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 뒤란에 제법 의젓한 호두나무가 서 있다. 중2 봄날에 아버지랑 심은 나무다. 이른 아침, 호두나무 심던 순간을 기억한다. 엄지손가락 굵기에 1m가 조금 넘는 호두나무를 미리 파놓은 40여cm 구덩이에 넣고 천천히 흙을 덮었다. 그 다음에는 뿌리가 숨쉴 수 있도록 살짝 뿌리를 들어주고…. 이후 나무는 쑥쑥 자랐고, 그 다음 봄에는 병들어 죽은 병아리와 염소 새끼까지 먹어치워 우듬지가 몰라보게 높아지기도 했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흘러 나무를 같이 심고 거름을 흩뿌려주던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호두나무는 여전하다. 비록 가지가 부러지고 껍질이 터져 볼썽사납지만, 아직도 매년 가을이면 알알이 열매를 맺는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추석 무렵 고향에 가서 그 나무가 물과 바람과 새소리와 햇볕을 버무려 빚어낸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면, 부모님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감동이 차오른다.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본 “직접 집을 지어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라는 문장을 기억한다. 식목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이 직접 심은 나무가 열매를 맺고, 아름드리가 되었을 때 느끼는 찬연한 새로움과 희열은 가슴 벅차다. 어려서 심은 나무는 더욱더. 그러나 무슨 일이건 경험이 없으면 대물림도 어려운 법이다. 사실, 나무 심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묘목원에 가서 나무를 고르고, 심는 법을 배워오면 된다(물론 그 나무를 ‘건강한 꺽다리’로 키우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이른 봄 충북 옥천에서 열리는 이원묘목축제에 참가해 ‘임도 보고, 뽕도 따는’ 방법. 특이하게도 이 축제는 묘목유통센터에서 열린다. 그만큼 나무 종류가 많고 가격이 싸다는 말이다.

올해 축제는 3월19부터 사흘간 열렸다. 이원묘목유통센터에서 생산하는 묘목 생산량과 종묘 종사자는 약 1290만 그루에 490가구. 수종은 복숭아·백일홍·대추·사과·호두·벚·살구·밤·자두·은행 나무 등 100가지가 넘는다. 행사 중에 눈에 가장 띄는 것은 역시 묘목 나눠주기. 늘 손을 내미는 사람이 많으니 서둘러야 한다. 올해 축제에서는 아줌마예술단과 풍물패가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묘목축제 사이버대회와 향토음식경연대회, 수석·분재 전시회, 지역 특산주 시음회, 접목 시연 등은 유쾌한 덤. 아이들 선물도 있다. 나무 곤충 만들기, 나무 목걸이 만들기, 판화 찍기, 잔디 인형 만들기,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 미니화분 나누어주기, 이동식 동물원 등에서 아이들 웃음이 터진다. 주최 측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축제를 연다고 하니,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상생의 발걸음’을 떼는 셈이다. 땅이 한 뼘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내년 봄 자녀들과 함께 참여해 튼튼히 자랄 유실수나 상록수 하나 고르시기 바란다. 문의 festival.oc.go.kr 043-730-3114.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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