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주체 100년’인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선군정치 시대의 종지부를 찍으며 기울어가고 있다. 2012년 한반도 정세는 역사상 유례없이 불안정·불투명·불가예측적인 ‘3不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뒤에 벌어졌던 혼선과 국론 분열 그리고 이로 인한 남북관계 단절의 경험을 교훈 삼아 2012년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최대 과제이다.

사실상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 악화로 상당 기간 공식 활동을 못하게 된 이후부터 그의 사망은 예고된 것이었고, 북한은 이에 대비해왔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이나, 2010년 9월 44년 만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해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한 것 등이 그것이다. 비록 김정은은 후계자로서 활동한 기간이 김정일 위원장에 비해 짧기는 하지만 2008년 후반부터 김정은 후계체제를 정당화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체제의 출범에 대비한 후견 세력들의 전면 배치가 착착 진행되었다. 아무리 완벽한 준비가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김정은의 앞날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하지만 일단은 당과 국방위원회 그리고 군에서 최고 지위를 하나씩 물려받으며 김정은 시대를 구축해나갈 것이다. 북한은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다. 김정은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당대표자회’에서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내부 동향에 눈을 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은 내년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등 예정된 대규모 행사를 김정은 중심으로 치르면서 후계체제 구축에 적극 활용할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가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상징과 슬로건 등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가 되게 하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목표는 유훈으로 계속 추진될 것이다. 남은 과제는 경제대국이 되는 것이다. 경제 문제의 해결은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어야 하는 김정은으로서는 무엇보다 먼저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그런데 이 목표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북한은 북·미 대화와 6자회담의 재개에 역점을 두는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미국 또한 클린턴 국무장관이 언급한 것과 같이 북한의 ‘안정적 변화’를 희망하면서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개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도 북한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후 중국은 김정은 후계체제를 즉각 인정하고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조문을 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중국이 조문 외교를 통해 보여준 메시지는 주변 국가들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총선과 대선 앞두고 한반도 정세 안정이 매우 중요

문제는 남북관계이다. 이명박 정부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해나가려 하는가이다. 북한에서의 권력 교체를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전환시켜나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정부 태도로는 그럴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의 북한 상황을 급변 사태로 인식하고 대처하려는 행태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당분간 북한을 자극하는 언행은 자제해야 한다. 북한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대다수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 정부의 소임이다. 이를 외면해서는 2012년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내년에는 국내적으로 총선과 대선 같은 중요한 정치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의 안정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방법론적 유연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즉 남북대화 채널을 가동하는 것이다. 북한 내부가 조문 국면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선제적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의해야 한다. 우리가 요구할 사항이 있다면 이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기보다는 회담 과정에서 제기하는 것이 맞다. 북한도 호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은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추동력을 제공하고 동시에 우리가 균형점 구실을 수행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펼치는 ‘상생·공영 대북정책’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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