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의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에서 승리한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법무부의 불복 선언을 반박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다시 거론했다. 두 사람이 주도한 ‘국정농단 수사’ 덕분에 ISDS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데 ‘지금 와서 무슨 소리냐’는 식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7월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7월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엘리엇은 7월18일(미국 현지 시각) 배포한 “(ISDS) 중재판정부의 손해배상 판정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대한민국의 결정”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서 엘리엇은 먼저 “(한국 정부가) 1억850만 달러의 손해배상 판정에 대한 취소 소송을 영국 법원에 제기하기로 결정한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 이는 법무부가 7월18일,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다. 여기서 ‘중재지(place of arbitration)’는 일단, 국제중재(ISDS도 국제중재의 일종이다) 판정에 불복하는 측이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장소로 이해하면 된다. 국제중재의 양측 당사자들은 본격적 중재 심리로 들어가기 전에 어떤 나라의 법원을 ‘중재지’로 삼을 것인지 미리 합의해둔다(‘한동훈 장관이 취소 소송 내겠다는 ‘중재지’는 무엇?’ 기사 참조).

엘리엇은 중재판정부가 “모든 실질적 쟁점에서 대한민국의 주장을 기각했다”라며 “불복은 대한민국이 부패에 관용적인 나라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입장문에 썼다(‘엘리엇 ISDS, 대부분 쟁점에서 한국이 패배’ 기사 참조). 이와 함께,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과 박근혜 정부의 행위로 인해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피해를 입었”고 “엘리엇에 대한 불법적 견제가 아니었다면, 이들 한국 투자자들은 모두 상당한 이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엇의 키워드, 한국의 ‘부패’와 ‘불법’

지난 한국 대 엘리엇 ISDS의 핵심 쟁점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통해 연금공단의 합병 찬성을 압박한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였다. 이미 널리 알려졌다시피, 엘리엇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사모펀드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이 사모펀드가 국가 경제의 중추 기업인 삼성그룹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 때문에 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면 ‘공익’을 감안한 행위로 볼 수도 있다. 설사 엘리엇이 실제로 손해를 봤더라도, 그것이 대통령의 공익을 위한 결단과 연관되었다면, 이는 중재판정부에서 ‘(한미 FTA 상) 국가의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번 중재 심리에서 한국 측은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엘리엇으로서는 박근혜 등이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 “놀라운 수준의 범죄성과 부정의 절정을 보여줬다”고 주장하는 편이 유리했다. 엘리엇이 한국에 ISDS를 제기한 국제법적 근거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협정상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이 인정되려면, 해당 국가가 “상당히 터무니없고 충격적인 행위”를 저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공익을 위해 연금공단을 압박했다면 이 행위가 “상당히 터무니없고 충격적인 행위”에 해당할지 논박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익을 위한 행위였다면 정말 터무니없고 충격적인 ‘부패‧불법’ 행위다.

그래서 엘리엇은 ‘피투자국 권력자들(박근혜, 삼성 창립자 가족 등)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바람에 선의의 투자자인 엘리엇은 물론 한국의 공익까지 해쳤다’는 스토리로 중재판정부를 설득하려 했고 이에 성공했다. 7월18일 입장문에도 “(박근혜 등이) 합심하여 소수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국내외 주주들을 꼭두각시로 이용하고 그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라는 대목이 있다. 특히 박근혜가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것까지 입증된다면, 엘리엇은 한국 정부의 ‘부패’와 ‘불법’을 완벽하게 논증할 수 있었다.

6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참여연대 등 5개 단체가 연 '엘리엇 1300억원 배상에 따른 국고 지출 이재용·박근혜 책임 추궁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국고 손실을 회수할 방안 마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6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참여연대 등 5개 단체가 연 '엘리엇 1300억원 배상에 따른 국고 지출 이재용·박근혜 책임 추궁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국고 손실을 회수할 방안 마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엘리엇의 증거, 한국의 검찰수사와 법원판결

엘리엇은 이 논증에 성공했다. 아주 튼실한 근거가 있었다. 7월18일 엘리엇 입장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그러한 불법행위가 현 정부 구성원에 의해 수사되었고 대한민국 자국의 법원에서 입증되었다는 사실이다. 엘리엇에 대한 손해배상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인정한 사실관계에 대해 이미 확립된 국제법을 적용하여 인정된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현 정부 구성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두 사람은 박근혜 국정농단 수사를 이끈 바 있다. 박근혜는 연금공단 압박을 주도했으나 삼성 측으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지는 않았다. 그의 측근인 최서원(최순실)은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검찰 수사팀은 ‘제3자 뇌물 제공’이란 혐의를 적용해 박근혜를 처벌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엘리엇도 한국 측 ‘부패’ ‘불법’의 결정적 증거물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엘리엇은 판정 결과가 나온 지난 6월20일에 낸 입장문 ‘엘리엇의 승리(Victory for Elliott)’에서도 두 사람을 실명으로 거론했다. “(정부 관료와 재벌 간의 유착 관련) 사실관계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법원 및 검찰에 의해서도 이미 지난 수년간 입증되고 널리 인정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 재직 당시 수사 및 형사 절차를 통해 이미 입증했다.”

법무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지만

한편 법무부는 7월18일,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고 발표했다. 법무부가 주장한 취소 사유는 이른바 “관할” 문제다. 여기서는 ‘한국 대 엘리엇의 분쟁이 과연 ISDS에서 다룰 사안이 맞는가’의 문제로 이해하면 된다.

논리는 간단하다. ISDS란 ‘외국인 투자자가 피투자 국가의 행위 때문에 손해를 봤는가’를 다투는 절차다. 만약 투자자의 손해가 당초부터 ‘국가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면, ISDS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 측은 엘리엇과의 중재 심리에서 처음부터 ‘국민연금공단은 헌법상 국가기관이 아니’고, 따라서 ‘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역시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 논리가 통했다면, 한국 국가에 대한 엘리엇의 손해배상 청구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꼴이니 당연히 각하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는 7월18일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영국 법원에 내는 사유로 제기한 논리와 완전히 동일하다. “중재판정부가 한-미 FTA 상 관할 인정 요건을 잘못 해석하여 이 사건에서 관할을 인정하였고, 이는 영국 중재법상 정당한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법무부의 논리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금공단은 국가기관이 아니다’→‘그러므로 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역시 국가의 조치가 아니다’→‘따라서 한국과 엘리엇 사이의 분쟁을 ISDS에서 다룬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이에 대한 판단을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맡기겠다’.

또한 법무부는 엘리엇이 중재 심리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사용한 한국 법원의 관련 판결에 대해서도 “일부 사람들의 위법”으로 간주하며, 이들에 대한 한국의 형사판결과 엘리엇 분쟁 사건은 “법리상 궤를 달리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조롱한다

지금까지 봤듯이, 법무부가 이번에 제기한 판정 취소 사유는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다. 중재판정부에 제기했다가 기각당한 논리들이다. 영국 법원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엘리엇은 7월18일 입장문에서 다소 조롱하는 어투로 법무부의 판정 취소 소송을 비판했다.

“대한민국은 중재 절차에서 이미 전개했던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이는 바, 그러한 주장들은 중재판정부가 이미 검토하고 기각한 바 있다. 아울러 과거 사례를 보면 영국 법원은 취소 소송 인용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중재판정에 따른 이자와 비용은 엘리엇에게 손해배상액 전액 지급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거 없는 법적 절차를 계속 좇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본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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