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북한 전문가 10인을 상대로 12월21~22일 설문조사를 벌였다. △김정일 사후 북한 내부의 변화 △미국·중국 등 주변국 관계와 6자회담에 대한 전망 △한국 정부의 대응 등 세 가지 측면에 대해 물었다.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연착륙과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뉴시스 북한 평양에서 3일 김정은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을 추대하는 대규모 행진이 열린 가운데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김정은을 치켜세우고 있다.

김정일 사후 북한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첫 번째는 북한의 대남 도발 가능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설문에 응한 북한 전문가 10명 중 9명은 ‘북한의 대남 도발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보았다. 최고 지도자가 부재한 위기 상황에서 북한이 내부 정치적 안정화와 권력 장악에 주력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많이 들었다. 시기적 요인도 있다. 내년 1월8일은 김정은의 30세 생일이고, 2월16일은 김정일의 70회 생일, 4월15일은 북한의 태양절로 김일성 전 주석 탄생 100주년이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일이 없었다면 북한은 이 기간을 축제로 지내려고 했을 것이다. 김정일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북한은 이 기간을, 추도와 3대 세습을 공고화하는 시기로 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북아의 안정을 원하는 주변 국가의 태도 또한 대남 도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하면서도 ‘일부 군사적 모험주의자들에 의한 우발적 상황’을 한 가닥 우려로 남겨놓았다.

김정은의 권력 승계 과정 또한 순조로울 것이라고 보는 이가 훨씬 많았다(8명).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권력 승계 준비 기간을 거쳤다는 이유에서다. 북한은 지난해 9월 당대표자회를 열어 당 중앙군사위를 상설 최고 군사기관으로 격상시키고,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임했다.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은 “44년 만에 당대표자회를 열어 여기서 후계자로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을 뒤엎을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단, 당장은 권력 승계가 순조로울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중·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 김정은 체제의 중요 변수는 ‘경제’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경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달려 있다. 경제 수준만 안정되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순조로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뉴시스 수많은 평양 시민들이 3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 운집, 북한의 정책과 새 지도자 김정은을 지지하는 대규모 대회를 열고 있다.

권력 승계가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자는 1명이었다(1명은 무응답). 남궁영 교수(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는 “2008년 9월 이후 권력 승계를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준비 기간이 3년 정도뿐이다. 김정은의 나이가 20대 후반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권력 엘리트들이 모두 위기의식을 느끼는 초기 국면이 지나고 난 내년 중·후반에 권력 투쟁이 일어나리라고 보는 게 객관적 판단이다”라고 지적했다.

쿠데타를 비롯한 북한 내 급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 또한 별로 없다는 의견이 대체적이었다. 이봉조 전 차관은 ‘급변 사태라는 말은 우리 정부의 시각이 반영된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이 김정은 후계체제를 인정하고,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시진핑 등 최고위급 9명이 조문을 했다. 미국·일본·러시아도 조의를 표명하면서 일종의 조문 외교를 펼쳤다. 이런 상황이 정세를 안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고, 급변 사태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었다.”

ⓒ뉴시스 북한 평양 주민들이 3일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내걸고 김정은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을 추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

전문가 대다수는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이 향후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매우 높다 5명, 약간 높다 4명).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만이 “김정일이 죽었다고 해서 정책의 변화 요인이 나타났다고 볼 수 없다. 좀 더 관찰해야 한다”라고 유보적 견해를 보였다. 개혁·개방은 북한에 ‘양날의 칼’과 같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고, 개혁·개방을 할 경우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나진·선봉, 황금평 등 거점식 개혁·개방을 한 뒤 자신감이 붙으면 이를 전 지역으로 확산한다는 단계별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없다면 북한 내 경제 문제를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주변국과의 관계와 6자회담은?

