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프리스타일〉은 시사IN 기자들이 자유롭게 쓰는 칼럼입니다.

서른아홉에 첫 아기를 낳았다. 출산 일주일 전까지 회사를 다녔고, 4kg의 건강한 아들을 얻었다. 문제는 모유 수유였다.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는 두 시간마다 울어대는데 젖이 모자랐다. 새벽에도 젖을 먹이라고 수시로 호출하는 통에 신생아실 아주머니들께 그냥 분유를 먹여주십사 하고 잤다.

솔직히 굳이 모유 수유를 고집할 맘은 없었다. 그런데 아기는 젖만 먹으려 했고, 유선염에 걸려 몇 번 마사지를 받은 뒤 그런대로 젖을 먹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크게 태어난 아들내미 양에는 덜 찼던지 백일 즈음에는 다른 아기들보다 오히려 몸집이 작았다.

출산 후 6개월이 지나 회사에 복직해야 하는데 아기는 도무지 분유를 먹으려 하지 않았다. 언니 집에 아기를 맡겨놓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좌불안석이었다. 아기는 꼬박 하루 하고도 한나절을 굶더니 고무젖꼭지를 빨았다. 그렇게 간신히 낮에는 분유를, 밤에는 젖을 먹이는 ‘혼합 수유’를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유축(젖 짜기)을 하려니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시사IN〉 지하 창고 겸 회의실에서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유축을 했다. 다행히 나보다 두 달 먼저 출산한 박 아무개 기자가 있어서 유축기를 빌려 같이 사용했다. 한 번은 유축을 해야 하는데 회의실에서 회의 중이었다. 급한 김에 회사 바로 앞에 있는 교북동주민센터로 갔다. 여직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2층 문화교실의 빈 방을 사용했다. 어쩔 땐 화장실에서도 젖을 짰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들내미한테 젖을 먹이길 16개월여. 낮에 엄마를 못 본 보상 심리로 아기는 밤에 더 열심히 젖을 찾았다. 나는 잠을 못 자 푸석푸석한 얼굴로 회사에서 졸기 일쑤였다.

한 달 전쯤에 나와 아들내미는 이유(離乳)를 했다. 사실 아기보다 내가 더 섭섭했다. 입을 오물거리며 엄마 젖을 먹던 그 표정을 어찌 잊으랴. 아기는 그동안 큰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잘 자라주었고, 이제는 살도 통통하게 올랐다. 고맙다. 개똥아! 저출산 시대, 많은 ‘직장 맘’이 힘들게 수유를 하며 육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공공장소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곳에 유아 휴게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자명 김완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greenpe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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