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화 요청을 전격 수락한 뒤 워싱턴 외교가가 다시 어수선해졌다. 이른바 ‘폼페이오 후폭풍’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5월로 예상되는 사상 최초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무 부처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하루아침에 내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인물은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다. 북한 정권교체를 공개적으로 거론해온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장관 경질 사유로 자신과의 ‘불화’를 꼽았다. 폼페이오 신임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첫날부터 서로 아주 호흡이 잘 맞았다”라고 치켜세웠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3월8일 김정은 위원장의 제안을 수락한 직후 폼페이오 국장에게 회담 준비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워싱턴 외교가는 폼페이오 후보자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AFP PHOTO폼페이오 국무장관 후보자는 중앙정보국장 재직 시 북한 분석가들을 모아 ‘코리아 미션 센터’를 설립했다.
폼페이오 후보자는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다. 웨스트포인트, 즉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폼페이오 후보자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뒤늦게 정치권에 뛰어들어 연방 하원의원 3선을 지냈다. 그는 지난해 1월1월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중앙정보국장에 취임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한 정권교체 및 김정은 위원장 제거에 대한 희망을 공개적으로 표시한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 이를테면 지난해 7월 아스펜 안보포럼에서 그는 “지금 가장 위험한 자는 북한 핵무기의 통제권을 쥔 바로 그 인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김정은과 북한 주민을 분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도 김정은이 사라지길 바랄 것으로 확신한다”라며 사실상 북한의 정권교체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국무장관에 지명되기 하루 전인 3월11일, CBS 방송의 시사 대담 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에서 “북한과 대화하는 동안에도 대북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폭스 뉴스〉에도 출연한 그는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 준비 회의는 물론이고 후속 협상에서도 결코 북한에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된 가운데 이런 강경파가 미국 외교 사령탑에 지명됐으니 워싱턴 외교가가 화들짝 놀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미국 워싱턴 정가의 정치·외교 정보지 〈넬슨 리포트〉 크리스 넬슨 편집인은 3월13일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에 지명되자 워싱턴의 중국 고위 인사들은 ‘예견됐던 일’이라며 냉정을 당부한 반면 한국 측 인사들은 대북 강경파로 이름난 폼페이오를 파악하느라 정신없이 수소문하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전했다.

ⓒ청와대 제공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은 한국 특사단 방문 때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폼페이오 후보자에 대한 미국 주요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하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트럼프의 세계관에 딱 맞는 인물”로 묘사했고, CNN은 “폼페이오는 이란과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강경한 본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사교양지 〈뉴욕〉은 “틸러슨 장관의 해임으로 미국과 북한의 전쟁이 더욱 가까워졌다”라며 폼페이오 후보자 기용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다른 시각도 있다. 그는 중앙정보국장 재직 당시 북한 관련 정보의 수집과 분석 업무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5월 중앙정보국 내 북한 분석가들을 한데 모아 ‘코리아 미션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북한에 관한 온갖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는 폼페이오 후보자가 섣부른 모험에 뛰어들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북한 분석관’으로 국무부 정보조사국(INR)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경험이 있는 존 메릴 박사는 〈시사IN〉과 인터뷰하면서 폼페이오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CIA에는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은, 아주 훌륭한 북한 분석관들이 많다. 폼페이오 역시 국장으로 일하면서 분석가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을 터이다. 이런 측면을 감안하면, 폼페이오가 실용적(pragmatic) 대북관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외교 전문가들은 폼페이오가 정치인 출신에 트럼프 대통령의 ‘코드 인사’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중앙정보국장 재직 당시에는 강경한 북한 관련 발언을 일삼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유화 기조로 돌아서게 되면 ‘주군’의 의중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메릴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하기로 결정한 만큼 폼페이오 후보자도 그 기조를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김정은과 만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 역시 폼페이오 국장이 제공한 북한 관련 정보 및 분석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용적 대북관 가졌을 가능성 커”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 조엘 위트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북한도 폼페이오가 트럼프의 측근이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폼페이오는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명석한 데다 트럼프의 성공을 바란다”라고 썼다. 미국 신안보재단의 아시아 전문가 패트릭 크로닌 박사는 “폼페이오와 트럼프는 북한 문제에 관해 호흡을 맞춰왔다. 폼페이오가 장관에 취임하면 트럼프의 대북 언사부터 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교 전문가들은 폼페이오가 강경한 대북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실용적 접근을 취할지는 4월 중 개최될 상원의 국무장관 인준 청문회 때 윤곽이 드러나리라 본다. 폼페이오 후보자가 북·미 협상 과정에서, 자신이 공언해온 대로 대북 압박을 고집할지도 관심사다. 압박하다 보면 대화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화와 압박은 병행할 수 없다”라는 기조를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북한 역시 폼페이오 후보자의 언행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가 이란 핵 협정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을 터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협정은 폐기돼야 한다’는 견해였는데, 폼페이오 후보자도 이에 적극 동조해왔다. 〈뉴욕타임스〉의 지적에 따르면, “트럼프가 이란 핵 협정에서 발을 뺄 경우 김정은은 북·미 협상에 의구심을 갖게 될 수 있다. (북한이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아무리 좋은 성과를 거둔다 해도)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북·미 협정을 폐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후보자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공조할지도 관심거리다. 매티스 장관은 틸러슨 장관과 함께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법을 선호해왔다. 이란 핵 협정에 관해서도 매티스 장관은 협정 유지 쪽이었다. 전직 국무부 관리 일런 골드버그는 〈폴리티코〉와 인터뷰하면서 “폼페이오가 트럼프를 부추겨 이란 핵 협정을 폐기하도록 만들지, 아니면 ‘좋진 않아도 유지해야 한다’라는 매티스 장관과 호흡을 맞출지부터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특사단이 방북한 이후부터 줄곧 유화적 기조의 발언을 지속해왔다. 3월13일에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짙게 내비치기도 했다. “뭔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정말 믿는다. 이는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와 미국에 위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폼페이오 후보자의 진정한 성향이 어떠하든 그의 태도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배적 관측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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