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떠나보낸 지 한 달이 지났다. 며칠 전 일 같은데 벌써 한 달이나 지났나 싶다가도 또 어떤 때는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는지 아득히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간 감각 같은 건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제나 과거를 회상할 때면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니, 하고 놀라거나 아직도 시간이 이만큼밖에 안 지났다니, 하면서 놀라게 되는 것 같다.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개를 ‘떠나보낸다’라는 표현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서 떠나 어디론가 가는 거라고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하늘나라든 무지개다리 너머든 강아지별이든 말이다. 개의 육신은 원자로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고 그 밖의 것들은 내 안에 스며들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다시 한번 주장해본다. 하지만 이 주장을 함축하면서 ‘떠나다’를 대체할 만한 단어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 그냥 ‘죽다’를 쓰면 될 일인데 어쩐지 그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면 사람들이 나를 슬금슬금 피할 것만 같다. 적절한 새 단어를 발견하거나 발명할 때까지는 아쉬운 대로 그냥 ‘떠나다’를 쓰는 편이 좋겠다.
개가 떠나고 며칠 동안은 많이 울었다. 주로 개에게 자주 입혔던 옷을 끌어안고 울었고, 사진을 쓰다듬으면서 울었다. 고작 8㎏짜리, 그것도 마지막엔 조그맣게 누워 있기만 했던 개 한 마리가 사라졌을 뿐인데 집이 텅 빈 것처럼 황량하게 느껴졌다. 개가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개 휠체어가 그렇게 보기 싫었다. 개가 힘들어했던 기억에 연결된 물건이라 그랬을 것이다. 서둘러 분해해 상자에 넣었다. 그러면서 또 울었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버둥대던 개를 위해 온 집안에 깔아놓았던 매트도 전부 걷었다. 다 쓰지 못한 일회용 기저귀와 주사기 따위를 당근마켓 나눔으로 처분했다. 그러는 동안 틈틈이 울고 또 울었다. 간병 흔적들을 다 치우고 나면 즐거웠던 시절 기억이 좀 더 많이 떠오를까? 부디 그러기를 바랐다.
마음을 괴롭히는 물건들을 며칠간 치우고 나자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실없이 집 안을 서성거렸다. 개를 돌보는 동안 기약 없이 밀리고 쌓인 일들은 많았지만 당장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동네 수영장에 가서 더 오래 수영하고 이따금 달리던 거리를 더 많이 달렸다. 집에서 이제나저제나 나를 기다리는 개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직 그 사실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한 몸이 자꾸만 조급해졌다. 카페에서 천천히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잔이 비어 있었다. 도서관에 종일 앉아 있어도 좋았겠지만 의식은 글자 위를 겉돌았다. 개가 없다, 개가 없다, 개가 없다. 무언가에 쫓기는 마음을 가라앉혀보려고 숨을 느리게 쉬었다.
죽은 개의 장점: 죽은 개와 우리의 관계는 사실 개가 살아 있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자신의 개를 사랑할 수 있고, 개 덕분에 웃을 수 있습니다. 개 밥값과 병원비가 더 이상 들지 않고, 개똥을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죠. 냉장고 문을 열 때 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밤늦게까지 놀다 들어와도 집 안이 어지럽혀져 있지 않습니다. 단점? 아, 물론 개를 쓰다듬고 끌어안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해요. 그래도 장점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하하하.
스마트폰 메모장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저걸 농담이라고 쓸 땐 아직 내게도 개가 있었다. 언젠가 이런 식으로 밥벌이에 써먹을 날이 올 줄은 알았는데, 질질 짜면서 쓰게 될 줄은 미처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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