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경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중환자 외상외과에서 근무한다. 1차 유행이 닥쳤던 2020년 3월 대구동산병원에 파견돼 코로나19 중환자들을 치료했고, 3차 유행 시기이던 12월에는 경기 남양주 현대병원에 코로나19 중환자실을 세팅하는 작업을 도왔다. 지금은 외과계열 중환자를 진료하고 있지만,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라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전체 병상의 4%까지 늘리게 되면 다시금 코로나19 중환자 병동에 투입될 예정이다.
홍 교수가 근무하는 서울아산병원은 코로나19 중환자 49명을 치료하고 있다(12월8일 기준). 아산병원은 1차-2차-3차 의료기관으로 짜인 의료시스템 피라미드에서 제일 위에 있는 ‘상급 종합병원’이다. 고도의 의료적 처치와 집중치료가 필요한, 그러니까 상태가 가장 위중한 환자들이 이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되어 있다. 현재 아산병원 코로나19 중환자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모두 여기에 해당할까? 홍 교수는 “그렇지 못하다”라고 말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겼을 때 확진자의 상태를 평가하고 병상을 배정하는 시스템이 거의 마비 직전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지역의 병상 배정은 중앙사고수습본부(보건복지부)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설치한 수도권 공동대응상황실(이하 상황실)에서 담당한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코로나19 중환자 입·퇴원 기준은 상당히 헐거운 상태로 남아 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아래 세 가지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중증환자 전담 치료병상에 입실할 수 있는 요건이 된다. ①인공호흡기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자 ②인공호흡기 이상의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 ③기타 중환자실로 신속히 이송할 필요가 있는 자.
세 가지 기준범위 내에서 세부적인 판단은 상황실에 파견 나온 공보의·군의관·간호사 70여 명에게 맡겨진다. 그런데 공보의와 군의관들은 2주 기간으로 잠시 왔다 가는 방식이라 코로나19 환자 중증도 구분에서 숙련도를 갖추기 어렵다. 홍석경 교수는 “최중증이라고 했는데 받고 보니 중한 처치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환자도 있고, 반대로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했는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환자가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코로나19 중환자를 보는 병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수가 그리 많지 않을 때에는 중증도 구분이 정확하게 되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위중증 환자가 하루 800명을 넘어서며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이 부족한 시기에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을 환자를 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확인되는 통계는 한국이 바로 이 상황에 도달했음을 가리킨다. 국내 코로나19 치명률은 10월 초까지만 해도 0.5%를 밑돌며 낮은 수준에서 유지됐지만 12월 초 1.5%까지 올라갔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본부장은 코로나19 환자 중증도 분류와 병상 배정을 두고 현재 발생하는 난맥상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다. 정부가 코로나19 병상을 배정해온 방식은 지금처럼 유행 규모가 커졌을 때는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 중에서 90% 정도는 사실 병원에 안 가도 된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입원을 하든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가든 일단 다 시설로 보냈다. 그러면 원칙적으로 거의 모든 코로나19 확진자의 상태를 분류해야 한다. 외국은 다르다. 코로나19 확진자라도 기본적으로 집에 머물면서 아프고 증상이 있는 사람들만 병원에 입원한다. 한국처럼 중앙정부가 모든 걸 통제해서 확진자를 배정하는 방식은 무리한 전략이다. 확진자가 7000명씩 나오면 따라갈 수 없다.”
지난 11월29일 정부는 앞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재택치료를 기본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시설 입원 치료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12월8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재택치료 비율은 50% 수준이다. 20%는 병원에 입원하고 30%가량이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다. 반면 다른 나라의 코로나19 입원환자 비율은 영국 2.78%, 싱가포르 6.95%, 일본 13.8%, 독일 4.69% 수준이다.
적절한 ‘병상 회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12월1일 ‘코로나19 대유행 장기화에 대비한 중환자 진료체계를 위한 담화문’을 냈다. 요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중환자 병상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보건 당국이 코로나19 중환자실 입·퇴실 기준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특히 국제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으로 합의된 환자’들의 중환자실 입실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회복 가능성이 지극히 낮을 것으로 합의된 환자’는 말기 장기부전(뇌·심장·간·신경근골격계), 심각한 뇌기능장애(대량 뇌출혈·중증 치매), 기대여명이 6개월 아래인 말기암 환자 등이 해당한다. 한 의료계 인사는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라 평시라면 거의 중환자실에 가지 않을 환자들”이라고 말했다. 중환자 치료를 받아도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 환자들이 일반 병실에 머무르며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의료진이 보호자를 설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속에서 이처럼 기본적인 의료 원칙도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채, 정부는 병상이 확보되면 환자를 배정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현재 코로나19 중환자실은 적절한 ‘병상 회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환자를 퇴원시키기도 쉽지 않다.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가 호전되면 그 아래 단계의 일반 병실로 내려보낼 수 있어야, 그런 다음 위급한 중환자를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한다고 홍석경 교수는 말했다. 첫 번째, 다른 병실로 옮겨달라고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했던 의료진이 꾸준히 토로했던 어려움이다. 두 번째, 지금으로서는 상태가 호전된 환자를 보낼 일반 병실조차도 구하기 어렵다. 홍석경 교수는 현재 코로나19 중환자실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입구로는 환자가 밀려드는데 출구는 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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