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2일 서울 광화문에서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방역 대책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백신도 맞을 만큼 맞았고 고대하던 ‘단계적 일상회복’도 시작됐는데, 2021년 연말은 2020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집단감염으로 인해 일상이 중단되고, 사랑하는 가족을 얼굴도 못 본 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중환자 병상은 여전히 모자라고 의료진은 지쳐 쓰러지고 있다. 머뭇거리던 정부가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자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다며 거리에 나왔다. 지난 2년 동안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겨울 최대 1000여 명에 불과했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이번엔 7000여 명으로 외려 7배가량 더 많아진 것이다. 최근 일일 사망자 수도 70명을 상회해 이전 유행 최대치의 3배 이상 발생했다. 백신접종 덕분에 확진자가 늘어난 만큼 사망자가 늘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종종 ‘집단면역’으로 불리며 기대해왔던 유행의 안정적 통제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와 3차 접종(부스터샷) 집중 시행으로 확진자 수도, 사망자 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지금 상황은 백신접종을 개시할 당시 우리가 기대했던 풍경이 아니다. “터널의 끝(2021년 1월11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은 여전히 안 보이며, “짧고 굵게(2021년 7월12일 수도권 방역특별점검회의)”는 빈말이 된 지 오래다. “마지막 고비(2020년 12월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도, “마지막 거리두기(2021년 10월1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도 없었다. ‘백신 맞으면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약속은 높은 수준의 백신접종률과 거리두기 협조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감염 규모 급증과 방역 규제 재도입이었다. 대통령은 다시 한번 “이번 위기가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2021년 12월11일)”하라며 부스터샷 접종과 거리두기 강화를 주문했다. 전 세계적으로 다시 번지고 있는 전파력 높은 오미크론 변이는 이 주문마저 공언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2021년 1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터널의 끝”을 언급했다. ⓒ연합뉴스

사회적 거리두기 재도입은 종종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증거로 활용된다. 정치권과 언론과 전문가 집단은 일제히 ‘위드 코로나’가 시기상조였다거나, 섣불렀다거나, 준비가 부족했다며 정부 정책을 성토하고 나섰다. 감염 규모가 의료 대응 역량을 넘어가는데도 미리 마련해둔 비상계획 발동이 늦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는 거리두기 강화를 ‘잠시 멈춤’ 또는 ‘속도조절’이라 부르고 싶어 하는 눈치이지만, 여론은 후퇴나 실패 또는 포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부가 말하고 시행한 ‘단계적 일상회복’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이상적으로 ‘코로나19와의 공존’은 어느 정도 감염 확산을 용인하되 미접종 고령층 감염 등 ‘위험한 확진’과 그로 인한 사망을 막는 데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돌리는 것이다. 그간 특정 계층에 쏠린 방역 조치의 비용을 모두가 공평하게 지는 방식으로 바꾸며, 감염 시 발생하는 불필요한 사회적·심리적·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등 장기전에 적합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소위 방역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모순적인 정책과 발언을 이어왔다. 정책의 목적과 수단, 정책에 대한 소통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계속 발견되었다.

‘단계적 일상회복’ 용어 자체가 문제다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되기 사흘 전인 2021년 10월29일, 중대본은 “단계적·점진적”이고 “포용적”이며 “국민과 함께하는” 일상회복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생각하는 일상회복의 핵심은 접종률, 병상 여력, 중증 환자·사망자 수를 중심으로 유행 규모를 평가한 후 기존 방역 조치를 서서히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행계획 문건의 70% 이상이 거리두기 개편에 할애되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의료 대응체계 구축, 백신 및 치료제 활용, 입국 관리에 대한 내용이 조금 곁들여졌다.

