 인사까지 다시 불러들여 책임을 맡겼다. 덕분에 지금은 사정이 훨씬 좋아졌다.”

폼페이오가 CIA 내에 ‘북한 작전’에 특화한 KMC를 신설한 것은 지난해 5월이다. 북한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분에 폼페이오가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이후 CIA는 승승장구하는 기세다. 요즘 CIA가 주무 부처인 국무부를 제치고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주도적으로 맡고 있다. 지금은 북·미 정상회담 장소 선정 협상에 분주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회담 일정과 의제에도 CIA가 관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AP Photo4월12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가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 산하에는 16개 정보기관이 있다. 그중 북한 정보를 주로 다루는 기관은 CIA를 비롯해 국방정보국(DIA), 국방비밀국(DCS), 국가안보국(NSA), 미군전략사령부(USSC), 국가지리정보국(NGA), 국가정찰국(NRO),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등이 있다. 이 정보기관들은 지난해 하반기 북·미 간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자 북한 정보 수집활동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총력 체제에 들어갔다.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DIA는 북한과 직접적 관련성을 갖지 않는 테러 및 마약범죄 팀원들에게까지 북한 관련 임무를 부여해 재배치했다.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지난 3월, 산하 정보 당국의 북한 정보 수집과 분석 등을 조정하고 책임질 ‘코리아 디렉터’를 구하는 공고를 내기도 했다. 덩달아 국방 관련 민간업체들이 낸 한국어 유능자 구인광고가 봇물을 이뤘다.

이처럼 여러 정보기관들이 북한 문제로 모두 바쁘지만 세간의 이목은 단연 CIA에 쏠려 있다.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에 지명된 뒤에도 CIA 휘하 참모들을 활용해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은밀히 진두지휘하면서 CIA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대북 라인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폼페이오가 향후 국무장관에 취임한 뒤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외교 안보 과제인 북핵 해결을 위해 친정 CIA 측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CIA가 국무부를 제치고 북·미 정상회담 준비 작업을 주도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폼페이오에 대한 신임 덕분이다. 폼페이오는 CIA 국장 재직 시절에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한 관련 정보를 브리핑하면서 돈독한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건을 전격 수락한 뒤, 대북 라인 정비 차원에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경질하고 폼페이오를 후임으로 지명한 배경이다. 최근 CIA는 북·미 간 전통적인 접촉 창구였던 ‘뉴욕 채널(유엔 북한 대표부와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미국 정부 사이의 대화 루트)’을 무시하고 북한 정찰총국과 정상회담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렇다고 국무부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수전 손턴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지명자, 마크 램버트 대북정책특별부 대표,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 등도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참여한다. 그러나 회담 참석자 선정, 과거 북·미 협상 자료 준비, 한국 및 일본 등 우방과의 소통 방안 마련 등 부차적 업무만 맡고 있다.

ⓒGWU지난해 10월 조지워싱턴 대학이 주최한 정보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을 듣고 있는 이용석 중앙정보국 코리아 미션센터(KMC) 부국장보(오른쪽).
CIA가 대북 라인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폼페이오 지시로 설립된 KMC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CIA는 이미 2015년 동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유럽, 서아시아, 중앙 및 남아시아, 서반구 등 6개 지역별로 미션센터를 발족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북한 문제는 동아시아태평양 미션센터의 한 부문에 불과했다. 지금은 북한을 전담하는 KMC로 따로 독립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징후다. CIA 한국과 부과장 출신인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CIA에 10개 미션센터가 있지만 KMC 신설은 지역적 측면에서 향후 가장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곳이 한반도임을 입증한다”라고 CNN에 말했다. 현재 KMC의 정확한 인력 규모는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외교 전문가들은 수십명에 달하리라 추정한다.

한국계 미국인들이 KMC 중책 맡아

CIA는 지난해 5월10일 이례적으로 KMC 신설 사실을 공개하면서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KMC에는 CIA 전 부서에 걸쳐 경험 있는 요원들을 동원하고, 그 책임자로 ‘베테랑 작전 요원’을 선발했다”라고 밝혔다. CIA는 구체적으로 이 인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한국계로 CIA 한국지부장을 지낸 앤드루 김으로 추정되고 있다. 앤드루 김은 지난해 초 은퇴했다가 KMC가 신설되면서 다시 현업에 복귀했고, 지난해 12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중앙정보국을 방문했을 때 브리핑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존 메릴 박사는 “과거 국무부 재직 시 여러 번 앤드루 김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신중하면서도 똑똑하고 북한 관련 지식이 많은 인물이다. 앤드루 김은 한국지부장을 지냈고, 분석보다는 작전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KMC에는 또 다른 한국계가 있다. 이용석 부국장보인데, 그가 지난해 10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관한 인물평과 북한의 전략적 의도 등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KMC가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이 부국장보는 조지워싱턴 대학이 주최한 정보 관련 세미나에서 “김정은은 대단히 합리적인 인물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전쟁을 원치 않는 사람이 바로 김정은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김정은 위원장을 가리켜 “미친 사람”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완전히 배치되는 인식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그의 발언은 미국 주요 매체에 일제히 보도됐고, 덩달아 KMC가 세간에 널리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워싱턴 외교가 일각에서는 북·미 정상회담 전초작업을 CIA가 주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존 메릴 박사는 “미국 최고의 정책 책임자들이 CIA가 확보한 대북 알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CIA가 정상회담 준비를 주도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CIA가 DIA 등 다른 정보기관의 협조를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CIA 독주’로만 보는 건 곤란하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마땅히 북·미 정상회담을 주도해야 할 국무부가 지금처럼 취약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라고 존 메릴 박사는 지적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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