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앞줄 오른쪽)가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 12월9일 충남 태안 만리포 기름 유출 사고 현장을 방문해 방제 활동을 거들고 있다.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가 터진 지 5일째였던 지난 12월11일 오후, 충남 태안군 천리포 해변에서 파란색·흰색 방제복을 입은 한 무리의 자원봉사 단체(?)와 마주쳤다. 기자의 신분을 알 길이 없는 그들 가운데 몇몇은 갯바위에 올라 시시덕거리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옷에 묻은 기름이 불쾌했는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강재섭 대표와 함께 봉사활동을 나온 한나라당 당직자였다. 본의 아니게 ‘잠입 취재’를 한 셈이 됐는데, 왜 현지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정치인이 인기가 없는지 알 만했다. “잠깐 와서 사진만 찍고, 다른 사람 일하는 데 방해나 하고, 정말 하나도 반갑지 않다. 진짜로 노력하는 것 같지 않았다”라는 태안읍 주민 김 아무개씨(51)의 쓴소리처럼 ‘진심’이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막개발법’ 통과시키고 태안에서 ‘생쇼’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였다. 지난 12월18일과 26일에는 이들 정치인의 진심이 ‘진짜로 의심될 만한’ 두 개발 관련 법안이 잇따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막개발 보장법’ ‘환경파괴법’ 논란을 빚고 있는 ‘새만금 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하 새만금 특별법)’과 ‘동·서·남해안권 발전 특별법(해안권 특별법)’이 그것이다.

대선·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던 여야 국회의원들은 지난 11월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두 법안에 전폭 지지를 보내며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바 있다. 이명박·정동영 두 유력 대선 주자를 비롯한 각 당 지도부가 발벗고 나섰음은 물론이다. “지역 개발법처럼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어디 있겠냐”라는 해안권 특별법 입안·통과를 주도한 한 ‘해안권 지역구’ 의원 측근의 솔직한 토로가 말해주듯 그 속내는 분명했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 교수는 간혹 태안반도에 삽과 흡착포를 들고 나타나기도 하는 ‘다르지만 똑같은 이들 정치인’의 행태를 이렇게 꼬집는다.

“불과 한 달 전에 국회에서 새만금·해안권 특별법을 통과시킨 바로 그 장본인들이,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표정을 짓고, ‘이거 참 큰일입니다’라고 서해안 갯벌에서 천연덕스럽게 ‘생쇼’를 하고 있다. 해안가의 원유는 시간이 지나면 생태계 복원 능력에 의해서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주창하는 개발은 시간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한다.”

사고 발생 20일째인 12월27일 현재 태안 앞바다는 기름띠가 대부분 사라지는 등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아가는 상황이다. 물론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외딴섬·암벽 지역부터 해안가 모래에 깊숙이 스며든 기름 문제까지, 생태계의 완전 복원에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당장 내년에 해수욕장 개장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올 만큼 희망적이다. 하지만 휴일도 송년회도 잊은 채 자갈에 덕지덕지 붙은 기름을 옷가지로 닦아내던 수십만 자원봉사자의 헌신적인 노력은 곧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 태안반도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역을 ‘막개발 천국’으로 만들 법안과 정책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색맹 대통령’마저 난개발 우려

환경운동연합 국토생태본부 지찬혁 간사는 새만금·해안권 두 특별법에 대해 “지자체가 중심이 된 ‘개발 특별법 시대’에 맞는 특별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했다”라며 한반도의 갯벌과 바다는 그야말로 규제가 없는 자유지대가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원스톱 서비스’란 주무 부처가 관계 부처와 협의를 거쳐 일괄적으로 인·허가를 실시하는 것으로서 개발에 필요한 각종 법적 절차가 사실상 생략된다. 새만금 특별법은 33개 법률이, 해안권 특별법은 36개 법률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환경단체들은 규제 완화라는 미명 아래 환경문제 등과 관련한 엄격한 심의 절차를 무력화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한다.

농림부 장관이 기본 구상을 계획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경우 미리 전라북도지사의 의견을 듣게 하거나(새만금 특별법), 시·도지사가 요청하면 건설교통부 장관이 국립공원·수자원 보호구역에 상관없이 개발구역을 지정해주는(해안권 특별법) 등 각 지자체의 권한이 막강해진 것도 논란거리다. 새만금생명평화연대 주용기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경우 “환경문제 예방 대책은 부실하게 취급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한다.

더욱이 각 지자체는 국고보조금 지급, 개발부담금·농지보전부담금 감면 같은 개발 사업자들의 군침을 흘리게 할 만한 막대한 특혜를 줄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지난 12월26일 노무현 대통령이 해안권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조짐을 보이자, 해안을 낀 10개 지자체가 청와대를 항의 방문까지 하며 격한 반응을 보인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환경단체로부터 ‘환경색맹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노 대통령마저 난개발을 우려해 거부권을 검토했던 해안권 특별법이 나라에 미칠 영향은 막대하리라는 게 중론이다. 동·서·남해 연안 2만9094㎢에 이르는, 국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면적이 이 법의 대상이 된다. 또한 자연공원 76곳 중 29곳이 포함되며, 기름 유출 사고가 터진 서쪽의 태안 해안를 시작으로 변산반도·다도해 해상·지리산·한려해상·경주·오대산·설악산 등 8개 국립공원이 사정권에 들어온다.

환경단체의 표현대로 ‘국토의 계획적이고 지속 가능한 이용 체계를 허물고 막대한 국가재정의 블랙홀이 될 괴물법’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법의 탄생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역시 국회의원들의 ‘무한 욕심’이 작용했다. 2006년 8·9월 신중식(대통합민주신당)·김재경(한나라당) 의원 주도로 ‘남해안 발전 법안’이 발의되자 “왜 우리는 빠뜨리냐”라며 동해안·서해안권 국회의원들이 앞다투어 해당 지역 개발 법안을 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만금의 ‘두바이식 개발’ 위험

이명박 당선자의 행보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태안 앞바다가 온통 검게 물들어가던 지난 12월8일 오후 강재섭 대표는 전북 전주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만금은 거대한 호반도시가 되고, 관광산업과 신산업이 어우러지고, 친환경적이면서도 엄청난 전세계의 투자자가 몰리는 제2, 제3의 두바이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꿈이다”. 이 당선자는 이를 위해 과거 새만금 방조제 완공과 부안 핵폐기장 유치 추진에 앞장서 환경단체로부터 ‘반환경 정치인’으로 낙인찍힌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새만금 테스크포스 팀장에 앉혔다.

하지만 새만금을 ‘동북아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환경단체는 물론이고, 관계 부처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농림부는 지난해 3월 한 자료에서 “새만금의 경우 상류 지역에 만경강과 동진강이 있고, 매립이 아닌 방조제 축조를 통해서 토지와 담수호를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바다를 직접 매립해 토지를 확보하는 두바이와는 다르다. 새만금 개발은 담수호의 환경과 수질 문제가 전제가 되어야 하므로 두바이식의 전체 개발은 매우 위험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이명박 당선자의 트레이드 마크인 ‘한반도 대운하’마저 현실화할 경우 한국 국민은 수년 내내 먼지 풀풀 날리는 공사 현장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재검토’ 논란이 일고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운하 테스크포스 구성과 특별법 추진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경부운하 저지 국민행동’은 12월23일 성명을 통해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는 상수원으로 선박을 운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라며 이 당선자 측의 ‘개발중독증’을 질타했다. 이 당선자가 선거 기간 중 만리포에서 흘린 땀이 ‘진심’이라면 태안의 대재앙으로부터 자그마한 교훈이라도 얻었기를 기대한다.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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