김정은 체제에서 먼저 주목할 나라는 중국이다. 북한 전문가 사이에서도 ‘김정일의 사망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지금보다 강화시킬 것’이라는 견해(8명)가 우세했다. 유엔이 경제 제재에 나서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은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에 의존해왔다. 중국과의 교역이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 임을출 교수는 “9월까지 대중 무역이 42억 달러에 달했고, 올해 50억 달러 수준이다. 북한으로서는 엄청난 양이다”라고 말했다. 나진·선봉 지구, 황금평 개발 등 경제 재건을 위해 북한이 중국과 밀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군사 교류도 주목한다. 그는 “최근 들어 북한과 중국의 군사 교류·협력이 활발해졌다. 북한 군부와 중국 군부가 결탁하는 이해관계 구조까지 감안하면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4년 12월15일 개성공단 내 한국 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반면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지금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진희관 교수(인제대 통일학부)는 “유엔 제재가 발효된 상황이기 때문에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측면이 있다. 주변국들이 한반도 안정을 원하고, 대화·접촉이 늘어난다면 의외로 중국 의존도가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 응답자는 ‘김정일 사망 이후 미국과 중국이 대북한 접촉 속도 경쟁에 들어간 모양새’라고 말했다. 시기가 다를 뿐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응답자 가운데 9명). 북한으로서도 6자회담에 들어가 자신들의 체제 안정성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임을출 교수). 진희관 교수는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때와 지금을 비교하기도 했다. 당시 6월까지 전쟁설이 나돌다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대화 분위기가 형성된 직후 김 전 주석이 갑자기 사망한 바 있다. “북한의 불안정성을 걱정한 미국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했고, 결국 제네바 협상으로 이어졌다”라고 진 교수는 말했다. 이번에도 북·미 간 대화가 급진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에 조의를 표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한해 답례 조문을 허용한 조처에 대해서는 ‘적절했다’고 평가하는 의견(8명)이 많았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감안하면 진일보했고, 국내 정치 상황과 기존 대북정책을 고려한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 것이다. 반면 임을출 교수는 ‘부족한 수준’이라고 아쉬워했다. 민간단체에서 폭넓은 조문단을 보내면 그 자체로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는데, 지금 수준은 ‘북한이 보기에 표시가 안 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변수는 북한의 태도이다. 설문조사를 할 때(12월21~22일)만 해도 북한은 해외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12월23일 북한은 ‘남측의 모든 조문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한국기독교회협의회 등 민간단체도 조문단을 구성해 방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이를 승인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조문 문제가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관건은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7명)이 우세했다. 그동안 천안함·연평도 사태가 남북 대화의 걸림돌로 작용해왔는데, 김정일 사망이라는 그에 못지않은 변수가 등장해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 시기를 정책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만 교수(중앙대 경제학과)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결국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을 확대시킨 게 대북정책의 잘못이었다. 김정은은 천안함·연평도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접근하기 쉽다.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만드는 게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북한이 이제 춘궁기에 들어서고, 3~4월에는 비료 부족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먼저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8명).


북한 전문가 10인에게 물었다

① 김정은의 권력 승계는 순조로울까? ② 김정은은 개혁·개방에 나설까? ③ 6자회담 전망은? ④ 현재 가장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대북정책은?


 

남궁영(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① “순조롭지 않을 것. ‘예외적’으로 김정은이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객관적으로는 권력투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② “물려받은 권력을 유지할지, 혹은 중국과 공조할지 권력이 안정된 이후를 봐야 한다. 후자가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인다.” ③ “누가 북핵을 컨트롤하느냐의 문제인데, 효율성 있는 회담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차분히 지켜보는 방향으로 갈 것.”④ “남북관계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북이 개혁·개방 정책을 편다는 전제하에) 전략이나 폼이 아닌 진정성 있는 대규모 지원을 해야 한다.”

