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원 그림
ⓒ한성원 그림

서점에 갔다가 고대하던 책을 만났다. 정병준의 〈1945년 해방 직후사〉. 보자마자 머리말도 읽지 않고 바로 샀다. 현대사 연구자 정병준의 역량을 알기 때문이다. 내용이 궁금해 근처 빵집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우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서문과 프롤로그를 읽는 데 한 시간여가 걸렸다. 천천히 오래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해방의 감격이 분단의 비극으로 귀결되는 아픈 역사를 대면하는 괴로움과 이런 연구자가 있어 다행이라는 고마움이 걸음마다 엇갈렸다.

책은 해방 직후에 일어났으나 이제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비사(祕史)’로 가득하다. 숨겨진 그 역사는, 저자가 말했듯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건준, 인공, 미군정, 초기 반탁운동 등에 대해 기록되지 않은 일들이 기록된 일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상식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데, 저항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저자가 발로 뛰며 모은 방대한 자료와 치밀하고 객관적인 분석이다. 꼼꼼한 자료 분석은 좋은 연구서의 조건이지만 일부 독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기에 저자는 서문에서 주요 내용을 요약해 제시한다. 따라서 완독이 부담스럽다면 서문이라도 보기를. 아마 그걸 보면 모든 페이지를 읽고 싶을 것이다. 내가 사실(事實)이라 믿었던 것이 정말 사실(史實)인지 확인하고 싶을 테니까.

먼저 저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해방 당일 여운형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만남에서 산출됐으며 한민당 계열의 우익은 총독부와의 만남을 거부했다는 ‘상식’부터 깨뜨린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복원한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르다. 흔히들 한반도의 해방은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을 받는 격”으로 느닷없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여운형은 이미 1942년께 일제의 패망을 예측했고, 이듬해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부터 해방에 대비한 구상을 시작해 8월에 출옥하자마자 비밀조직을 만들고 1년 뒤에는 조선건국동맹을 발족했다. 패전 당시 총독부가 여운형에게 치안유지 교섭을 한 것은 이런 조직력에 더해 그가 협상을 할 수 있는 합리적 인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건준은 해방 당일 갑자기 급조된 것이 아니라 오랜 건국 준비 계획 아래 탄생한 것이며, 그랬기에 일제의 소망과 달리 단순한 치안유지가 아니라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의 준비 조직으로 해방공간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한민당 계열은 일제의 패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운형의 합작 제의를 거부하다 뒤늦게 총독부 의중에 따라 건준을 치안유지회로 변화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친일파로 가득했던 한민당 세력이 해방 직후 주도권을 잃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귀축영미(鬼畜英米)를 외치던 친일파에서 단숨에 친미파로 변신해 미군정하에서 다시 득세한다. 저자는 그 배경으로 한국에 무지한 미군정, 이를 이용한 일제와 친일파의 공작, 존 하지(미군정 사령관)의 개인 정치고문이었던 윌리엄스 같은 선교사 가족의 역할을 지적한다.

미군은 사이판, 괌 같은 다른 점령지에는 미리 군정 계획을 수립했으나 한국에 대해선 사전 준비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진정한 의미의 군정이 실시된 유일한 지역은 남한이었고 더구나 주둔군 사령관이 국제적 합의를 무시하고 대결적인 안을 모색한 유일한 지역이었으니, 이후의 비극은 예견된 것이라 하겠다. 미군 선발대가 한국인과의 접촉을 엄금한 채 일본군 수뇌부와 맥주 파티를 벌인 데서 볼 수 있듯이, 미군정은 현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신 일본군 및 총독부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한국에 대한 인식을 수립했다. 그 결과 이묘묵 같은 친일파가 존 하지의 통역이자 비서실장으로 미군정의 '문고리 권력'이 되었고, 한국인이 신망하던 여운형은 ‘공산주의자이자 친일파’라는 오명을 쓰고 배제되었다.

미군정, 한민당, 이승만 둘러싼 비사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한 이들이 윌리엄스, 언더우드 등 한국에 자리 잡은 선교사 가족이었다. 의무관으로 우연히 미군에 동행했다가 한국어 실력 덕에 존 하지의 정치고문으로 중용된 조지 윌리엄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미국에선 “아무것도 아닌 자”였지만 한국에선 미군정의 인사정책을 좌지우지하며 기독교·반공 등을 기준으로 한민당 출신자를 중용했고, 존 하지가 본국의 지침인 정치적 중립을 무시하고 한민당 편향의 반공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여 남한의 정치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일·일본에서와 달리 존 하지의 미군정은 정부 정책과 국제 합의를 무시한 채 독단적인 방책을 추진했다. 한국에 대한 무지와 무시의 반영이었다. 그 결과 미군정 초기부터 국무부의 ‘다자간 국제신탁통치’ 지침을 부정하고 비밀리에 미군정 예하의 과도정부를 출범시키려는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반탁이라면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임정 계열이 주도한 반탁운동을 떠올리는 게 상식이지만, 저자는 그보다 먼저 미군정, 한민당, 이승만의 “알려지지 않은 진정한 반탁운동”이 있었으며,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좌우한 분기점은 1945년 말의 반탁이 아니라 미군정 주도의 반탁운동이었다고 지적한다.

책에는 이 밖에도 놀랍고 충격적인 비사가 가득하다. 그 속에서 “야심만만했으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좌익의 모험주의, 우익의 물불 가리지 않는 정치적 욕망과 책략, 총독부의 용의주도한 공작, 순진했던 미군정의 초기 정책, 용감하고 혁명적이었으나 테러와 공작의 희생자가 된 여운형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솔직히 읽기 답답한 역사다. 그래도 읽기를 권한다. 희망과 열정으로 시작해 분노와 좌절로 끝난 시대를 알아야 비로소 “진실과 대면하고, 감정적일 수 있으나 냉정을 유지하고, 비관도 낙관도 불허”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임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용감하게 직시할 것”, 아픈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기자명 김이경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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