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9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 처음으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현직 국·과장이 구속되었다. 2020년 TV조선 재승인 당시 심사위원들에게 심사 점수를 낮게 수정하도록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2월1일 서울북부지법 임기환 영장전담판사는 양 아무개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날에는 차 아무개 방송정책지원과장 역시 구속기소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박경섭)는 2020년 3월16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 대해 수사를 이어왔다. 지난해 9월부터 세 차례나 방통위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문제는 지난해 감사원의 방통위 감사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다. 2020년 3월, TV조선과 채널A는 승인 유효기간 만료를 앞두고 재승인 여부를 심사받았다. 방통위는 전문가 13명으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합숙 심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TV조선은 1000점 만점에 653.39점을, 채널A는 662.95점을 받았다.

재승인 심사의 커트라인은 650점이다. 그런데 총점 650점을 넘더라도 총 6개 심사 항목 중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의 실현 가능성 및 지역·사회·문화적 필요성(2번 항목)’과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3번 항목)’에서 과락(배점 50% 미달)이 나올 경우 ‘재승인 거부’ 또는 ‘조건부 재승인’ 대상이 된다. TV조선의 경우 총점은 650점을 가까스로 넘겼지만 2번 항목이 210점 만점에 104.15점으로 과락 기준선에서 0.85점 모자랐다. TV조선은 ‘재승인 거부’ 위험까지 갔지만, 방통위는 청문 절차 후 2020년 4월20일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방통위는 11개 조건 사항을 TV조선에 전달하고 이것이 제대로 적용되었는지 3년 뒤에 다시 판단해보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올해 4월 TV조선은 방송사의 운명을 건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다.

당시 이 ‘과락’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사정기관(감사원, 검찰)의 주장이다. 감사원은 당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평가점수를 고의로 낮춘 정황’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 감사원이 이렇게 주장한 근거는 심사 서류에 남아 있는 ‘점수 수정 흔적’이었다. 13인 심사위원회는 점수를 수정할 때 기존 점수에 두 줄을 긋고 다시 채점한 점수를 기재했다. 이렇게 ‘기존 점수’와 ‘수정한 점수’ 모두 심사지에 남아 있게 되는데, 감사원은 일부 심사위원이 고의로 점수를 낮게 재기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은 이러한 점수 재기입 과정에서 방통위 방송정책국 소속 직원들이 최종 평가점수를 심사위원들에게 알려주고 점수를 낮게 수정토록 요구했다고 보고 있다. 방통위 직원들이 유도해 심사위원 일부가 의도적으로 과락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이다.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은 방통위에 대한 수사를 이어왔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여권의 ‘한상혁 흔들기’

이에 대해 당시 현장에서 심사를 한 심사위원들은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재승인 심사위원 13인은 각각 방송·법률·경영·회계·기술·시청자·소비자 분야에서 선별된 인사들이다. 이 중 언론학회가 추천한 채영길 교수(한국외대)와 언론정보학회에서 추천한 정미정 박사는 지난해 9월26일 입장문을 통해 “검찰은 방통위 담당자들이 최종 평가점수를 심사위원 3명에게 알려줬고, 이들이 심사위원에게 평가점수를 수정하도록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점수 수정 시 기존 점수에 두 줄을 긋고 재기입하는 것도 심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조처였다는 것이다. 평가점수를 변경하는 과정까지 온전히 기록하는 차원이었다는 게 두 위원의 설명이다.

애초에 ‘수정 이력’이 문서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감사원 감사에서도 문제될 것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개별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점수 수정 이력을 남기는 것 자체가 훗날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감수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점수를 수정했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정 이력을 서류에 남겼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설명이다. 검찰은 이 서류상 수정 이력을 방통위 직원의 적극적인 개입과 일부 심사위원의 의도적인 점수 수정이라고 주장한다. 심사위원과 방통위 직원의 만남도, 방통위 직원 측의 압력도 없었다는 주장은 검찰 수사 결과와 상충된다. 결국 법정에서 진실 공방을 벌이게 될 문제로 확대됐다.

한상혁 방통위원장 역시 사실관계를 법정에서 다퉈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2월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한 한 위원장은 “구속되고 나서 무죄 판결된 게 한두 건인가. 그분들(구속된 직원들)이 항간에 나오는 그런 행위를 했을 거로 생각하지도 않고 또 그럴 동기도 없다고 생각한다. (법원에서)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휘하 직원의 구속에 따른 책임을 지적하자 한 위원장은 “무고함을 다투고 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구속기소는 방통위와 한상혁 위원장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방통위 내부 직원들 사이에 불안감이 퍼질 수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자진 사퇴’를 요구받아왔다. 지난해 6월1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돼 있더라도 정치 도의상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는 것이 맞다. 후안무치하고 자리 욕심만 내는 것으로 비칠 뿐”이라며 압박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한 위원장을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고, 곧바로 감사원은 방통위에 대한 전격적인 정기 감사를 착수했다. 이번 TV조선 재승인 심사 문제도 이때 시작된 감사에서 불거졌다. 이 같은 ‘한상혁 흔들기’에 민주언론시민연합과 한국기자협회 등 7개 언론단체는 지난해 7월5일 “법률로 독립을 보장받은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통위 무력화에 나선 것”이라며 규탄 성명을 냈다.

