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일 부산 방문 중 흉기 습격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누운 채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들어가고 있다.ⓒ시사IN 박미소
1월2일 부산 방문 중 흉기 습격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누운 채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들어가고 있다.ⓒ시사IN 박미소

한국 정치는 충격적인 뉴스로 2024년을 시작하게 됐다. 1월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브리핑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가 흉기로 기습당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제1야당 대표의 사진이 삽시간에 언론사 홈페이지 메인 화면과 포털을 뒤덮었다.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대통령실의 특검법 거부권 행사, 이낙연 전 대표의 민주당 탈당 등 총선을 앞두고 나날이 빨라지던 정치권 시계도 일시적으로 올스톱되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 김 아무개씨(67)는 경찰 조사에서 “이 대표를 살해하려 했다”라고 진술했다. 김씨가 수년간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당원이었으며, 태극기 집회에 여러 번 참가했고, '이재명 대표의 일정을 알아내기 위해 2023년 민주당에 입당했다'는 내용 등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김씨의 범행 동기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다. 정치 유튜브를 즐겨 봤다는 이웃의 전언도 나왔다.

그러나 피의자에게만 초점을 맞추거나 개인의 일탈이라는 국소적 프레임으로 보는 것은 “이번 사건을 치안 사범의 범죄 정도로 취급하는 ‘공안적’ 시각”이라고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계했다.

독버섯처럼 자라난 증오 정치

정치학자인 박상훈 연구위원은 2023년 펴낸 저서 〈혐오하는 민주주의〉에서 팬덤 정치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박 연구위원은 “2000년대 이래로 한국 정치는 줄곧 나빠지고 있다. 이번 피습 사건은 우리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본다. 한국 민주주의가 어디서부터 병들었는지, 왜 혐오가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좌우를 떠나 정치 원로들도 비슷한 시각을 내비쳤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1월3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정치 지도자들이 상대방을 공격해도 지금 같은 어휘를 구사하지는 않았다. 정당 대표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아래 실무자들이 올렸을 텐데 누가 더 자극적인 말을 하나 경쟁하는 것 같다. 점점 격렬해지고 어제보다 더 자극적인 말을 찾는다. 무의식중에 국민한테 주는 영향이 상당히 클 거라고 본다.”

이튿날 같은 방송에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우리 정치가 서로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증오만 키워온 업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본인이 처음 국회에 온 14대 국회(1992년 개원)와 비교하면 협치와 토론의 문화가 실종되고 의원들 사이에 적대감도 더 깊어졌다는 것이다.

유인태 전 총장은 비단 당이 다른 여야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우려를 내비쳤다. “지금은 같은 당에서도 ‘총이 한 방 있으면 쏴 죽이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나. 정말 비극이다.” 지난해 10월 민주당 이원욱 의원 지역구에는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를 백 번, 천 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른바 '비명계' 의원들을 비난하는 현수막이다. 이 의원은 당내 비주류 모임인 ‘원칙과 상식’에 속해 있다. 이번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 이후 현역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위기감이 감돈다고 전해진다.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1월3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야 모두 독버섯처럼 자라난 증오 정치가 국민께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 정치문화를 혁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인들의 선을 넘나드는 막말이 지지자는 물론 일반 시민을 자극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혐오로 번졌다”라고 말했다. 극단적·적대적·대결적 정치 구도 아래에서 열광과 증오가 지지자들을 지배하고 ‘정치 테러’가 싹틀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됐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시사IN〉은 지난해 12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24 총선 유권자 지형 분석’ 웹조사에서 여야 주요 정치인 11명에 대한 감정온도를 조사했다(〈시사IN〉 제850호 ‘윤석열 평가 따라 나뉘는 한동훈 호감도’ 기사 참조). 감정온도는 각 인물에 대해 평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측정하는 지표다. 0도는 매우 차갑고 부정적인 감정, 100도는 매우 뜨겁고 긍정적인 감정이다.

