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경제에서 가장 돋보이는 나라는 미국이다. 중국에서마저 경기침체 조짐이 역력한 가운데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홀로 잘 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사실상 미국 경제의 사령탑 노릇을 해온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잘했기 때문? 그렇지 않다. 미국 경제는 연준의 당초 의도·기대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제롬 파월 의장 등 연준 최고위 간부들은 시름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업률↓, 인플레↓, 임금↑, 투자↑, 잘 나가는 미국경제

미국 상무부는 7월27일, 지난 2분기의 미국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연율(분기 성장률을 연 단위로 환산) 기준 2.4%로 집계되었다고 밝혔다. 깜짝 놀랄 만한 성장률이다. 1분기(2.0%)보다 0.4%포인트 높은 데다 시장 전문가들의 예상치(1.5~2.0%)까지 훌쩍 뛰어넘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같은 날 ‘기준금리 인상’ 발표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2023년 내 경기침체(recession)’ 우려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듯하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 가계의 ‘실질소비지출’ 증가율(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이 1분기의 4.2%에서 1.6%(2분기)로 급락했다는 사실이다. 소비는 미국 경제성장의 거의 2/3를 설명하는 변수다. 이처럼 소비 증가율이 폭락했는데도 높은 경제 성장률이 달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들이 공장건설과 설비구입 등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기업 부문의 지출은 지난 2분기에 7.7%(연율)나 늘어났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지출이 크게 증가한 것도 GDP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가계의 소비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니 기업과 정부 부문이 지출을 늘려 경제 규모를 키워버린다. 지금의 미국 경제는 목 하나를 베면 다른 목이 솟아나는 전설의 괴물, 히드라와 비슷하다.

바이든 대통령(사진)은 2분기 GDP 성장률 발표 직후 낸 성명서에서 바이드노믹스가 작동하고 있다라며 기뻐했다. ⓒAP Photo
바이든 대통령(사진)은 2분기 GDP 성장률 발표 직후 낸 성명서에서 "바이드노믹스가 작동하고 있다"라며 기뻐했다. ⓒAP Photo

바이든 행정부는 “바이드노믹스(Bidenomics, 바이든의 경제학 혹은 경제 운영)가 작동한 것”이라며 기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무부의 GDP 통계가 나온 직후 낸 성명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업률은 사상 최저치에 가까운 수준이고,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최고치인 9%에서) 2/3나 떨어졌으며, 실질 임금은 팬데믹 이전보다 높아졌고, 청정에너지와 제조업에 대한 민간 부문의 투자는 5000억 달러 이상 증가했습니다. 저의 계획이 작동하고 있으며,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연준을 배신한 미국 경제

그러나 백악관이 기뻐할수록 연준의 고뇌는 깊어진다. 연준은 지난해 3월 이전까지 사실상 0%였던 기준금리를 불과 1년6개월여 동안 5.5%까지 올렸다. 욕도 엄청나게 들었지만, 연준은 당당했다. 금리를 올려 가계와 기업이 돈을 빌리기 힘들게 만들어야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컨대 차입비용이 올라가서 가계와 기업이 각각 소비, 투자를 줄이면 실업률이 높아지고 임금은 떨어지며 이는 다시 소비와 투자를 줄여 미국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었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로 인한 미국 시민들의 ‘일시적(연준의 견해) 고통’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연준은 생각했다. 인플레이션이 초래할 장기적 고통이 시민들에게 훨씬 가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이 2023년에 경기침체(recession)를 겪을 것’이라고 예측해왔는데, 이는 연준의 의도와 강력한 수단(금리인상)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예측을 완전히 빗나갔다. 연준은 실업률을 높이지 못했다. 6월 실업률은 3.6%로 5월(3.7%)에 비해 오히려 0.1%포인트 떨어졌다. 더욱이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직전인 지난해 1월의 실업률은 3.9%였다. 기준금리를 5.5%나 올렸건만 실업률은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6월의 ‘시간당 평균임금’ 상승률(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도 예측(4.2%)보다 높은 4.4%로 나타났다. 덕분에 가계지출이 유지되고 있다.

파월, “경기가 확실히 둔화되어야”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소비자물가지수 기준)은 확실히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 최고치인 9%에서 올해 1월의 6.4%를 거쳐 6월엔 3%까지 하락했다. 연준의 목표치인 2%에 바짝 접근한 수치다. 지난해 초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폭등했던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크게 떨어진 덕분이다. 근원 인플레이션율도 1월의 5.6%에서 6월엔 4.8%로 하락했다.

그러나 ‘컵에 얼마나 많은 주스가 남았나’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낙관론자는 ‘반이나 남았네’라고 기뻐하지만, 비관론자는 ‘반밖에 안 남았다’라고 슬퍼한다. 연준은 비관론자다. 그토록 공들여 돈을 못 쓰게 해놓았는데, 가계와 기업은 소비·투자를 억제하지 않는다. 더욱이 임금인상률(4.4%)이 인플레율(3%)보다 더 높아지면서 실질소득이 많아진 가계는 앞으로 돈을 더 헤프게 쓸 공산이 높다. 연준의 시각에선, ‘곧이어 인플레이션이 닥칠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7월27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REUTERS
유럽중앙은행(ECB)은 7월27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사진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REUTERS

파월 의장은 금리인상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확신하려면 경기가 더 둔화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남은 5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이다. 그는 또한 연준의 이코노미스트들이 미국의 경기침체 예측을 뒤집었다며 연착륙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올해 말부터 미국의 경제성장에 눈에 띌 만한 둔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기둔화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연준의 절실한 희망 사항이다.

대서양 건너편의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연준과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CB도 7월27일(현지시간) 4.0%였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된 4.25%로 올렸다.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금리 수준이다. 성명서에서 ECB는 “인플레이션율이 하락 추세이긴 하지만, 인플레이션 자체는 높은 수준에서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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