윤석열 정부와 여권의 방통위원장 흔들기는 ‘공영방송 언론 장악’의 기류로 읽힌다.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명권이 방통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잇따른 감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방통위의 또 다른 권한인 ‘종편 생살여탈권’ 역시 주목받고 있다. 방통위는 방송사업자에 대한 재허가·재승인 권한을 갖는데 종편·보도 채널의 경우 통상 3~5년 주기로 재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방통위가 지난해 9월21일에 수립한 ‘2023~2026년 재허가·재승인 기본계획’에 따르면 TV조선과 MBN은 각각 올해 4월과 11월에, YTN과 채널A는 각각 내년 3월과 4월에 심사가 예정되어 있다. 한상혁 위원장의 임기가 올해 7월까지인 점을 감안하면 TV조선에 대한 올해 재승인 심사는 ‘한상혁 체제’에서 치러진다.

2020년 재승인 당시 방통위는 TV조선에 대해 재승인 조건 11가지와 권고 사항 8가지를 제시했다. ‘조건부 재승인’이기 때문에 2023년 심사에서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재차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재승인 조건 중에는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위반으로 인한 법정 제재를 선거별로 2건 이하 유지할 것’과 같이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종편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편향된 보도를 못하도록 규제하는 장치다. 이 같은 조건은 종편 방송사의 경영 방침을 일정 정도 제약하는 효과도 갖는다.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여권에서는 방통위의 이런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23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방송사업자 재허가·재승인 제도개선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논의는 여권이 원하는 종편 규제 철폐의 밑그림을 읽을 수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와 패널들은 현재 3~5년인 허가 유효기간을 5~7년 이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심사 과정에서 정성평가 항목을 줄이고 정량화된 평가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는 모두 TV조선 재승인 과정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3년 만에 재승인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 정성평가 항목인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 문제에서 과락이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권에서 원하는 종편 재승인의 큰 방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방통위 심사에 대한 여권의 주장을 단순히 진영 논리에 따른 것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특히 정성평가를 수치화해 심사하는 문제는 전부터 논란거리였다.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같은 추상적 평가문제를 심사위원들이 ‘몇 점’이라고 수치화하는 것이 적절한 평가 방식이냐는 지적은 진영을 떠나 논의해볼 만한 문제다. 2014년 10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방송사업자 재허가·재승인 제도개선 방안 연구’에서도 “심사 항목 간의 계위가 맞지 않는 측면이 있고, 심사 기준이 추상적이다”라는 지적이 담겨 있다. 2020년 TV조선 재승인 과정 역시 ‘0.85점 미달’로 인해 ‘조건부 재승인’ 대신 ‘재승인 거부’ 결정이 났다면, 그 역시도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유시춘 EBS 이사장이 선임된 과정을 들여다보겠다며 방통위 감사에 나섰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이례적 기관 감사 돌입

방통위 역시 나름 ‘수치화의 위험’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최종 재승인 결정 권한’까지 심사위에 부여하지는 않는다. 수치화된 심사의 결과를 해석하는 권한과 책임은 어디까지나 방통위 전체회의의 몫이다. 수치화된 점수는 일종의 ‘기준선’을 제안할 뿐 ‘생살여탈’이라고 볼 수 있는 재승인 여부는 방통위라는 독립적인 기관이 전담하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방통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의 임기가 법률로 보장되어 있고, 고도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도 갖게 된다.

각종 감사와 검찰 수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한상혁 위원장은 임기를 채우겠다는 입장이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임기 전에 자진 사퇴한다면, 방통위의 독립성이 추후에도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방통위 직원은 물론 개별 심사위원에게까지 미치자 ‘외부 심사위원들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당장 4월로 예정된 TV조선 재승인 심사에서도 검찰 수사의 여파가 미칠 수 있다. 2월9일 한상혁 위원장은 국회에서 “(심사위 구성 등을) 진행 중이다”라고 언급했다. TV조선 재승인 심사는 당면한 문제다. 당장 다음 달 TV조선의 운명을 결정할 심사위가 소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임 심사위원과 실무진이 검찰에 기소된 상황에서 ‘누구든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시그널은 심사위원들을 심적으로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현재 방통위에 대한 감사는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까지 2018년 유시춘 EBS 이사장이 선임된 과정을 들여다보겠다며 기관 감사에 나섰다. 대통령실이 기관 전체(방통위)를 대상으로 감사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누나인 유시춘 이사장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내 유세단으로 활동했음에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는 이유로 자유한국당으로부터 고발당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유 이사장을 무혐의 처분했지만 대통령실은 이 문제를 다시 겨냥해 방통위를 흔들고 있다. 이 밖에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역시 문재인 정부 시절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실·감사원·검찰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압력이 한상혁 위원장을 겨냥하는 가운데 구속된 직원들은 지리한 법정 다툼을 해야 한다. 한 위원장이 남은 임기 동안 이런 압력을 버틴다 하더라도, 방통위 직원들과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까지 마냥 초연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압력이 상존하는 것만으로도, 이익을 보는 쪽은 따로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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