포퓰리즘으로 미끄러진 민주주의

‘국민의힘 호감층’ ‘민주당 호감층’ ‘무당층’으로 나누어 분석했는데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한 감정온도는 그야말로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그림〉 참조). 국민의힘 호감층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감정온도는 69도, 73.5도에 달했으나, 민주당 호감층에서는 10도, 12.4도에 불과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감정온도는 정반대 양상을 띠었다. 민주당 호감층에서 이 대표가 받은 감정온도는 65.7도, 국민의힘 호감층에서는 14도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극단적 정치는 극단적 지지자를 부르고, 극단적 지지자는 다시 극단의 정치를 증폭시킨다. 이는 정책이 아니라 감정의 양극화에 가깝다. 그사이 사회적 의제들을 논의하는 공론장은 쪼그라들고, 민주주의는 ‘한국식 악성 포퓰리즘’으로 미끄러진다. 공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보다는 지지자 개인의 욕망을, 대결에서 이기고 상대편을 척결하려는 욕구를 대리하는 정치인들이 승리를 거머쥐기 때문이다.

1월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송된 서울대병원에 지지자·유튜버와 경찰 병력이 모여 있다.ⓒ시사IN 박미소
1월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송된 서울대병원에 지지자·유튜버와 경찰 병력이 모여 있다.ⓒ시사IN 박미소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포퓰리즘의 또 다른 측면을 짚었다. “요즘 사람들 반응을 보면 정치를 한 걸음 떨어져서 대하기가 어려워진 게 아닌가 싶다. 공인으로서 정치인의 역할과 사인으로서 정치인의 퍼스널리티(인격)를 구분하지 않는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건데 포퓰리즘 정치의 특징적 현상 중에 하나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을 향한 호감과 혐오, 양쪽으로 모두 불붙이기가 쉬워진다.”

지난해 9월,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했다. 당시 농성장을 찾은 50대 여성이 고성을 지르고 쪽가위를 휘두르며 소동을 부리는 사건이 있었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자로 알려진 이 여성은 “이 대표를 빨리 병원에 데려가라”며 소란을 피웠다. 이를 막는 과정에서 국회 경비대 소속 경찰 두 명이 팔과 손등에 부상을 입었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쉽게 넘겨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전까지 ‘국회 폭력’이라고 불리는 사태들은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 문을 걸어 잠근다든지, 의장석을 육탄 방어한다든지, 최루탄을 던진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여야가 정당의 의제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쪽가위 난동은 열성적 지지자가 의회 경내에서 본인의 기대나 욕구를 표현하고자 폭력을 쓰는 행위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건들과 달랐다. 증오에는 전염성이 있다. 그 사건이 말해주는 바는 사람들 마음속에 폭력적인 행동을 할 준비가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직후 김진표 국회의장이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라고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도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 사건의 의미를 숙고하지 못한 채 일종의 해프닝으로 흘려보냈다.

기우일 수도 있다. 공식 일정을 수행하던 정치인이 흉기로 공격당하거나 폭행을 당하는 사건은 심심치 않게 발생해왔다. 대표적 사례가 2006년 지방선거 유세 과정에서 벌어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커터칼’ 피습이다. 그러나 박상훈 연구위원은 2006년 사건과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다른 맥락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때 사건은 우발적인 성격이 좀 더 짙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대중의 폭력이 한국 정치에서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는 것 아닌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태극기 집회, 팬덤의 출현과 문자폭탄 등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를 관통해온 시간을 반추해보면 2024년의 정치는 2006년과는 분명 다른 곳에 와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4일 광주송정역에서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4일 광주송정역에서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새해 시작과 동시에 습격을 당한 한국 정치는 정확한 교훈을 얻고 변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여야 사이의 정치적 규범을 손보고 협치를 위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4월 총선까지 당내 경선과 공천, 선거운동이 이어지는데 이때는 도리어 적대와 증오가 더욱 과열되는 시기이다.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자작극을 주장하고,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배후라고 의심하며 양쪽에서 음모론이 퍼져 나간다. 피습 직후 '잠시 멈춤'했던 정치권은 이 사건이 어느 진영에 유리할지, 혹여 불똥은 튀지 않을지 다시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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