하지만 11월1일부터 시작했다는 ‘단계적’인 거리두기 개편은 새롭지 않다. 이미 2021년 초부터 거리두기 개편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델타 변이가 촉발한 4차 유행으로 인해 본격적인 시행은 미뤄졌지만, “접종률, 병상 여력, 중증 환자·사망자 수를 중심으로 유행 규모를 평가한 후 기존 방역 조치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11월 이전부터 있었다.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의 예외 조항이 확대되어왔고 백신접종자 인원 제한 면제도 새로울 게 없다. 10월에 4명 모임을 6명으로 확대한 것은 일상적인 거리두기 조정이고, 11월에 6명 모임을 10명 모임으로 확대한 것을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지칭한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사실 ‘단계적 일상회복’이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방역 기조 전환 논의에 흔히 쓰이던 ‘위드 코로나’라는 용어를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다. ‘위드 코로나’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나 방역 포기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으며, 방역 긴장감을 이완시켜 성공적인 일상회복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일상회복’이 단지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저 ‘단계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는 것 외엔 정부가 사용을 경계하는 위드 코로나와 다를 게 없다. 백신접종률이 충분히 오르기 전엔 위드 코로나에 대해 검토하는 것조차 꺼리던 분위기는 정부가 방역 기조 전환을 단순히 방역 완화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이 된다.

2020년 12월27일 경기 시흥시에서 운영을 시작한 ‘제1호 경기도형 특별생활치료센터’. ⓒ시사IN 신선영

단계적 일상회복에 포함된 여러 조치들도 정부가 장기전에 적합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단순히 감염 규모를 일정 수준 이하로 통제하는 데 관심이 쏠려 있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방역 당국이 감당할 수 있는 유행 규모의 기준은 확진자 수다. 단계적 일상회복 시작 전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일일 1만명의 확진자까지도 감당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하루 7000명 수준의 확진자 발생에도 의료체계 한계를 훌쩍 넘겨 비상계획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확진자 수 자체보다 접종 효과가 감소한 고령층 위주로 유행이 확산되면서 중환자 병상이 부족해진 것이 문제였다. 이에 따라 사망자도 예상보다 더 많이 발생했고 0.3%까지 떨어졌던 확진 치명률도 1.9%까지 올랐다.

‘사망 피해 최소화’를 위해 방역 단계를 조정한 것은 자연스러운 조치였지만, 정부의 확진자 위주 소통은 ‘1만명까지 감당한다더니 7000명도 못 버티냐’는 식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잠시 멈춤’을 도입한 이후인 2021년 12월22일, 김부겸 총리는 중대본 회의에서 “하루 1만5000명 규모의 확진자도 감당할 수 있는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방역패스 확대 역시 정부의 정책 목표와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다. 백신접종률이 낮거나 접종 대상이 아닌 20세 미만 아동·청소년 사이에서 코로나19 발생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거리두기 재강화가 발표된 2021년 12월16일 기준, 전체 연령에서 코로나19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13.1명인 반면, 0~19세 연령대에서는 10만명당 16.1명이었다. 이는 20~59세의 10.7명보다 훨씬 높고 60세 이상 17.0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위주 감염 확산이 의료체계에 주는 부담은 고령층에 비해 매우 작다. 20세 미만 확진자의 중증화율은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0.05% 미만이며, 지난 12월 말 현재 1100여 명 이상의 위중증 환자 중 20세 미만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즉, 병상 부족이 당면한 문제인 상황에서 청소년 접종률 제고를 통해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은 크지 않다는 뜻이다. 개인에겐 접종이 이득이 될 수 있지만, 불필요한 갈등 유발을 감수하면서 추진하기에 방역패스는 좋은 정책이 아니다. 이 역시 정부가 중증 환자·사망자 수를 줄이려는 정책 목표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충분한 인식 전환이 수반되지 않은 ‘위드 코로나’는 ‘방역 완화’와 동일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상회복 후퇴는 없다”라고 말했을 때 대부분 사람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재도입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이후 다시 규제를 도입해야 했을 때 원망은 대통령을 향했다.