 


서보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① “준비는 나름대로 해왔다고 보인다. 권력 엘리트들의 공동 운명체 의식도 고려하면 순조로울 것.” ② “제한적 분야나 지역적으로 한정해서 개혁·개방 정책을 펼 가능성은 김정일 체제 때보다는 좀 더 생기지 않겠나. 점진적으로.” ③ “상황이 정상화되면 6자회담은 연속선상에서 진행되지 않을까.” ④ “당국간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가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 민간 교류 등 지금보다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이봉조(전 통일부 차관)

① “김정일이 생각보다 빨리 사망한 것이 불안 요인이긴 하지만, 김정은 외 다른 대안은 없다.” ② “강성대국 3요소 중 경제대국을 건설하는 임무가 김정은에게 주어진 셈이다. 개혁·개방 가능성 높지만, 미국과 우호적 관계 개선 필요.” ③ “북·미 대화와 연동해서 봐야 하는데, 내년 3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전 6자회담을 재개하지 않을까 관측된다.” ④ “금강산 관광 재개나, 이산가족 상봉 등 실무적인 대화부터 시작하면서 식량지원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이상만(중앙대 경제학과)

① “승계는 매뉴얼대로 가고 있지만, 내부적 불만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변수다.” ② “민심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경제 문제를 푸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대표 지원세력인 중국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③ “갑자기 속도를 내지는 않겠지만, 승계 과정이 끝나면 체제 안정을 위해서라도 재개될 것.” ④ “정부 간 대화가 안 되면 부문별로라도, 어떤 형태든 남북대화가 재개되어야 한다.”


임강택(통일연구원)

① 무응답 ② “김정일이 죽었다고 해서 정책의 변화 요인이 나타났다고 볼 수는 없다. 지도자의 성향과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개혁·개방에 나설지는 유보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부분이다.” ③ 무응답 “이런 상황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 상황별로 대처 방향과 기조에 대한 설계도가 있는지 의문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① “민심의 향배인 경제 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한다면 정통성을 확보하는 과정은 순조로울 것.” ② “친중파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협이 성과가 있다. 이는 자본주의 제도를 폭넓게 수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③ “추모는 추모대로, 6자회담은 6자회담대로 병행될 것 같다.” ④ “5·24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을 풀고, 당국 간 회담도 병행되어야 한다.”


장용석(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① “김정은의 현 지위 자체가 체제를 물리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모든 기관이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②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중국 변수가 중요하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중국의 경험에 입각해서 촉진될 가능성이 크다.” ③ “순연될 가능성은 있지만, 김정일 사망이 6자회담의 큰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 ④ “북의 붕괴 가능성에 집착하지 말고, 대북 인도적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조봉현(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① “절대적 권력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후원 그룹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혼합형 권력 승계가 됐다고 본다.”  ② “경제 문제 해결이 김정은의 과제다. 거점식 개혁·개방을 통해 전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단계별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③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겠지만, 내년 태양절(4월15일)까지는 내부 결집에 집중할 것.” ④ “인도적 지원과 동시에 경제협력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만이라도 5·24 조치를 해제해 활성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진희관(인제대 통일학부)

① “사회주의 국가 속성상 당의 결정(이미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개 발표)에 반발하기 어렵다. “ ② “김정일 체제보다는 개방적이 될 것이다. 다만 당분간은 측근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에 기존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③ “6자회담은 김정일의 유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역시 의지는 강할 것.” ④ “과거 정도는 아니어도 상응하는 식량지원(인도적 지원)이 중요하다. 시기상 파급 효과가 클 것.”


허문영(통일연구원)

①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2008년 이후, 후일에 대비해 김정은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로 이미 당·군·경제가 장악되어 있다.” ② “안 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럴 때는 경제난으로 힘들 것이다. 때문에 대결의 남북관계를 풀어야 하고, 한국 정부가 취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③ “6자회담의 성과는 김정은의 업적이 될 수 있다.” ④ “인도적 지원을 통해 주민 마음을 위로하고, 한국이 김정은 정권 해체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기자명 차형석·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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