어떤 ‘위드 코로나’를 해야 하는가

2020년 11월3일 서울 남대문 일대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코로나19와의 공존’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백신의 효과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듭된 변이로 인해 감염병을 퇴치하는 선택지가 사라졌고, 각종 사회경제적 피해로 인해 고강도 방역이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최소화’로 대응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위드 코로나를 할까 말까’는 더 이상 물을 이유가 없다. ‘어떤 위드 코로나를 할지’가 관건이다. 크게 세 가지 전략을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감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백신접종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고, 혹시 걸렸더라도 재택치료 확대, 중환자 병상과 인력 확보, 효과적인 치료제 도입을 통해 사회에서 소화해낼 수 있는 의료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는 인식 전환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원을 양보할 수 있도록, 위험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꾸준히 제공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살릴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못한 환자를 나누는 분류체계(triage)에 대한 법적·윤리적 토대가 갖춰져 있나? 재택치료를 확대하기 위한 인프라는 준비되었으며 인식 전환은 충분히 이뤄졌나? 필요한 사람만 격리하고 필요한 사람만 검사받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나? 질병(오미크론 포함)에 걸리는 것이 다른 누군가의 탓이 아니라는 인식이 충분히 퍼져 있나? 이러한 질문에 치열하게 답해갈수록 바이러스의 존재가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날이 더 빨리 다가온다.

두 번째는 위험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감염 확산은 필연적이다. 현재 거리두기 강화로 감염 규모가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오미크론 변이 유행이 향후 거리두기 완화와 맞물리면 폭발적인 확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영국·미국·이스라엘·덴마크·독일 등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바이러스 재유행을 주도하며 고강도 방역을 다시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대규모 유행은 의료 대응만으로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활동 반경을 줄일 필요가 있다. 위험의 크기에 반응하는 것 역시 우리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일상’에 포함되는 행위다.

다만 지금처럼 정부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장기화 국면에선 개개인이 위험과 이득을 평가하여 자기 활동을 결정하게 해야 한다. 연령, 건강상태, 가족구성, 직업, 활동 반경, 백신접종 여부에 따라 천차만별인 개인의 위험을 일일이 규제할 수 없다. 활동의 이익 역시 개개인에게 의미가 달라서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해줄 수 없다. 위험 수용능력을 키워가는 한편 그 아래로 위험의 크기를 줄이는 노력은 반드시 같이 가야 하며, 자율의 영역을 늘려서 규제의 공백에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불평등 해소다. 지난 2년,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유행 규모가 작았을 뿐 아니라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지만, 특정 계층에 부담이 몰려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기간 집합금지·영업제한의 영향을 받은 고위험시설 자영업자들,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은 대면 서비스업 종사자, 격무에 시달리는 의료진, 방역 담당 공무원, 보건소 직원들,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취약계층 학생들이 있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소위 ‘고위험’ 활동이 놓여 있던 사람들의 인내도 길어졌다. 감염자들은 필요 이상의 사회적·심리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섬세한 조치들이 필요하다. 방역 강화에 따르는 재정지원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장기화 국면에선 손실 보상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폐업, 업종 전환 및 재취업 지원을 확대하고 기본적인 안전망 보강을 통해 전환 중 탈락하는 분들의 생계 곤란을 최소화하는 등, 장기화 국면에 맞는 경제 대책도 필요하다.

한 가지 더, 국제적인 불평등 해소도 중요한 과제다. 백신접종률이 낮고 유행 통제가 어려운 저소득 지역에서 변이가 발생하여 소위 ‘선진국’을 위협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모두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태도로 팬데믹에 대한 글로벌 공동 대응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위드 코로나’는 성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진정한 위드 코로나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지난겨울에 했던 실수를, 또 이번 겨울에 한 실수를 계속 반복해선 안 된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또는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일상을 정확히 정의한 뒤 그에 맞는 대책을 다시 마련해나가야 한다.

기자명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